30대가 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10
"그 선배는 정말 친절해. 덕분에 하나도 헤매지 않고 일 할 수 있다니까?"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에게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준 광고팀 선배가 있었다. 언제고 좋은 타 부서의 선배로 남을 줄 알았던, 알지 얼마 되지 않은 이의 칭찬을 늘어놓으며 연신 싱글벙글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장점이 지나가고 단점들이 찾아왔다. 타 부서를 싫어하는 그의 노골적인 말투, 그리고 은연중에 친하다 싶은 나에게 와서 해소하는 누군가에 대한 뒷 이야기들.
"그 선배가 그러던데, 너 요즘 다른 데서 말 나온다."
그 선배가 그토록 질긴 말고기 마냥 씹어대던 우리 팀의 선배가 나에게 조심하라며 지나가듯, 주의를 줬다. 언제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내게 그러겠냐는 안일한 박애주의적인 정신상태에 크나큰 몽둥이가 휘둘러진 듯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도 아니고 대체 몇 명의 입과 귀를 거쳐 나의 귀에 들어온 것이었을까. 그 지하철의 정차역들처럼 거쳐온 사람들에겐 나의 이미지는 급락의 주식 장과 같은 우하향 중이었다.
그 후, 선배를 미워했다. 얼굴 가득 선함 가득한 웃음은 어느새 음흉하고도 치졸한 조커의 모습과도 같은 모습으로 인식되었다. 그가 웃기라도 하는 낯을 보는 순간이면 여지없이 머릿속에서 'WARNING!'이라는 문구와 함께 피해야 하는 한바탕의 게임이 시작되는 듯했다. 단순하게 선배의 웃는 낯이 미운 것은 아니었다. 한번 달리기 시작한 폭주 기관차와도 같은 미워하는 마음은 마주치는 횟수에 비례하여 단점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두배 세배의 단점들이 눈에 들었다.
웃으며 가벼이 어깨를 터치하며 안부를 묻는 행동, 누군가가 괴롭히면 이야기하라는 든든한 이야기, 한 마리의 아나콘다 같은 능글능글한 그의 처세술. 인자함과 배려 그리고 목표를 향한 움직임이라며 내 입으로 칭송해 마지않았던 그 모든 것들이 미워함을 넘어 역겨움으로 번져 갔다. 새하얀 옷에 튀어버린 김칫국처럼.
"그 선배처럼은 살지 않아야겠어."
"너도 그 선배처럼 누가 괴롭히면 말해."
"나는 그렇게 안 해도 잘할 수 있을걸? 선배들이 예뻐해 주니까."
그 일이 있은 후 다른 부서의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마치 십 년 이상을 묵은 체증이 한순간에 내려가듯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편해짐도 잠시. 아까부터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유를 알았다. 내가 그 선배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손을 휘저으며 불편한 나의 안부를 묻고자 친구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너에게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뉘앙스의 배려를 가장한 공감, 다른 선배들 앞에서 훌륭한 처세술로 예쁨을 받고 있다는 뽐내기 까지. 결국 나는 친구에게 사과를 했다. '내가 너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아'라는 말을 곁들이며.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좋아하고 미워하게 될까. 좋아하는 것은 꾸준한 관계의 속에서 그 감정이 깊어지만,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는 감정은 한순간일 뿐이다. 더구나 좋아하는 이는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억에서 순식간에 잊히지만 반면 미워하는 이는 얼마나 나에게 실망감을 주었는지에 비례하여 기억에 남겨지는 듯하다. 그런데 이 미워하는 이들은 이따금 나의 모습을 하고 삶 속에서 나타나고야 만다. 정말 닮기 싫었던 모습을 하고서. 그토록 미워하는 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고 있노라면 역겨움이라는 감정이 한없이 차오른 후에 결국 어이없는 허탈감에 젖는다.
그 누구도 미워하는 이의 모습을 좇진 않았을 테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그것은 아마 상대를 너무 미워하는 마음에서 오지는 않았을까 싶다. 너무 미워한 나머지 미워하는 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깊게 살폈을 테다. 상대적으로 그 사람의 여타의 장점들 보다 미운 모습에 대한 경계감이 강해져 스스로의 자그마한 행동 하나에서 미워하는 이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생각이 적어도 나는 좋은 사람일 것이란 착각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