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9
휴일이 되면 여유로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테라스나 테이블에 앉아 하루를 설레게 해 줄 책을 한 권 쥐고 앉아한 글자 한 글자 타인의 삶을 엿본다. 그리고는 세상 아무나가 본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고 결점하나 없는 결정체의 겉모습을 꾸미며, 사람 많은 지하철과 거리를 활보하던 발걸음의 끝에 삼청동에 있는 미술관들의 전시를 느긋하게 돌아본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찰나의 망상.
'좋아하는 것'
세상에 나 혼자 사는 것처럼. 혹은 나만큼 고고하고 지식인스러운 취미를 가진 사람은 많이 없을 거라는 확신에 차서 우러러 보이기 위해 좋아하는 것을 뽐내는 것이 습관이되어 버린 삶이었다. '나는 좀 달라', '나는 작품을 남들보다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어',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니까 작가와 공명할 수 있어' 등 스스로가 남들과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에 위안받아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을 법한 속마음들은 곧 나의 태도가 되었다. 한 껏 치켜세운 어깨. 빳빳하고도 도도한 눈빛, 타인을 내려다보는 그 끝없는 절대자적 시선들이 바로 겉으로 드러난 태도였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어떤 이는 재수 없음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는 스스로의 취미에 한 껏 취해 있었다. 무료 혹은 만 오천 원 정도로 즐기는 취미 생활이 뭐 그리 대수라고 전시회, 독서, 커피를 즐기는 스스로의 모습이 아주 흡족했다. 어쩌면 남의 삶을 엿보는 에세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전시회는 남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나의 삶을 책과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만큼은 타인의 것들로 나를 채우는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그와 더불어 그 채움이라는 것에 대해 '제대로' '완벽히'라는 잣대를 대고 싶어서 그렇듯 스스로를 추켜세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은 더 이상 전시회를 타인의 삶을 엿보러 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주유하듯 "만 오천 원어치요!" 라며 나의 빈 곳을 채워주길 바라는 것 역시 더더욱 아니다. 그저, 성찰을 하거나 작품 그 자체를 감상하기 위해 가는 것일 뿐.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사진에 담아내고 생각하기 위한 목적일 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나만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SNS들을 보며 점점 더 그릇 된 생각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요즘은 어떤 전시를 하는지, 어떤 책을 사람들을 읽는지 궁금하여 찾아보는 해시태그들에 딸려있는 수 많은 이들이 적어놓은 기록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가 낯 부끄러워 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쉴 때 어딘가를 가려하면 꼭 예약이 다 차있거나, 현장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보통은 평일에 쉬는 것을 더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 이유는 결국 아주 심플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남들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니까. 그러니 애초에 나의 나만 좋아할 것이라는 그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이야기는 성립할 수 없는 가설이었다. 만에 하나 나만 좋아하려면 결국 남들은 다 싫어해야 하니 그런 것이라면 아마 나도 궁극엔 싫어하게 되었으리라.
"맛있는 건 너만 좋아하는 거 아니거든?"
학교에서 급식을 먹던 어느 날이었다. 정말 맛있는 반찬은 최후의 순간까지 아끼고 아끼다 먹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버릇 때문에 식판에 한 젓가락도 대지 않고 살아남아있었던 제육볶음이 내 친구의 눈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고이 모셔두었다 생각했을 것이다. '넌 안 먹지?'라는 말과 동시에 눈앞에 나타난 젓가락이 가지런했던 제육볶음을 망가뜨렸다. 모래성을 무너뜨린 것만큼이나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맛있는 건 너만 좋아하는 게 아니야'라는 명언을 남기고 그대로 식판을 갖다 버려버렸다. 나도 제육볶음을 좋아하는 마음은 같았지만 즐기는 방식이 달랐을 뿐인데... 아마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은 타인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 때는 순수했고 지금은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까. 간혹 서로의 방식이 다를 뿐 좋아한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종종 망각할 때가 많다.
지난여름 즈음 제주도에서 반 고흐 작품의 디지털 전시가 진행된다는 이야기에 설렘과 기대감을 가득 품은 채로 빛의 벙커에서 진행되는 반 고흐전을 찾아갔다. 기대감이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아무리 디지털 전시라고 한들 사진 찍는 이들만 한가득하여 진정한 작품 감상이라고는 하지 못하게 만들던 그곳의 공기는 마치 감옥과도 같았다. 전시회장 안을 채우다 못해 바깥으로 까지 흘러나오는 BGM들과 빔프로젝트로 쏘는 미디어 전시의 특성상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그림자들, 진득하게 봐야 진정한 감상이 된다는 나의 기조와는 달라 분개하며 전시회장 안을 인상을 찌푸린 채 걸어 다니는 나의 모습은 나에게도 타인들에게도 불편했을 것이다. 다만 위안이 되었다는 점은 많은 후기들에서 감상을 하러 간 이들은 대다수가 나와 비슷한 반응이었다는 점. 그러나 이내 아차 싶었다. 그곳에서 흔히 말하는 인생 샷을 건진 이들은 조금 다른 후기들을 남겼다는 것. 친구와 제육볶음을 즐기는 방식은 달랐으나 제육볶음을 좋아하는 것이 공통점 이었 듯, 목적은 달랐으나 '전시회'라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