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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Oct 01. 2021

미래를 없애는 나의 나태와 안일

30대가 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13


지옥 같은 회사에서 겨우겨우 퇴근했으니까.

나보다 잘 된 친구가 너무나도 부러우니까.

저녁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으니까.


 온갖 핑계를 대가며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더러운 손은 나의 손이 아니고, 외출에서 돌아온 옷은 잠옷일 것이라 상상하며 침대로 온몸을 던진다. 어떤 날은 틈만 나면 의자에서 벗어나 소파에 앉고 싶고, 소파에 앉으면 저기 방문 너머로 보이는 아늑한 침대가 원근법은 무시한  그렇게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 나태해야  이유도, 안일하게 살아야  이유도 너무 많다. 정말 고생을 했다기보다는  거리를 찾느라 바빴다.


 지금의 나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라고   있는 부분은 끊임없는 나태와 안일함을 왜들 그렇게 경계해야 한다고  맞추어 말했는지를 이제 조금은 알겠다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완벽히 나태함과 안일함을 경계하지는 못한다. '하루쯤이야'라는 합리화 가득한 말과 함께 침대로 오늘도 몸을 던진다.


 사실 나태와 안일함이라는 단어들은 어감 때문에 부정적인 행동의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적절한 나태와 안일함은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빠르고 피로감이 쉽게 물드는 경우에는 삶의 균형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쉼표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기 때문에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두 번이라도 나태함과 안일함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더더욱 온전한 쉼과 일 사이에서의 균형을 더 갈망할 테니. 하지만 나의 경우는 좀 달랐다. 잠깐 맛보려 했던 나태로움은 너무나도 달콤하여 한도 끝도 없이 나를 끌어당겼다. 이것은 흡사 잠은 잘 수록 는다는 진리와 흡사했다랄까.


 한번 시작한 것은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가진 나는 그렇게 나태의 편안함에 이끌려 끝장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니, 어쩌면 끝장난 상태였을지도. 나가는 일은 편의점 갈 때 뿐 이거나 미팅이 잡혔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들도, 일을 함께하던 사람들도 만나지 않기를 시작하더니 머지않아서는 일에 대한 나태로움 까지 생겼다. '이번 달만 더 쉴까...'라는 생각은 6개월이 이어졌다. 반년 간 반 반백수처럼 놀고먹었다.


"나 결혼한다"

"나 이제 애 아빠 될 것 같아"


 어느날 나의 정신을 정말 번쩍 차리게   연락이왔다. 함께 동고동락하던 대학 동기들의 단톡방에서 흘러가는 대화의 내용을 어두컴컴한 방의 침대의 이불을 한껏 뒤집어  나는 묵묵히 스크롤을 하며 읽어 내려갔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하는 친구, 결혼하고 나서 예정에 없던 아이가 빨리 찾아왔다며 당혹  행복함 반이던 친구, 랜선을 넘어 눈앞에서 신나하며 즐거워 하고 있는 듯한 환상이 펼쳐졌다. 그들의 활기 넘치는 카톡을 보고 있노라니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살고 있는 스스로가 집에 날아다니는 날파리 보다도 하찮게 보였다. 동기들은  성실했다. 아니  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적당한 쉼과 적당한 일을 통해 삶의 밸런스를 맞출  아는 친구들이었다.  혼자 우울들과 쉬어가야 한다는 안식년 이라는 미명하에 나태함에 빠져 들어 살고 있었을 .


 남과 삶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젊음과 성실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정말 내 친구이긴 한 것일까. 그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등 인생의 갑작스럽고도 큰 변화를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어느 정도 해온 착실한 준비성에 기반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나를 침대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미 늦어버렸지만 더는 삶에 대한 준비를 늦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침대와 집콕의 생활을 한 순간에 접은 이유는 단순히 친구들의 연락을 보고 와닿아 일어났던 것만은 아니다. 나태함과 괜찮겠지 하는 안일함의 자세로 살아가는 스스로는 한없이 보잘것없이 밥 먹는 산송장과도 같은 신세였기 때문이다. 나태함과 안일함에 취한 삶은 나를 살펴줄 미래를 없애는 행위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도, 그런 모습을 보고 있을 이에게도 한없이 떳떳함 하나 없는 부끄러움만 가득한 삶이다.


 나태함과 안일함의 행동의 결과는 나에게 조급함과 남들보다 2배, 3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잘못된 쉼에 대한 반성이라도 하듯 더더욱 열심히 일도 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 이기도 하다. 그러나 옆에서 나를 보는 사람은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시그널을 보내온다. 때문에 쉽사리 번아웃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나를 보살피는 말들을 수용하는 중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삶이지 혼자 사는 삶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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