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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Oct 11. 2021

2021.10.10 일요일

기록 5일 차


2021.10.10 일요일



 일기를 쓰기 시작한 후로 어째서 인지 맑은 날이 없다. 토속신앙을 믿는 이도 아니건만 자꾸만 하늘이 웃어주지 않아 일기를 쓰지 말라는 의미라며 쓸데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나날이 늘어난다. 그래도 꾸역꾸역 글을 써 나가는 이유는 하릴없이 까먹어대는 이 원수 같은 기억력 때문이다.


 “안네의 일기 같아”


‘안네의 일기’라는 제목을 듣자마자 어린 시절 반드시 읽었어야 했던 그 시절 그대로의 표지가 스쳐간다. 흑백 사진 속 나와 같은 두꺼운 송충이 눈썹을 하고 있던 낯선 이방인의 모습. 안 좋은 기억력만큼 책의 내용은 완벽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나치와 2차 세계대전의 배경의 글이었다는 것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 주입식 교육이 이럴 때는 조금은 감사하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과거에 묻혀 있던 책을 떠올리게 하며 매일매일 쓰고 있는 이 글을 어느 틈에 보았는지 모를 이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어릴 때 읽어서 인상 깊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괜히 내 글도 그녀에게 인상 깊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설렘과 기대감이 찾아든다.


- - -



 마음을 비우고 일단 꾸준히 적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하면서 요즘 최대의 고민은 ‘뭐 먹지?’에서 ‘뭘 쓰지?’로 바뀌어 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생존 여건인 의 식 주에서 식보다 더 큰 고민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글 쓰는 것이 나에게 있어 음식보다 더 큰 요소가 되었음이라.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애석히 도 나의 기억력은 조삼모사와도 같아 낮의 나와 저녁의 나를 기만하기 마련이다. 반나절도 아니고 네다섯 시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적어놓지 않으면 기어코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내어 올 수 없다. 이래서 메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 일까.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다들 나 같은 기억력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그러면 참 좋겠다. 갈수록 심해지는 건망증은 남들보다 더 삶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들고 그 끝은 어차피 잊힐 현재라는 마음에 기인하여 스스로를 홀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 - -



 오늘은 유난히 피곤한 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저녁 챙겨보는 유튜브 채널을 정주행 하느라 해가 뜬 사실도 알아채지 못한 채 7시에 잠들었다가 8시 30분에 일어나는 기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출근은 어떻게 했는지도 모른 채 평소의 30분 거리를 10분 정도 단축하여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흡입한 카페인 덕에 수업은 각성 상태로 마무리지었다.



 수업을 끝내고 운전하는 내내 졸음이 찾아와 수 없이 괴롭혀 댔고 강남의 어느 황량한 신호등 앞에서는 이러다 기면증이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의 강력한 수면 감이 들어섰다. 빨간불을 보며 전원이 탁 하고 꺼져 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 다시는 안 그래야지, 제때 자야지 하며 다짐을 해 보지만 같은 실수는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뻔하다.


 결국 수업 후 사랑하는 이를 데리러 와서 조금 남은 30분의 시간은 숙면을 취했다. 말이 숙면이지 사실은 혼절. 잠시 누웠음에도 문을 열고 타는 것도 몰랐을 정도였으니. 나를 보는 그녀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 찼다. 피곤해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결국 집에 돌아와 어제 유튜브 보느라 일곱 시 넘어서 잤다고 이실직고했고 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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