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목 Oct 09. 2021

2021.10.09 토요일

기록 4일 차

2021.10.09 토요일


 am. 09:00

 무의식에서만 익숙한 핸드폰의 알람이 무거웠던 뇌와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쓴다. 실체 없는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나의 손은 뇌를 거치지 않고 ‘다시 알리기’ 버튼을 눌러버린 채 단잠을 깨뜨린 시간이란 녀석의 흐름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일어나고 싶지 않아 멋쩍은 손이 양심은 있는지 자꾸만 폰을 들어댄다. 손의 움직임과 덩달아 밝아지는 화면의 불빛은 시간을 확인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감긴 두 눈을 점점 더 크게 뜨도록 강제한다.


 결국 15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오직 씻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화장실에 들어가 면도날을 들었다.


- - -


 am 10:00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잠을 깨기 위해 찬물로 한번 더 몸을 헹구었더니 잠은 달아났지만 밤 사이 눈과 볼에 붙은 붓기는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아 오만상을 찌뿌린 채 운전석에 앉았다.


 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비 온 뒤의 공기는 서늘한 채 진정한 가을이 왔음을 알게 해 준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책을 더욱더 가열하게 읽어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보았지만 오늘 아침의 상태를 보니 아이들의 자습서들을 읽는 것이 고작이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짓이겨 본다. 애초에 읽겠다는 다짐은 찰나의 여유의 생각이었을 뿐 정말 읽을 생각이었다면 집에서 나오면서 챙겨 나오지 않았을까.


- - -


 pm 07:00

 오늘따라 아이들이 왜들 그렇게 특별한 날이라며 내 생일인 것 마냥 나에게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퇴근 때 즈음되어서야 알았다.


 ‘한. 글. 날’


 방금까지 분명 가르쳤던 국어인데 오늘 같은 날은 아이들에게 중세국어를 가르쳤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날 아이들이지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쉬는 날 한글 박물관을 가고 싶었던 것이 이해가 된다. 한글날이 오고 있음을 알아채고 있었던 본능이 신기할 따름이다. 결국 가지는 않았다. 온전히 쉬는 날 이기 때문에. 이제야 솔직히 말하지만 한글 박물관의 유니폼이 한복으로 바뀌었다는 기사를 보고 가보고 싶었던 것이었고 그 기사는 아마 한글날이 코앞이라 작성된 기사였으리라. 그러니 본능이 알았다는 것은 자기 위안이고 나는 미디어의 노예가 되어있다는 슬픈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 - -


 하루가 시작되어 해가 갓 중천으로 떠오를 무렵. 주말의 시작을 알리울 혹은 주말의 여유를 만끽할 대다수 이들의 시간에 나의 시간은 출근으로 달리 흘러간다. 막히지 않는 출근 시간, 막히지 않는 퇴근시간에 너무나도 감사하며 10분가량의 여유로운 출퇴근 시간을 즐기며 움직인다. 다만 불편한 점이 있다면 주말에 영업하지 않는 카페들이 많아 커피를 마시려면 봉지커피를 마시거나 3분 거리의 편의점에 들러야 한다는 점. 한번 자리 잡으면 움직이려 들지 않는 나에게는 상당한 번거로움 그 자체다.


 집에 오니 하루 종일 떠들어서 그런지 조금만 누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소파에 긴장감을 한 움큼 덜어 냈다. ‘정말 조금만 누워야지’라는 그 빈약한 의지를 가진 채 뉘인 몸은 이내 ‘한숨 자야지’라는 굳센 의지로 변질되어 처음부터 나는 소파였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일체감을 부여한다. 결국 두 시간이 흘러 겨우 떼어 놓은 붓기가 다시 자리 잡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1.10.08. 금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