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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Jun 16. 2022

원본과 본원 사이

9호_건축과 성냥_특별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F

게재 : Vol.9 건축과 성냥, 2019년 가을

 

 

[사진1] 불이 난 숭례문, Pixabay


몇 달 전,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이 불탔다. 파리 시민들은 물론이고, 누구나 소중히 여기던 이 장소의 재건은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내 원래 지붕은 어떤 모습인가?” - 이는 가장 쉬우면서도 답하기는 어려운 철학적인 질문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아름다운 노트르담을 기억하지만, 그 기억 속에서 떠올리는 ‘원래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이전처럼 목조지붕을 똑같이 만들든, 유리 지붕으로 만들든, 심지어 수영장을 만들든 바로 그것들이 각자가 생각한 ‘원래의 지붕’이다.


 하지만 이런 같은 생각을 가졌음에도, 무엇이 그들의 표현방식을 각기 다르게 만드는지는 분명 흥미로운 주제임이 틀림없다. 티격태격하는 이 사이에서 들려오는 잡음에 귀를 기울여 그들이 말하는 원본은 무엇인지 들어보자. 한편으로 노트르담의 복원은 당연 ‘뒷북’인 주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건축 문화재가 어이없이 사라지고, 또 치고받는 시끄러움 속에 다시 돌아왔는가. ‘건축과 성냥’ - 이미 만나버린 둘, 남아버린 재 속에서 우리가 말하는 ‘건축 문화재의 복원’과 ‘원본’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새로운 지붕을 위한 변명


 먼저 있는 그대로가 아닌 새로운 디자인을 원하는 사람들은 왜 ‘지붕을 가지고 장난친다’는 욕을 먹어가며 그런 상상을 할까. 어색한 첨탑 디자인 제안을 보며 나 또한 처음에 들었던 생각이다. 사실 이들은 노트르담 성당이 가지고 있는 외연을 넘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도시의 일부, 삶의 일부라는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들에게 성당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그 외연 자체보다는 현재 성당이 맡은 역할에 있다. 그래서 그 목적과 역할에만 충실하다면 형태야 어찌 되었든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이 점에서 볼 때 새롭게 제시된 디자인들은, 그 외양이 본래와 다르게 바뀜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상징적 장소, 주변과 구분되는 랜드마크라는 기존 노트르담의 성격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제안을 통해 독특한 디자인이 채택된다면 그러한 성격은 강화된다. 역사적 건축물이라는 다른 속성 또한 화재를 그러한 역사의 일부로, 복원에 사용된 이질적인 재료와 공법 모두 노트르담이 겪어온 역사의 일부로서 여기는 듯한 제안들이 많이 보인다. 


[사진2,3]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위), 이탈리아 시실리 헤라클레스 신전 (아래), Pixabay


 파괴된 건축 문화재의 모습마저 역사의 일부로 생각하는 시선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머릿속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떠올랐다. 학자들이 복원도를 비롯해 복원에 도움을 주는 여러 근거가 많지만, 삽을 뜨는 순간 누군가는 분명 그것은 복원이 아닌 파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결국에, 이들에게 노트르담 성당이란 그것이 내포하는 본질을 가리키는 말이지, 성당을 물리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이러한 시도는 노트르담을 정적인 조각이 아닌 동적인 ‘건축’으로서 이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건축은 단순히 물질적 요소 외에도 그곳에서 이뤄지는 행위와 사회에서의 맥락 등 인문 사회적 요소가 개입하는 동적인 개념이라고 나는 이해하면서, 환경이 달라지면 건축 또한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노트르담이 세워질 당시 프랑스 사회가 노트르담에 요구한 가치와 현재의 그것이 다르다면, 우리는 변화를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옛 서울역이 문화역 서울 284로 바뀌고 에어컨을 새로 달고 바닥을 들어내고 새로 깔음에 딱히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노트르담을 ‘역사적 조각상’보다는 우리 삶과 시대에 적응하는 ‘건축’으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복원이 진짜 복원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은 복원을 “원래대로 회복함”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숭례문에 했던 대로, 전통건축과 관련한 장인들을 모아 전통방식 그대로 지으면 그것이 진짜 복원이고 회복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전과 조금 다른 그림이나, 이참에 새로 연장해 이어 쌓은 얼룩 없이 하얀 성벽이나 ‘복원’된 숭례문은 원래와 무조건 같은 모습일 수 없다. 이에 더해 우리가 한국의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숭례문과 경복궁, 불국사 등을 비롯한 여러 건축 문화재들은 조선 후기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에 불타거나 망가졌다가 다시 쌓아 올린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우리는 애초에 복원에 바탕이 되는 ‘원본’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이런 면에서 문화재 복원을 다시 보면, 문화재의 의미가 물질 그 자체에 있다고 보기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지은 숭례문을 보더라도 숭례문이라는 그 자체를 본다기보다, 아주 옛날에 있던 숭례문을 따라 지은 그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임이 좀 더 적절한 설명일 수 있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 복원된 ‘숭례문 2호’가 여전히 서울과 우리나라 역사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우리가 그것을 별 어려움 없이 납득한다는 점은 ‘건축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물질적 실체가 아닌 추상적 개념으로부터 비롯됨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즉 건축물이 ‘복원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새로 만들어진 건축물을 ‘이전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기로 약속했다’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을 두어 노트르담을 보자면, 노트르담의 지붕이 어떻게 복원되든 지붕을 다시 짓는다는 것은 고딕 지붕과 유리 지붕 중 어느 것을 노트르담의 지붕으로 부를 것인지 새롭게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어쩌면 건축물을 포함한 문화재 복원이란 문화재의 물질적 면모보다는 정신적 면모와 더 깊게 관련 있다는 것이다.


[사진4]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Pixabay (신동휘 편집)


 이런 생각에 이어, 앞서 말했듯이 파괴된 과정 또한 건축물이 가진 역사의 일부로서 받아들인다면, 소위 말하는 복원은 직설적으로 말해 또 다른 파괴일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을 적용할 수 있는 범위는 사람마다 문화재마다 크게 다를 수 있고, 복원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조선총독부를 우리 손으로 부순 것은 해방 이후 일제의 잔재를 지우는 과정까지 그 건물의 역사와 생애로서 우리가 약속하고 서울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함이고, 군산에 일제강점기 건물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철거보다는 보존에서 우리가 가치를 찾았음에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사회적, 정신적 맥락에서 진행되는 건축물 복원에 있어 “원래대로 회복함”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복원에 대한 열린 생각


 혼자서 노트르담의 지붕을 시작으로 건축 문화재의 복원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복원에 있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대로, 원래대로 되뇌며 그저 전과 똑같이 보이는 것에 집중해 복원한 문화재들이, 과연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던 원형을 찾는 유일한 방법일까. 결국 나는 우리가 원하는 그 ‘원형’을 찾기 위해서는 복원과 그 방식에 대해 다양한 담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노트르담의 복원안들이 참고 있던 말들을 내가 그저 비웃으며 지나갔던 것이 아닌지 다시 돌아볼 때이다.


 마지막으로, 이에 앞서 필요한 것은 건축 문화재의 가치를 알아주는 우리의 태도일 것이다. 건축 문화재를 복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사랑하는 대중들에게서 나옴이 당연하다. 요즘에 다시 보이기 시작한 나팔바지와 청재킷은 언제나 옷장에 있었지만, 우리는 같은 물건으로부터 다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을 뿐이다. 다시 기억을 되새겨 우리가 스쳐온 건축 문화재를 곱씹어 보자. 그들은 항상 거기에서 우리의 새삼스러운 발견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노트르담의 첨탑이 비록 사라졌을지라도 시민들이 각자의 기억 속에 그 첨탑을 담아왔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라질 수 없는 완벽한 복원이 아닐까?          


  



WRITTEN BY

프로잡담러 F | 신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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