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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pr 15. 2022

좀비 - 천사의 시대

5호_건축과 향수_프로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K

게재 : Vol.5 건축과 향수, 2018년 가을




바야흐로 향수의 시대다. 과거의 모든 껍데기가 오늘을 덧입히고 있다. 뵈는 것과 들리는 것들의 하늘이 태풍 없이 잠잠하여, 천사의 재귀하는 날갯짓이 편안하다. 잘 알려진 '새로운 천사'의 발밑에 쌓인 것은 현실적 부조리의 잔해들이지만, 오늘의 대중문화세계에서 그의 발목을 잡아당기는 것은 죽은 스타일의 허물들이다. 저항할 수 없도록 미래로 밀어가는("irrestibly propels him into the future") 태풍의 이름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다. 천사는 과거에 사뿐히 내려 앉아 미라의 거죽들을 입어본다. 80년대 MTV, 60년대 싸이키델리아, 19세기말 상징주의, 16세기 튜더, 20년대 다이쇼 절충주의…. 무작위의 묘비명은 끝이 없고, 좀비-천사가 파헤칠 다음 무덤은 아무도 모른다. 


 물론 대중문화세계는 과거의 시체를 거름 삼아 자라나는 것이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게으른 자들의 전가의 보도이되,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다. 이천 년을 훌쩍 넘어서는 인간 창조물의 목록을 모두 피해가는 건 불가능하다. 당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므로, 당신의 피조물도 인간사의 맥락 속에 위치한다. 당연히, 문화세계의 역사를 주름잡은 '넥스트 빅 씽("the next big thing")'이 실제로 완벽하게 새로운 것이었던 때도 거의 없다. 말이 나온 김에 넥스트 빅 씽의 등장으로 이어져온 브릿팝을 이야기해볼까. 우리에게도 친숙한 오아시스Oasis-블러Blur 라이벌리는, 새천년을 목전에 두고 펼쳐진 새 시대 BGM 패권 다툼이었다. 경쟁의 촉발요인이야 여럿이겠지만 뉴밀레니엄에 대한 은연중의 기대야말로 범지구적 열기가 투사된 이유였으며, 실로 오랜만에 영국인들의 콧대를 높였다. 그러나 신천지의 소리세계를 둔 경쟁치고 내용은 전혀 새롭지가 않았다. 갤러거Gallagher 형제는 입고 있는 옷만 달랐지, 6~70년대의 영국 로큰롤과 미국 하드록을 참조했다.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은 좀 더 영국적이었지만, 역시 80년대 포스트펑크와 매드체스터의 조각들을 재해석했다. 미래를 향한 열기가 우습게도, 실상은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가 벌인 다툼이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들뿐인가. 영국이 한 판 벌이는 동안 대서양 건너에서는 70년대 초 하드록과 70년대 말 펑크록을 뒤섞은 그런지가 전성기를 구가했다. 또 그 때 뿐인가. 오아시스가 의도적으로 립-오프한 70년대의 '넥스트 빅 씽', 티.렉스T.Rex와 글램록 친구들도 새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로, 반짝이는 옷을 벗기고 나면 로큰롤과 부기리듬의 재탕이 남을 따름이었다. 


 보이는 것들의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 나온 김에, 옷 이야기를 해 보자. 음악이 넥스트 빅 씽에 집착하는 만큼 패션은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을 갈구해 왔다. 역시 90년대를 이야기하자면,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같은 일군의 어린 스타디자이너들이 전통의 패션하우스와 브랜드의 수장 자리를 꿰찼을 때가 딱 그랬다. 골수팬들이 저항하기도 했지만, 산업 자체가 전례 없는 팽창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었기에, 악동들이 쿠튀르와 레디-투-웨어를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새로운 복식언어를 창조하리라는 공통된 기대감이 있었다(그 점이 몇 년 선배인 앤트워프 식스Antwerp Six와의 질적인 차이점이었다). 개중에서도 알렉산더 맥퀸은 낭중지추로, 개인의 스타성이 겹쳐 '파격', '혁명', '천재'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정말 그의 컬렉션들은 모든 맥락의 바깥에서 등장한 것이었는가? 창조성에 대한 대중적인 신화와 달리,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역사와 지도 속의 스타일들을 대놓고 인용하는 편에 가까웠다. 97년의 첫 지방시Givenchy 쿠튀르 컬렉션("Search for the Golden Fleece")는 당대의 비평가들을 당황케 했지만, 결국 특유의 새빌 로우Savile Row 테일러링을 뽐내며 브랜드 이미지를 변주한 뒤, 그리스 신화를 연상시키는 고전주의적인 피스들을 매치한 것이었다. 또 시그니쳐 브랜드의 2005 S/S 기성복 컬렉션("It's Only a Game")은 파격적인 쇼 디자인으로 기억되지만, 옷을 살펴보면 기모노에 대한 공상과학적인 해석을 재해석하거나, 중앙아시아 민속의상, 미국 풋볼웨어를 접목한 것들이었다. 맥퀸은 천재였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신천지의 의복세계를 창조하지는 못했다. 그를 특별하게 만든 것도 신세기적 희망이 아닌 핀 데 시클(fin-de-siecle)적 관능과 절충이었다.


  거꾸로 나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거다. 과거를 거름 삼는 일에 예외란 없으니까. 그러나 들리고 뵈는 것들의 길고긴 세계에서 90년대 일부만을 샘플링한 이유가 있다. 대중(大衆) 정전화된 마지막 시기인 90년대와 오늘 사이에 현격한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과거가 과거를 취했던 방식과, 오늘이 과거를 취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오아시스, 블러, 맥퀸이 빛냈던 '마지막 과거'까지 문화는 과거를 '고아먹었다'. 창작자들은 셰프였고 웬만하면 구르메이기도 했다. 재료의 특질을 이해했고, 특질이 발현되도록 손질했으며, 목 적에 부합하도록 화합했다. 스타일은 언제나 분해되어 의도된 맛을 위해 선택되고 조리되었다. 사태를 고아 담백한 풍미를 내고 무를 고아 시원함을 더하듯, 과거가 큰 솥 안에서 고아졌다는 뜻이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 재료는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다. 완성된 음식 옆에 또 다른 완성된 음식이 있을 뿐이다. 놋그릇에 끓이는 신선로가 있고, 버거킹 더블-와퍼가 있고, 잘 쌓은 밀푀유가 있다. 선택된 재현들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도 없고, 재현의 순서에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지점이 있다. 어제의 창작자들이 전부 양식사적 지식과 통찰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부류가 거의 전멸한 오늘에 비해서는 평균적으로 나았을지도 모르겠고, 굳이 보자르까지 안 거슬러가도 역사/이론/비평 교육의 비중이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핵심은 애티튜드의 차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창작자들은 비평/이론과 관계 맺으며 장르 속 스스로의 위치를 이해하려고 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재료를 다 알진 않더라도, 스스로가 뭘 쓰고 싶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정도는 알려 했다. 누군가 새로운 재료를 소개하면 귀를 기울였고, '당신 요리엔 고춧가루가 너무 많다' 같은 평가에 반응하기도 했다. 애초에, 대중들이 비평을 읽었다. 버드맨Birdman의 타비사처럼 일간지 리뷰어가 권력을 발휘했고, 핫뮤직Hot-Music과 키노Kino의 별점이 매니아들을 움직였다. 롤링스톤RollingStone이나 아트리뷰ArtReview는 아예 세상을 흔들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취향존중이 시대정신화 했고, 취향은 양식과 절교했다. 좋을 대로 만들고 좋을 대로 보(듣)는 세상이 시작됐다. 생각해보라. 특정 장르영화를 선호하고, 감독이나 배우의 이름을 왼다고 해도, 그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역사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사람은 찾기 힘들어졌다. 수용자나 창작자나 마찬가지다. '어제의 왕' 갤러거 형제는 뵈기엔 기타 냅다 후리는 워킹클래스-히어로같지만, 뜯어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이를테면 2008년의 마지막 앨범("Dig Out Your Soul")이 택한 로큰롤 싸이키델리아의 면면을 보자. 그들은 밴드의 꺼져가는 동력에 대응해 비틀즈의 전환을 벤치마킹했다. 형제가 레논Lennon-매카트니McCartney콤비를 존경의 대상으로 꼽아온걸 떠올려보면, 영국 록큰롤의 계보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장르기술적인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맥퀸의 인용 또한, 무자비하고 무작위해 보였지만, 런웨이에 올라선 노동계급의 문화적 역할과 알리바이를 다분히 의식한 선택의 결과였다. 오늘은 달라졌다. 기술은 늘었으나 통찰이 줄었다. 당장 캐번 클럽The Cavern Club에 데려다 놔도 제 몫을 할 밴드가 널렸지만, 왜 '지금, 여기' 로큰롤이냐는 물음에 취향 이상의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부연해볼까. 이제 닳아버렸지만 '조선펑크'의 기치를 내걸고 홍대를 잡아먹었던 토착 펑크 그룹들이 있었다. '청년폭도맹진가'로 알려진 노브레인의 충격적인 데뷔앨범, [말달리자]를 앞세워 10만장을 팔아치운 크라잉넛의 1집이 그 기수였다. 음악 내적, 사회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90년대 말 남한의 록이 왜 쓰리코드여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세상을 바꾼다고 떠들던 이들은 /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 힘없는 / 사람들의 고함소리 하늘을 찌르고 / 아 98년 서울"(노브레인의 "98년 서울"). 민주화라는 거대동력이 멈추며 담론의 역사가 종말을 맞고, 모든 것이 소비로 재편될 때, 우리는 행복했는가? 아니라면, 그 공허감은 어떤 형태로 소화해야 하위문화로써 힘이 생기는가? 차승우와 한경록은 그 답으로 나름의 재료를 택했다. 안치환, 정태춘이 스스로의 재료를 고른 것처럼. 그게 98, 99년이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오늘을 보라. 물론 한국 펑크의 기술적 수준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장르사운드의 구현만을 놓고 보면 물 건너가 부럽지 않다. 스카펑크를 이어가는 루디건즈가 있다. 하드코어의 13스텝스가 있다. 패스트코어를 하는 더 베거스가 있다. 스케이트펑크 하는 스트라이커즈가 있다. 팝펑크의 라이엇키즈도 있다. 심지어는 일본이 토착화한 펑크사운드를 다시 수입하는 아티스트들도 있다. 룩앤리슨의 일본식 걸펑크, 이용원의 일본식 멜로딕코어가 그렇다. 이들은 엘르가든Ellegarden, 데드 케네디스Dead Kennedys, 그린 데이Green Day, 랜시드Rancid 사이에 끼워 놔도 위화감이 없다. 그런데 그들이 완벽하게 재현하는 역사 속의 다양한 소장르들은 '왜' 선택되었는가? 과거와 달리, 이유는 취향 뿐이다. 그것 외에 이유가 있었다면 라이너노트에 레퍼런스를 나열하며 사운드의 구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게 당연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소장르가 박물관식으로 난립할 일도,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K-인디 씬은 조그만 예시지만, 빌보드에서는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훵크, 알앤비, 뉴잭스윙, 슬로우잼 긁어모은 블랙뮤직 아카이브를 앨범으로 내고("24K Magic"), 그걸 현아와 친구들이 베껴서 파워슈트를 입고 뮤직뱅크에 서고(트리플H, "199X"), 다른 채널에서는 그라임에 버버리체크가 되살아나고(쇼미더머니, "요즘것들"), 네이버는 호명되지 못했던 90년대 가요 일각을 '시티팝'으로 불러 되살리고 있으니까("디깅클럽서울"), 아마 스코프를 확장해도 상황은 똑같을 것 같다. 


 향수에 중독된 것은 음악뿐이 아니다.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스타일이 소화되지 않고 무작위로 되살아나고 있다. 영화판에서는 재개봉이다. 독립영화관과 멀티플렉스를 가리지 않고 지나간 영화를 거는 유행이 번진다. 이건 씨네필들이 시네마테크에 모여 영화를 돌려보던 일과는 전혀 다르다. 작품의 선택에 시의성이나 영화사적 의미가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흥행기록과도 큰 상관관계가 없고, 심지어 5년도 안된 영화가 재개봉하기도 한다. 그냥 재개봉도 있고, 리마스터 재개봉도 있고, '영화제'라 이름 붙인 시리즈 재개봉도 있지만 핵심은 동일하다. 솔직히 뭘 되살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되살린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해진 것이다. 취향이 유일한 기준으로 산재하는 한, 가깝거나 멀거나 향수는 작동하니까. 그렇게 되살아난 영화들은 언제 죽었냐는 듯 의연하다. 영화의 생명은 은막에서의 짧은 시간이 지나면 원체험의 아우라를 잃지만, 또 필름을 돌리기만 산 사람과 다름없는 거죽을 뽐낸다. 그러므로 '복각'이라는 개념이 별도로 필요한 음악, 패션, 책과 달리, 다시 틀기만 하면 죽은 것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유행을 누릴 수 있다. 사실 영화가 시체의 거죽을 되살리는 방식은 대중화된 미술관에서 미리 예견됐다. 시각성의 전위를 담는 그릇으로써의 미술(관)을 포기하고 미술을 의사-대중문화화 한다면, 그만큼 향수의 유행에 잘 부합하는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옛날 그림 갖고 와서 벽에 못 치고 걸기만 하면 끝난다. 지금은 김홍희 관장 덕에 상당부분 제 기능을 찾았지만, 유희영 관장 경영 하 2007년부터의 서울시립미술관은 '블록버스터급' 유료회고전을 위한 대관단체에 불과했다. 마그리트Magritte, 모네Monet, 르누아르Renoir, 샤갈Chagall, 고흐Gogh 등의 시체팔이 회고전이 순서 없고 이유 없이 줄을 이었고, 대중들도 매표소 앞에 줄을 서서 화답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모범을 보인 덕에 지방의 국공립미술관들, 인사동의 갤러리들까지 모든 걸 내던지고 향수에 몸을 실었다. 음악을 먼저 언급했지만, 좀비의 역사로 치면 (의사-대중)미술이나 영화가 빨랐던 것이다. 


 왜 이렇게 됐나? 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미래를 향한 추동의 완전한 거세에서 찾는다. 어제의 대중문화라고 꼭 새로움만을 추구했다는 건 아니다. 이제 와서 모더니즘 운운으로 개별주체의 소사를 퉁치는 건 어리석은 짓이고, 문화세계의 어제가 오늘해가 떴다고 지나가는 것도 아니다. 기점으로 삼은 90년대 말 이전까지의 창작자들도, 각각의 사정을 살펴보면 독창과 혁신에 대한 지향성을 결여했을 때가 많았다. 물론 문화적 아방가르드 멘털리티가 처음으로 흔들린 순간이 미술/디자인이 맞이한 포스트모던임은 부정할 수 없다. "80년대가 오며 아방가르드가 완전히 죽었다는 깊은 자각이 생겼다. (...) 이전 세대의 예술가들에게는 '누가 뭘 먼저했냐' 같은 생각이 여전히 중요했다. 오늘에 누가 그딴 걸 신경쓰는가?" 마크 디온Mark Dion이 아트포럼Artforum2003년 4월호를 통해 지적한 대로, 70년대 중후반 미술과 디자인이 각각 대중문화와 역사양식을 가져다 쓰며 독창성에 대한 집착이 한 풀 꺾이게 되었다. 1981년 MTV의 개국으로 한층 더 자본화된 대중음악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비슷한 상황에 처했는데, 처음으로 과거를 모방하는 아티스트들이 존경을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이 조성한 것은 ‘뒤돌아보는 마음’이었을 뿐, 그것이 곧바로 역사가 뒤에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시간성 자체를 무너뜨린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많은 평자들은 포스트모던이 모던의 대체가 아닌 비평에 가까웠다고 지적한다. 돌이켜보면 할 포스터Hal Foster의 첫 편저(“The Anti-Aesthetic")에 실렸던 하버마스Habermas의 유명한 에세이 [모더니티 : 미완의 기획(“Modernity : An Incomplete Project”)]도 마찬가지다. 발 빨랐던 것 치고 당대의 문화세계에 즉각적 영향을 끼치진 못했지만, 핵심이 여전히 모던에 있다는 통찰으로 후기근대론으로의 전환을 이끌었으니, 문화세계에 대해서도 예지자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포스트모던의 발흥 이후로도 근본적인 마인드셋은 변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거나 걸음을 늦추려 하되, 미래로 나아간다는 동의기반은 그대로였다. 그 시간성이 사라진 것은, 역시나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예견한 기대감소 시대가 실제로 도래한 이후였다. 개선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자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말마따나 '영원히 자유낙하 하느라 전후가 사라진' 세계관이 시작됐다. 마침내, '새로운 걸 만들거나 아니거나, 어쨌든 다가올 미래에 대응한다'는 창작의 태도도 무의미해졌다. 대응해야할 미래가 없어지고 각자의 취향만이 난립할 때, 창작에게 남은 옵션은 아무 과거의 껍데기를 아무렇게 입어보는 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새로운 걸 만들 생각이 없더라도 문화세계의 시간성을 염두에 두고 재료를 소화해 섞는 것과, 취향의 충족만을 위해 결과물을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일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렇게 후자로 접어든지 10년, 우리는 향수에 만취해 영원한 오늘에 도착했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망상을 구현하려는 부류도 있다. 당연하지만 자본과 조금 거리를 둘 수 있는 예술가 일군이다. 대표적으로 흔히 얼터모던이라고 부르는 추상회화가 여기에 속한다. 지난 추상의 형식적인 부활이라는 비하적인 의미에서 좀비 포멀리즘이라고도 불리지만, 모든 시간이 동시에 존재해서 어느 시간에서 왔는지 알 수 없게 하는 전략으로 종말에 쓸려가지 않는 데에는 성공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건축인데, 예술과 대중문화 양쪽에 다른 발을 걸치고 있어서인지, 한 쪽은 지독한 향수 중독에 시달리면서도 다른 쪽은 얼터모던에 비교될만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우선 순응하는 쪽에 담근 발을 볼까. 건축의 극히 대중적인 측면은 여느 동료들과 다름없이 과거의 거죽을 걸치고 벗기를 반복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기반의 브랜드 컨설팅으로 꾸며진 '공간'들이 그렇다. 취존의 시대가 도래 한 뒤, 거시적으로는 90년대 일본과 유사하나, 내용적으로는 덕후력과 감식안을 결여한 2-30대 거대 유사-힙스터 그룹이 등장했다. 사회경제적 제한은 그들을 카페공간, 밥공간, 놀이공간, 술공간으로 이어지는 외주된 삶을 살도록 했고, 자연히 거대그룹의 취향게임은 모두 공간들에 집중되었다. 이걸 내버려 둘리가 없었다. 힙하다는 동네의 힙한 곳들은 각각 어딘가의 어떤 스타일을 잘라 와서 재현하기 시작했다. 어딘가는 포틀랜드 가정집, 어딘가는 베트남의 노상식당을 빼다 박아놨고, 또 어딘가는 18세기 로코코 궁전을 베껴놓았으며, 또 어디는 30년대 일본의 한 코너를 통째로 옮겨 놨다. 요즘은 90년대 한국의 장면을 그대로 살리는 게 유행인 것도 같다. 실존하는 외견이 아니라도 좋다. (장사는 굴러갈 선에서) 취향을 과시할 수 있도록, 왕가위王家卫나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의 영화 속 공간 같은걸 모방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스타일을 대놓고 붙여놓을 때도 있는데, 이를 테면 을지로의 ‘거북이’ 카페는 유럽식 쇼케이스 위에 60년대 한국 먹글씨 간판을 붙여놓고, 안에는 근대 일본식 간식을 팔고 있다. 두 개 이상의 스타일을 한 작품 안에 병렬하기 어려운 다른 매체와 건축의 차이라 하겠다. 


 와중에 건축의 예술에 걸친 발은, 스타일과 관련 없는 모든 것을 알리바이 삼으려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재료에서 근거를 찾으려는 경향이다. stpmj의 이승택은 한국에서 진행된 소규모 주택 프로젝트들을 이야기하며, 본인을 포함한 젊은 건축가들 다수가 재료를 테마로 삼는 데에는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젊은 건축가들은 망상을 구현하기 쉽지 않은 소규모 프로젝트를 연이어 맡으며 재료를 쉬운 알리바이로 선택하고 있다. 이건 현실적 문제가 없어도 마찬가지로, 철지난 현상학에 기대는 좀 더 성공한 자들의 '재료성'은 더 비싸고 명상적일 뿐, 무시간성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또 다른 부류는 컴퓨팅 알고리즘에 알리바이를 둔다. 당연하지만 대표적인 것이 시대를 풍미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인데, 알고리즘에 따라 형태를 뽑아내는 과정을 실제 이론화하는 데 더 큰 공이 있는 것은 패트릭 슈마허Patrik Schumacher와 그의 파라메트리시즘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컴퓨팅 환경의 발전은 대학생도 (적어도 화면 상에서는) 알고리즘에 따른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3D 프린팅의 발전에 힘입어 포텐셜은 더욱 성장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유망한 알리바이로 간택받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하는 것은 사회경제적인 현실을 평가한 결과를 형태로 옮겨버리는 부류다. 이 부류도 빅데이터 처리기술 등 컴퓨팅 환경의 발전에 기대고 있다. 올해 문체부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경계없는작업실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는데, 건축가들로만 이뤄진 여타 소규모 사무실과 달리 투자검토, 사업개발, 혁신기술을 담당하는 파트너들이 함께 운영한다. 심지어는 데이터를 활용한 부동산개발 솔루션을 만드는 자회사도 설립했다. 건축적인 판단을 유보하고 모든 것을 사회경제적으로 조건화하여 형태로 변환하는 방식이므로, 스타일에 대한 판단도 자연스럽게 유보되어 알리바이가 창출된다. 뉴욕의 샵SHoP Construction도 부동산과 건설에 대한 관심을 디자인의 솔루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아예 알리바이를 의탁하는 수준은 아니다. 또 렘 쿨하스Rem Koolhaas는 특수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과장해서 해석하므로, 그 둘의 사이쯤이 길일 것이다. 


 오늘의 천사가 바닥에 주저앉아 살가죽의 인형놀이를 벌이는 모습은, 어제의 [스릴러("Thriller")] 속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을 떠올리게 한다. 대중문화를 빛낸 최고의 팝스타는, MTV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수십 좀비들과 한 판 군무를 벌인다. 그렇다. 어제의 좀비들은 스스로 관 뚜껑을 박차고 나와 마이클 잭슨과 춤을 췄다. 오늘의 좀비는 껍데기만 남아, 진보의 폭풍에 밀려가지 못한 천사가 뒤집어 쓸 때에야 한 순간 움직일 뿐이다. 바야흐로, 좀비-천사의 시대다.




WRITTEN BY

프로잡담러 K | 곽승찬 | ksc2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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