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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pr 07. 2022

겨울을 되돌아보며: 기울어버린 순간들

6호_건축과 겨울잠_공정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K

게재 : Vol.6 건축과 겨울잠, 2018년 겨울



*공정잡담은 건축학도의 눈과 입으로 건축 물공정을 직시하고 고발하는 『잡담』 의 고정섹션입니다. 가을호의 '공정건축연대' 소개에 이어, 본 호에서는 공공건축의 공정성이 무너졌던 올 겨울 두 번의 순간들을 소상히 되짚어 봅니다.


[순간O] 

왜우리는 패배하는가? 

건축에 대한 낡고 흔한 농담들은, 우리가 얼마나 힘들고 또 힘들어질지를 이야기한다. 밤샘과 크리틱에 관한 가벼운 욕지거리들, 탈설(계)와 기대소득에 관한 자조적 한탄들. 농담은 언제나 진실의 흔적이다. 견딜 수 없는 진실이 틈을 만들 때 농담은 삐져나온다. 이미 레버를 당겨버렸지만, 닥치고 기어를 들리기는 너무 힘들어서, 농담이라도 뱉어 보는 거다. 그러므로 농담을 공유하는 우리는 근본적으로 패배감을 공유한다. 우리는 힘들어 못 산다. 공부가 길어서, 과제가 많아서, 취업문이 좁아서, 월급이 적어서, 노동강도가 높아서, 경쟁자가 많아서, 그리고 몇 가지 다른 이유에서, 건축, 힘들어 못산다. 


그런데 그것 뿐일까? 우리가 왜 ‘계속' 가라앉는가? 학기에 죽도록 설계하고, 방학에도 너나없이 공모전에 투신하는데, 왜 뱃속 깊은 패배감은 가시질 않는가? 취업 어렵고 월급 적은 게 건축만의 사정은 아니다. 계층격자가 극단화하고 사회안전망이 붕괴하는 게 우리에게만 일어나는 일일 리도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상대적으로' 지는 기분인가 말이다. 내면의 성취에서 행복을 잦는 건 아름답지만, 삶은 결국 남들과 부대끼며 결정되는 게 아닌가. 그러니 패배감을 따져 물어본다. 건축대학만큼 노력이 상향평준화된 곳도 없는데, 결말은 왜 남들만큼도 안 되는지. 그렇게 노력하는데, 왜 떵떵거리며 사는 젊은 건축가 선배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지. 내일에 대한 상대적 전망은 왜 갈수록 하향조정 되는지. 


보편적인 개인이, 인간적인 수준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의 원인은, 구조에서 잦아야 한다. 설계는 창작이지만 그 현실적 구조는 계약이다. 발주의 주제와 형태가 어떻게 되었든, 건물 이전에는 반드시 권리와 의무를 지정하는 계약이 있다. 계약이 없다면 창작도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서 계약은 제도에 따른 약속이다. 따라서 건축의 판이 세상의 판보다 더 기울어 있다면, 우리가 맺고 있고 있는 ‘제도에 따른 약속'을 살펴봐야 한다. 민간영역부터 볼까. 민간 발주 설계비에 대한 법적인 기준은, 놀랍게도, 전혀 없다 ‘건축사 용역의 범위 및 대가기준’이 2009년 폐지된 이후 민간 발주 사업에는 최소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건측물을 규제하는 각 종 법규들이 있는 이유는 모든 건축물은 기본적으로 공적이기 때문이다. 각종 인증, 심의, 기준은 늘어날 뿐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건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공공성을 지켜줄 장치가 필요하다. 건축가들이 건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약속들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니 지속인 저가수주 출혈경쟁이 일어난다. 건축가들은 제대로 된 건축을 해보기는커녕 살아남기도 어렵게 된다. 건축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어떡하면 좋을까? 공공영역부터 건드려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공공영역이 모델이기 때문이다. 공공이 앞장서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발주규모와 형식을 아우르는 공공영역에서의 의식적인 고민으로, 지속 가능하며 미래지향적인 건축시장의 형태를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과 민간이 완전히 같을 순 없겠지만, 대가기준과 공모진행에 대한 선진적인 기준을 세울 수는 있다. 현재의 민간 설계비도 공공발주의 기준을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둘째, 공공건축의 덩치가 크기 때문이다. 지어지는 건물은 한 해에 12만 재가 넘는다. 이는 2016년 기준 공사비만 26조5700억원에 달한다. 전제 건축 공사의 15.4%다. 공공건축물 동수의 연평균 증가율 은 2.5%가량으로 전국 건축물보다 2.5배 높으니, 비율은 더 커질 예정이다.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민간건축보다는 공공건축이 늘어날 개연성이 크다. 그러므로 공공발주 영역에서 공정 성을 우선 확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유효한 첫걸음일 것이다. 


물론 공공건축은 민간과 달리 최소기준이 존재한다. 건측사법 제19조의 3에 따라, 국가, 지방 자치단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건축사업에 대해서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이라는 행정규칙을 두고 있다. 여기서는 건축물의 공사비에 따라 요율이 책정되어 있다. 2013년에는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도 제정되어, 설계비/공사비가 특정 금액 이상일 경우 반드시 공모를 진행하도록 했으며, 공모전의 진행방식도 일부 규정했다. 그렇다면 공공건축의 운동장은 좀 덜 기울었는가? 글 쎄,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이번 호의 ‘공정잡담' 코너에서는, 이번 겨 울을 되돌아보며 공공건축에서의 공정성이 무너졌던 순간들을 복기하며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들여다본다.


[순간 1] 

12월 국립 임시정부기념관 

당선작무효소송 

[도판] 임정기 기념관 설계공모 당선작 조감도(http://www.mpva.go.kr/open/open210_list.asp)

 

가장 가까운 것은 국립 임시정부기념관 당선작 무효소송이다. 임시정부 기념관은 “(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지닌 역사적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임시정부 관련 자료를 수집, 보촌, 연구, 전시하며 체험과 교육의 장을 마 련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서( ... )" 추진된 사업이다. 대략 역사기념관이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자료 보존과 전시기능을 수행할 듯한데, 별별 국공립/사립 기념관이 있는 마당에 이제야 임시정부기념관이라니 당위성은 충분해 보인다. 실제로 문재인 당시 민주당 경선후보는 2017년 3월 서대문구 의회를 방문했을 때 이 사업의 역사적 중요성을 지적하며, 정권이 교체될 시 사업주제를 서대문구-서울시에서 국가로 격상시킬 것을 예고했다. 


"특히 2017년 3 · 1 독립 운동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된 그 100 주년이 2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까지 임시 정부의 역사와 공적을 기념하는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간이 중심이 되고 또 우리 서대문구와 서울시가 지자체가 함께 뜻을 모아서 이미 필요한 예산까지 확보하고 있는데 정부가 그에 필요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임시정부기념관 만큼은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국립 시설로 건립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촉구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 정부가 끝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정권 교체 후에 새로 수립 될 제3기 민주 정부가 임시정부기념관을 국립 시설로 건립하겠다는 약속말씀을 드립니다.“ 


이 발언과 뒤이은 문재인정부의 수립으로 사업이 비로소 탄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말마따나 2019년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므로, 속도를 낼 당위성도 충분했댜 2017년 12월 국무총리 소속으로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이하 건립위)가 발족했다. 그 아래에 국가보훈저 소속으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주진단도 두었다. 조달청을 통해 정식 기념관 설계공모를 발주했다. 서울시 서대문구 현 저동 산5-5 3656m2의 부지에, 연면적 9000m2 내외의 기념관을 기븐 설계까지 진행하는 것이 공모의 골자였다. 예정공사비는 260억, 예정설계비는 7억 2천만원으로 책정되었다(프로젝트 서울 홈페이지 기준. 중앙일보는 356억/7억6천으로 보도). 2018년 9월 13일 시행이 공고 되었고 11월 28일에 작품접수가 마감되었다. 새로 도입된 서울시 공공건축 물 발주제도(project.seoul.go.kr)를 통해 전체적인 과정이 운영됐다. 


2018년 12월 6일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는 마침내 당선작을 발표했다. 16개팀 중 1등을 차지한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의 ‘시작되는 터, 역사를 기억하는 표석이 되다' 안이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실시설계과정과 공사자 선정을 거쳐 착공을 시작할 2019년 4월로 달려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당선작이 발표된 1주 만에 상황은 달라졌다. 12월 13일, 3등을 차지한 건축사사무소 53427의 고기웅 소장이 당선작과 계약을 체결하지 마라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공모에 참가한 16개 팀 중 절반 인 8개 팀은 공모전을 관리한 조달청을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당선 작에 지침을 위반한 사항이 있지 않은지, 건축법 위반사항이 있는지를 공개 하라는 것이었다. 


그저 질투심에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싶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중앙일보가 단독으로 보도한 공모전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첫째로 공모가 평등하지 않았다. 당선자인 유선엔지니어링은 공모전 이전에 최저가 입찰로 발주된 연구용역으로 선정되어 수개월간 기념관이 어떻게 지어져야 할지 연구를 수행한 업체다. 즉 다른 참가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그 정보가 모두 공개되지 않았다’’라는 것이 고기웅 소장의 주장이다. 실제로 보도에 따르면 16개 작품 중 당선안만 경사지를 파내고 독립공원과 건물을 이어 지도록 하는 안을 제출했고, 나머지 안들은 경사지 위에 건물을 앉혔다. 우리는 안다. 그 아이디어가 대단히 떠올리기 어려워서 유선엔지니어링만이 해낸 것일 리 없다는 것을. 제한된 공사비로 인해 어렵다는 판단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실제로 건립위 관계자는 "(사전용역 당시 논의과정에서) 통로를 설치하자는 제안이 수차례 나왔으나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돼 공모지침에 경사지 관련 내용을 넣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조달청도 용역결과를 알았을 텐데, 왜 정작 공모에서는 버린 아이디어를 선정한 걸까? 반대로, 애초에 그 아이디어를 원한 거라면, 참가자들이 공사비로 인해 오해하기를 의도한 게 아닌 다음에야 ‘경사지를 파내는 안을 제시하라’고 지침에 넣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조달청은 효율적이고 풍성한 경쟁을 원하지 않았던 걸까? 특히나 사전용역을 통해 컨셉과 아이디어에 대한 연구를 거친 후였으니 이런 의심은 짙어진다. 조달청이 설계방향에 영향을 행사할 권리가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이에 대해 조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계약법령에 따라 사전 기본설계 용역을 수행한 업체는 설계공모에 참여할 수 있고, 당선작은 적법하게 선정 되었다”라는 아주 원론적인 입장을 냈다. 누가 용역업체는 공모에 참여하면 안 된다고 말이라도 했는가? 과정이 불법이었다고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탈법인지가 아니라, 그것이 공정했냐는 것이다. 용역업체가 설계공모에 참여할 때는 그가 사전의 지위를 이용하여 더 많은 정보를 취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불가하다면 용역 업체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되 공모에서는 제외토록 해야 한다. 현행법이 이 정도의 공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법을 고쳐야 할 문제다. 공모전을 스스로 꾸릴 여건이 안 되는 공공기관에 수수료를 받고 운영을 대행하는 게 조달청의 주요 업무다. 국민의 세금을 들인 공공발주공모의 상당부분을 운영하며, 그것으로 먹고 사는 조달청은, 문제가 있다면 해결을 해야지 법 뒤에 몸을 웅크릴 위치가 아니다. 


“그간 조달청을 겨냥한, "했다더라”는 설(說)은 넘쳐났다. "올해 조달청의 공모 수주를 00업체가 휩쓸었다더라’' "그 업체가 참여하는 조달청 공모에는 안 들어가는 게 낫다더라’' "로비력이 상당하다더라”와 같은 이야기다. 조달청은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120여명의 심사위원 명단을 갖고서 무작위로 선출한다. 하지만 이 명단이 통으로 사전에 관리되고 있다면 어떨까.”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 공모에서도 건립위가 선출한 심사위원 3명과 조달정이 뽑은 심사위원 6명 증, 유선엔지니어링에 만점을 준 심사위원은 모두 조달청이 뽑은 심사위원이었다고 한다. 또 논란이 일어난 작년 12월 11일, 건립위원장은 "당선업체와 어떤 행정 절차도 진행하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정작 조달청이 이틀 뒤 계약을 강행했다. 이러고도 조달청이 사심 없는 평등한 공모를 진행했다고 보는 건 쉽지 않다. 


제기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더 명백한 것은 공모의 과정도 공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기웅 소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선안이 너무 심하게 설계공모 지침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애당초 이 공모는 과도한 경쟁을 막고자 스케치업 이미지만을 제출할 것을 지침에서 밝혔다. 보편적인 일이 아니므로 참가자들은 여러 차례 조달청에 질의했지만, 답은 늘 같았다 : “스케치 업을 활용한 조감도 세 컷만 첨부할 것.” 그런데 정작 당선작은 풀 렌더링 이미지를 갖추고 있었다. 조달청은 여기에 대해서도 "‘조달청 건축설계공모 운영기준'에 따라 설계지침 위반 시 실격처리 권한은 심사위원회에 있음'’이 라는 회피성 답변을 내놓았다. 공식적으로 공모를 대행하는 조달청이 갑자기 실격처리에 관한 권한이 없다는 말이 그 자체로 우스운 건 둘째지자. 조달청 이 언급한 조달청 건축설계공모 운영기준을 살펴볼까. “제13조4항 : 주관부서의 장은 공모안이 (…) 심사대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설계공모 심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해당 공모안을 심사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여기서 ‘주관부서’는 다시 제3조6항에 따라, "(…)시설공사 맞춤형서비스를 수행하는 조달청 담당부서를 말한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순간2] 

11월-부산동래구 

신청사 설계공모 이의제기 

[도판 2] 동래구정 신성사 설계공모 당선작 배지도 (http://www.dongnae.go.kr/ - 구정소식)


[도판 3] 동래구청 신청사 설계공모 2등작(우수상) 배지도 (출시 상동)

 

그 한 달 전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이 일어났다. 부산 동래구 신청사 설계공모가 그것이다. 시작은 여느 지자체의 신청사 수립과 다르지 않았다. 기촌의 동래구청사는 1963년 지어졌다. 자연히 업무공간과 주자 장이 좁았고, 정밀 안전진단에서도 D등급을 받은 상태였다. 동래구정은 이에 따라 "(…)동래다운 신청사 건립으로 구민의 자긍심을 고추|시키고, 노후하고 분산된 공공정사를 한 곳에 모아 행정기능의 집증화를 통한 양 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여 주민 복지 증진 및 동래구 발전을 도모"하 고자 2018년 6월 12일 기본 및 실시설계 공모를 열었다. 사실 공모의 목적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1993년에 이미 동래구청이 자체적으로 청사가 낡고 비좁음을 이유로 들어 신청사 수립을 추진했다. 2006년에는 구청장이 신정사를 본격적인 과제로 꼽으며 지금과 다르지 않은 이유를 들었다. 그러다 2007년 정사 부지에서 동래읍성이 발견되며 난항을 겪었고, 2008년에 재정난, 불경기를 고려하여 유보했던 터였다. 다른 부지를 알아보는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2016년에는 결국 구정사의 위치에 신정사를 짓겠다고 재확정했다. “10여 년 전부터 신청사 건립 기금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기금을 차곡차곡 쌓아"온 시점이었다. 즉 신청사 건립은 25년 가까이를 공들여온 동래구 대망(大望)의 사업이었다. 


동래구는 조달청에 공모를 위임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면적 28,800m2, 예정공사비 590억원, 예정설계비 23억원에 달하는 사업인 만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21조2항에 해당되는 공모였고, 그에 따라 국토교통부 행정규칙인 건축 설계공모 운영 지침을 따라 운영되어야 하는 극히 공적인 공모였다. 그러나 예열이 길다고 잘 달리는 건 아닌 걸까.  2018년 10월 5일 접수를 마감하고, 10월 12일 심사를 거쳐 결정된 당선작은 곧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총 3팀이 작품을 접수하여, ING와 하나건축사사 무소가 출품한 ‘동래연경’이 당선되었는데,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2등으로 꼽힌 사무소가 이의를 제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의는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모전 참가자의 이의제기에 관한 권리는 설계지침은 물론 행정규칙 에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설계지침은 "특히 공모안 제출자는 심사과정에 관여하거나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 라고 역으로 못 박았다. 한편 행정규칙 제36조는 계약상대자가 "부적격자로 판명되’'거나 ‘‘부도 등 불가피한 사유로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경우’’, 계약상대자가 포기서를 제출하면 심사위원회가 계약대상자를 바꿀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 발주기관은 계약상대자가 결정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0일 이내에 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부적격자로 판명'되는 기준이나,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특별한 사유’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부연 이 없다. 즉 공모결과가 발표된 후에도 발주기관-당선자-경쟁자는 현격한 힘의 차이를 가지고, 경쟁자의 이의제기는 검토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된다.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등 사무소는 동래구를 상대로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임시정부기념관과 마찬가지로, 곧바로 법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당선작은 지침을 위반했음에도 감점이 없는 반면, 그들의 안은 감점요인이 없는데도 점수가 깎였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설계지침에 따르면 신청사의 주민 편의시설은 별개의 동에 위치해야 하는데, 당선작은 청사의 지하에 두었는데도 감점되지 않았다. 여기서 2등 사무소는 "동래구가 임의적 판단을 심사위원에게 전달해 죄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둘째, 2 등 사무소는 동래읍성 부지는 축성 구간을 바닥 패턴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표시했다가 감점을 받았다. ‘‘해당 지침을 안내받을 때 표시 방법이 반드시 바닥 패턴이어야 한다는 말은 없었다.”라는 것이 고들의 증언이다. 


동래구청은 반박했다. 우선, 첫째 근거에 대해서는, "구의 의견을 전달한 것은 심사위원들이 먼저 의견을 물어왔기 때문이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적이 없다”면서 "민간지원시설이 청사와 별도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업무 공간과 주민 공간이 분리돼야 한다는 취지다. 같은 동에 자리하더라도 지하에 있어 본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고 대응했다. 또, "동래읍성 축성 구간을 바닥 패턴으로 표시해야 한다는 점은 처음부터 안내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첫 번째부터 볼까? 우선 공모지침의 8페이지를 보면 ‘‘구청사 및 구의회와 별동으로 어린이집 및 주민지원시설(사용수익허가시설)을 배지"한다고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취지'야 어찌됐든 구청사와 의회 2개동으로만 이뤄지는 당선안은 지침을 명시적으로 어겼다. 그렇다면 이걸 봐주도록 동래구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건 사실일까? 확인할 길은 없다. 공개된 심사회의록에 따르면, 심사위원들은 실제로 "발주청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여기에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구청과 심사위원회 간에 어떤 톤으로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심사위원회가 먼저 의견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이 발언은 문제가 많다. 심 사위원회는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시행령과 건축설계공모운영지침에 따 라 발주기관의 권한을 적법하게 위임받은 전문가 집단이다. 발주기관이 별달리 감점사항을 제출하지 않았다면, 나머지는 그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완전하지도 않은 그 한줌의 권한마저 스스로 포기한다면, 건축전문성이 권력과 자본의 시녀가 되지 않도록 지켜줄 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렇다면 둘째 근거를 살펴보자. 이에 관한 관련 내용 또한 설계지침의 같은 페이지에 있다. 선술한 정사부지의 동래읍성에 대하여, 설계지침은 "잔존 상태가 양호한 구간(30m)은 보존하고 나머지 구간은 바닥패턴으로 처리하나 향후 읍성 복원이 가능하도록 건축물 배치계획 수립하여야 함(필로티 등으로 처리 가능).”이라고 지정한다. 비교해보자. 양호한 30m 구간은 당선작과 우수작 모두 보존했다. 그러나 당선작이 바닥패턴으로 나머지 구 간의 흔적을 남긴 것에 비해, 2등 수상작은 그렇지 않았다. 동래구청이 공개한 패널의 해상도가 낮아 아주 정확한 파악은 어려우나, 2등 수상작은 성벽 일부구간을 선큰으로 처리하고 나머지를 비워 둔 것으로 보인다. 즉 선큰을 ‘다른 표시방법’으로 어렵게 인정하더라도, 나머지 구간의 흔적은 지워졌다. 이 부분은 명백히 2등 사무소의 잘못이다. 애초에 지침에 기재 된 사항이므로 ‘반드시 바닥패턴으로 해야 한다고 안내받지 않았다’는 말 이 성립하지 않을 뿐더러, 설사 구두로 예외를 인정받았더라도, 나머지 부 분이 복원 가능하도록 계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근거가 무용하더라도, 동래구정 신청사 설계공모 논란은 헛바람이 아니다. 기관이 임의로 설계지침을 어긴 작품을 수용하고, 그걸 심사위원회가 묵인한 명백한 불공정 사건이다. 물론 임정기념관 공모의 불공정은, 기회와 과정 전반에서 판이 기운 흔적이 더욱 노골적이었다. 그러나 공모주제가 (소위 공모에 인이 박힌) 조달청과 일반지자제로 서로 다름을 상기하면, 주제에 따른 정도의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건들을 소상히 되짚으며 발견한 제도의 틈이다. 조달청의 심사위원명단이 공정하게 관리되게 강제할 장치가 없다. 사전용역을 수행한 업체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공모에 참가하는 것을 막을 제도가 없다. 출품자의 정당한 이의제기가 무시되는 것을 막을 방편이 없다. 기울었던 순간들을 가십으로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소를 되잦든 않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할 때다. 미래의 건축인들이 패배하지 않도록 이 틈을 메우기를, 책임감 있는 기성 건축계에 강력히 촉구한다.


참고문현 

장영호 (2017.8.17). 

공공재 ‘건축, 시장자율경제에만 맏겨도 되나. 건축사신문 

죄동규. (2014.11.18). 

민간건축 설계비 산출가이드. 한국건설 신문 

한은화. (2018.11.24). 

공무원이 베껴 기획, 허울뿐인 공모전 … 싼 티 나는 공공건축. 중앙SUNDAY 한은화. (2018.12.23). [단독] 임시정부 100년 기념관, 무효소송 휘말렸다. 중앙 일보 

한은화. (2018.12.27). [취재일기] 조달 정의 공공건축 발주 시스템 확 바꿔라. 중앙일보 

정아란 (2018.12.24). 임시정부기념관 설계공모 당선작 소송 휘말려. 연합뉴스 김선호 (2018.11.27). 부산 ’ 동래구 신청사 설계 공모전 ‘동래연경’ 당선, 연합뉴스

연합뉴스. ’(1993.6.24). 부산 일부 구정,' 멀쩡한 청사 이전 경쟁 예산 낭비 눈총 연합뉴스 

양병하. (2006.8.8). ”[영남]"동래구를 죄 고 상종가로 견인할 것 . 주간경향 부산일보. (2007.1.3). 동래구청 신청사 건립 난방. 부산일보 

부산일보. (2008.12.4). "경기도 어렵고…" 동래구 신청사 유보. 부산일보 김화영, 박호걸 (2016.7.3). 부산 동래구 신청사 현 위지 신측…해운대 용역으로 결장국제신문 

신심법 (2018.11.6). 동래구 신청사 건립 설계공모 심사 불공정 시비. 국제신문 

국가공공건축지원센터. (2017). 2016 숫자로 보는 공공건축. 세종특별자치시: 국가공공건축지원센터. 

조달청 (2018.12.24). [보도설명자료] 임시정부기념관 설계공모 심사 공정· 투명하게 진행 [중앙·조선 12월 24일 보도에 대한 설명〕. 서울특별시: 조달 징 

프로젝트 서울. (2018). 국립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축설계공모 설계대상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청. 

동래구청 재무과. (2018.10.19). 동래 구 신청사 건립공사 설계공모 입상작 알림 

부산광역시: 동래구청 부산광역시 동래구. (2018.6.12). 동래 구 신청사 건립공사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설계공모. 

부산광역시: 동래구. 공정건축연대 페이스북 페이지[웹사이트], (2019.1.3). URL : https://www. facebook.com/safik.org 

IDR아키텍스 블로그 건축설계비 산정의 진실[웹사이트]. (2019.1.3).

URL: https://blog.naver.com/idrarchi/221385470870 

건축사법 제19조의3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시행령 

건축 설계공모운영지침 

조달청 설계공모 운영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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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잡담러 K | 곽승찬 | ksc2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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