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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배우 Jul 25. 2024

자전거와 함께 느릿느릿 제주

이 정도 속도가 딱 좋다

@제주 여행 2일 차 오후


숙소 근처에 있는 애월 해안도로를 따라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걷고 또 걷다가 카카오 바이크가 보이길래 무작정 올라탔다.


사실 자전거를 타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세발자전거 이후로 자전거와의 인연이 끊겼던 내가 다시 안장 위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은 친구와 애인의 도움이 아주 컸다. 지금도 잘 타는 편은 아니라 코너링이 굉장히 삐걱거리고, 멈추는 것과 시작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내가 잘하는 것은 관성을 이용한 질주뿐. 앞이나 옆에 사람이 지나가거나,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는 삐질삐질 땀이 난다.


혼자, 그것도 타지에서 자전거를 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애월 쪽 바다에는 자전거 도로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신나게 자전거를 탔다.

아니, 사실 무서워서 브레이크를 어찌나 눌러댔는지 일기를 쓰고 있는 이 손이 얼얼할 정도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내 모습을 직접 바라볼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 유체이탈을 하여 페달을 밟는 나를 바라보는 상상을 하곤 한다. 왠진 모르겠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은 굉장히 멋지고 대단한 일 같다. 두 다리와 균형감각을 동력으로 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 신비한 자전거의 세계를 알게 해 준 주변 사람들에게 참 감사하다.


아쉬운 건 멋진 풍경을 그때그때 멈춰 서서 담기가 어렵기에 눈으로만 담고 패스해야 한다는 것.

위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멈추는 것과 출발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하기에 자전거만 타면 졸지에 앞만 보고 직진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아무도 나를 멈출 수 없어....


'자전거 타는 나'에 취해 씽씽 달렸더니만(사실 멈추지 못해서 계속 달린 것도 한 몫했다.)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는 경고가 떴다.

뭐 큰일이야 나겠어?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쳤더니 2만 원을 내라는 알림이 왔다.

이건 큰일이다. 


다시 만회할 기회를 주길래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전기배터리가 다 닳아버린 것이다. 쌩쌩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무거운 자전거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보니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가 된 듯했다. 우리 지금까지 가벼웠잖아. 좋았잖아. 

몸도 마음도 무거워서 고객센터에 연락했더니 이동이 힘들면 그냥 그 자리에서 종료하라고 한다. 지도를 봤더니 이미 서비스 지역에 도착.... 진작 물어볼걸

그렇게 깔끔하게 자전거를 반납하고 눈앞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지도를 보니 어느덧 숙소에서 6.8km나 떨어진 곳에 와있었다.

뚜벅이었던 내가 자전거 위에 올라탐으로써 더 커진 세상과 풍경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걷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자전거.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자유로움, 이것이 내가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다. 

물론 전기배터리 완충은 필수조건!





카페에서 이번 여행에 곁들이기 위해 가져온 책을 꺼내 읽었다.

이번 책의 제목은 <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 

한마디로 감탄고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 계속 노트에 옮겨 적으며 읽었다.


일요일 오후 세 시. 무언가를 시작하긴 애매한데 그렇다고 하루를 포기하긴 아까운 시간.
서른 살이 됐을 때 딱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일요일 오후 세 시와 서른 살이라니. 기가 막힌 비유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입버릇처럼 오후 3-4시가 되면 "하루 다 갔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어느덧 내 나이는 서른을 넘었다. 뭔가를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아까운 나이에 접어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으며 힘을 내본다. 


경박한 호기심에 손가락을 맡기고 인터넷 세상을 헤매다가 정신을 차릴 때쯤엔 마음은 이미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다.

경박한 호기심은 맹목적 습관이 되어 나를 몇 시간 동안이나 SNS세상에 가둬놓기도 한다. 


삶에 진심인 사람들을 이렇게나 좋아하면서 정작 나는 무언가에 진심이었던 과거를 자주 후회한다. 어차피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거 열심히 하지 말 걸 (...)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쓰는 글엔 진심인 사람이 되어야지

이상한 거에 진심일 때가 많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그렇겠지. 그래도 대충보단 진심이 낫잖아. 뭐든!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지, 호구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니 무리하지 말고 지금처럼. 할 수 있는 만큼만 친절하게. 간혹 친절함을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크게 마음 쓰지 말기. 천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니까.

잇프제라면 누구나 공감할 말 아닐까. 나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은 늘 뒤편인 채 공허하다. 잇프제 친구들과 맨날 입버릇처럼 하던 말, '남 생각 말고 제발 널 최우선으로 생각해!'




이번 여행을 함께 한 노트와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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