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제주도 애월 여행(6)
여행을 하는 도중에 숙소 사장님에게 친절한 카톡이 오면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정말 따스하고 다정하신 분이지만 나에겐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생겨버린 듯한 기분이다. 배려마저도 하나의 일로 여겨버리는 이유는 이번 여행에서는 오롯이 혼자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갑자기 사주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사주에서 나를 나타내는 일간이 계수(癸水)인데, 계수는 야동자 성향이 강하다. 야동자란 어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밤에 은밀히 움직이는 사람을 뜻한다. 반박할 수가 없는 게 나는 예전부터 남들 눈에 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뭘 하는 걸 남들이 보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도 불편하다. 심지어 공부도 부모님 몰래 하는 스타일이었다.(이건 좀 다른 얘긴가)
어쨌든 사장님이 내일 아침에 직접 배웅해 주신다고 하니 감사하긴 하지만 약간 부담스럽다. 작은 돌덩어리 하나가 가슴속에 얹힌 기분. 야동자처럼 몰래 살금살금 다니고 싶은 게 확실하다. 혼자일 때 자유로운 이런 성향을 바꿔보려 노력했지만 쉽게 바뀌진 않는다.
이런 나라서 혼자 하는 여행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다른 의미를 가진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깊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준다. 나에게로 한없이 침잠하며 차분한 시간을 갖는다. 보고 느끼고 쓰고의 반복이다. 이와는 다르게 일행과 함께 하는 여행은 수렴하는 에너지보다 발산하는 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된다. 다양한 것들을 보며 감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행복감이 여러 배가 되는 것을 경험을 통해 느꼈다. 같은 것을 보며 "좋다!", "좋다!" 서로 외치다 보면 좋음이 2배, 4배로 불어난다. 애초에 이 두 개의 여행은 목적부터 다르고 얻고자 하는 것도 다르다. 그래서 나는 혼자 하는 여행과 함께 하는 여행의 밸런스를 적절히 맞추려고 애쓰는 편이다. 삶의 어떤 시기시기마다 때에 맞는 여행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여행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떠나온 것이었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해서 나누고 많은 글을 썼다. 끈질기게 노트를 붙잡고 있다 보면 '아, 이런 얘기까지 써야 하나, 별거 아닌데' 하는 검열의 순간과 계속해서 마주치게 된다. 그걸 이겨내고 별 거 아니더라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다 보면 생각보다 풍부한 표현들로 묘사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이런 말도 할 수 있다고? 하는 놀라운 순간이 나타난다. 그렇게 벌써 노트의 절반을 채웠다.
난 글을 잘 못 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라 쓰지 않고 많이 삼켜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끝까지 적어 내려가다 보면 분명 더 아름다운 문장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지레짐작하고 아예 쓰는 행위조차 시작하지 않은 것 아닐까? 이번 여행에선 떠오르는 사소한 생각들을 구름처럼 흘려보내기보단 지면에 붙잡아두려고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