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문방구

문구 사랑의 시작

by 잔머리 토마토

문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문방구이니 만큼

추억의 백화점과도 같은, 문방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를 잠재적 '문구인'으로 만든 가장 큰 주범 말이다.


내 삶을 스쳐간 수많은 문방구가 떠오르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역시 초등학교 앞 문방구다.

무려 6년 동안, 등굣길은 물론 하굣길에도 문방구에 홀린 듯 들어갔다. 혼자도 가고, 친구들과 어깨를 맞대고 앞다투어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니 충성스러운 단골이 될 수밖에. 그 작은 문방구가 내 초등학교 시절의 전부이자 중심이었다.


주인 아주머니 얼굴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늘 허리에 전대를 차고 계셨는데 내가 돈을 내밀면 지퍼를 열어 거스름돈을 꺼내 주셨다. 가끔 남는 동전으로는 종이 뽑기를 하고, 뽑힌 상품을 타갔다. 내 얼굴보다 커다란 잉어모양 엿을 안고 집에 돌아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준비물을 깜빡하기 일쑤인 학생들을 위해 외상도 가능했는데, 회수율이 낮았는지 언젠가부턴 외상금지라고 쓰여있었다. 일찍이 신용사회의 단면을 배운 셈이다.


문방구 앞 매대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펼쳐져 있었다. 구슬, 딱지, 반지는 기본이고 실내화에 체육복까지. 한데 모아놓으니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아우라가 풍겼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아주머니에게 "OO 있어요?"라고 물어보면 말없이 저 구석진 곳에서 꺼내오셨다. 그곳엔 없는 게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 머릿속에 '문방구'는 연필, 지우개 따위를 넘어선 거대한 세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문방구는 학교 수업 준비물까지도 책임져 주었다. 주로 미술 용품이나 과학 키트였는데 몇 학년이라고 말하면 아주머니가 알아서 척척 건네주셨다. 같은 물건이라도 학교에서 먼 문방구에서 구입하면 묘하게 디자인이 다를 때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는 친구들과 다른 게 신경쓰였다. 이런 내 맘을 모르는 엄마가 다른 곳에서 준비물을 사오면 수업 시간 내내 부끄럽고 숨고싶었던 기억이 난다.


문방구는 내게 처음으로 소비 관념을 심어준 곳이기도 하다. 모두 다 가질 수 없기에 신중했던 시절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코묻은 돈으로 무얼 살 지 한참을 저울질하곤 했다. 세뱃돈을 받은 다음 날이면 평소보다 조금 더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달려갔다. 그때 눈 앞에 펼쳐진 문구의 향연이란... 내 어린시절 가장 물욕이 넘치던 순간이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뭔가가 모여 있는 걸 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서점도, 미술관도, 박물관도, 모두 문방구의 확장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문구점, 소품샵, 전시회 등을 찾아 다닌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 시절 문방구에서 느꼈던 기쁨은 다시 맛볼 수 없다. 좋은 것들은 다 추억 속에 있는 건지, 아니면 추억이기에 더 그리운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후자인 듯하다.


아직도 학교 앞 문방구만 생각하면 명치가 살랑살랑 간지럽다.

나의 문구 사랑은 그렇게 작은 동네 문방구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문방구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은 드물텐데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문구인'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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