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을 지키는 법
문구란 무엇일까? 검색창에 '문구'를 쳐보니 문구란, 학용품과 사무용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갑을 문구로 볼 수 있을까?
확실한 건 내게 지갑은 문구였다는 것이다. 문방구를 밥 먹듯 드나들던 그 시절, 내 지갑은 모두 모닝글로리에서 산 아이들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물건은 전부 문구'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지금도 책상 위에 올라올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문구라고 생각한다. 지갑, 시계, 텀블러 그 무엇이든 말이다.
공책이나 연필과 달리 지갑은 가격대도 만만치 않고, 여러 개를 동시에 들고 다니지 않으므로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모닝글로리에 들를 때면 가장 먼저 지갑 매대 앞으로 가서 비닐에 쌓인 천 지갑, 동전지갑, 반지갑들을 만지작거리며 어떤 녀석을 데려올지 입맛만 다셨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까, 엄마가 생일선물로 지갑을 사주셨다. 데님 소재의 3단 반지갑이었다. 딸기 자수가 놓여 있었고, 체인 끄트머리에 집게가 달려 바지에 꽂을 수 있었다. 도톰한 두께감 덕분에 손에 쥐는 느낌까지 완벽했다. 지갑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지갑 속에는 돈뿐만 아니라 친구와의 쪽지, 영수증, 스티커사진까지 모두 다 넣을 수 있었기에 나에게는 작은 문구함인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왔더니 지갑이 사라져 있었다. 주머니와 가방을 탈탈 털어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찾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엄마한테는 차마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눈물 젖은 베개에서 며칠을 보냈다.
며칠 후, 피아노 학원에서 어떤 애가 그 지갑을 들고 있는 걸 보았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혹시 내 것인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몰래 문밖에서 그 지갑을 살펴보다가, 잠깐 방을 비운 틈을 타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았다. 나만 아는 딸기 자수의 디테일이 보였다. 분명 내 거였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눈앞에서 뺏겼다면 다시 뺏어올 수라도 있겠지만, 이미 저 애 주머니에 들어간 것을 내가 다시 가져올 자신이 없었다. 걔가 나보고 자기 지갑 가져갔냐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지? 원래 내 거라고 해야 하나? 증거있냐고 하면? 눈 앞에 지갑이 있는데 얼어붙은 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 일을 겪은 뒤, 나는 지갑과의 짧은 추억을 그리워하며 상사병(?)에 걸렸다.
가슴이 뻥 뚫린 듯 시렸던 기분, 정말 좋아하던 물건을 누군가에게 뺏겼을 때의 허무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쓰던 물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함이 깃들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똑같은 것을 다시 사도 그 지갑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끝끝내 지갑을 되찾지 못했지만, 대신 그 지갑 도둑의 이름을 가슴속에 새겼다.
그 이후로도 나는 수많은 물건을 도둑맞았다. 책도, 고글도, mp3도. 잠시 두고 자리를 비우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런 일들을 반복해서 겪으며 내 문구, 아니 물건을 지키는 법을 터득했다.
물건을 지키는 일은 집착으로 발전했다. 빌려주는 것도 싫어했고, 돌려주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받아왔다.
중학교 때 소위 일진이었던 애가 하이테크를 빌려가서 잃어버렸다며 돌려주지 않자, 쉬는 시간에 반으로 찾아가 그 애 필통에 있던 하이테크를 직접 되찾아 오기도 했다.
이제는 물건을 이상하리만큼 잘 챙긴다. 지갑과 휴대폰을 단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다.
늘 허둥지둥대는 허당이지만 지갑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내 사전에는 없다. 남의 물건 좀 가져가지 맙시다.
쓰고보니 문구는 내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펜, 노트, 지갑.. 내가 늘 곁에 두는 것들 속에는 나의 취향과 습관, 추억과 애착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이래서 내가 문구를 좋아하나보다.
p.s 고전문구를 검색하면 그 시절 문구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나는 그 속에서 잃어버린 데님지갑과 닮은 녀석을 찾았다. 그걸 보니 예전 생각이 나면서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추억여행을 하고 싶다면 '고전문구' 검색을 추천한다. 묻어둔 기억은 작은 문구 하나에도 쉽게 열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