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키세라믹 Nov 10. 2024

그들의 삶의 방식

그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

우리는 삶의 방식이 다르고 경험치의 높낮이가 다르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공유하고 높낮이가 다른 경험치를 나눈다면 서로를 위로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다.


그들은 남을 위로하거나 품을 수 있는 재주도 있다. 저들만의 위로는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색다른  방법을 사용할 때가 있어 결코 위로로 남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사용하는 말투가 다르고 삶을 공유하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며, 평이한 경험치를 위와 아래로 나누는 재주가 남들과 다르다. 그들은 그러한 재주가 있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헤아려 생각하는 것이 또한 남들과 다르니 저마다 채색하는 재주도 서로 다르다. 그들은 가와 겨를 구분하고 도와 모를 구별 하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은 너와 나를 구분하는 재주에도 종종 사용한다. 

쉽게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구분 짓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저들만의 아픔을 스스로 만들고 고통을 가볍게 바라보지 못하는 중간 이하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을 때도 있다. 

그들은 남들에게 거기까지 가면 이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가라고는 하지 않는다. 거기까지 가면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가라고 안내하는 것에는 인색하다. 달라진 말투로 이렇게 가라고 할 때면 어렵게 말한다. 


그들이 거기까지 가는 것도 어려운데 이렇게 가라고 하는 말투까지 어렵게 하는 것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집단의 위선이다. 집단의 위선은 우월감에서 발현된다.


그들은 이웃의 아름다움을 부러워하고 어려워한다. 이런 경우에는 너와 나를 구분했던 배려의 방식을 적용하지 않고 말을 아낀다.


그들의 삶이 어려웠거나 그들만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은 나눔을 고집할 때면 그들을 옹색한 부류로 분류하는 것에 과감해진다.


어렵게 얻은 것은 쉽게 나눌 수 없다. 얻는 방식에 따라 나눌 수 있는 방법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눈다고 하여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받아들이는 이들의 잘못인 경우가 많을 수 있다.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해의 대부분은 이들의 체화되지 못한 행위에서 시작되는 지도 모른다.


그들의 노력을 폄 회하거나 성과를 낮추어 초록은 동색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는 저들의 아픔의 크기를 가눔 하지 못하며 저들의 아픔을 치유하거나 함께 동행할 수 없는 조건에 항상 있었다.


저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치유해 왔기 때문에 그 고통의 내밀함을 알지 못한다. 신산한 고통 속에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이유이다. 다만


그들을 볼 때마다 아름답지만 때때로 슬프고 애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