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권의 생김이 다른 책을 침실에 하나, 식탁에도 하나, 서재에도 하나, 거실에 하나 마주치는 곳마다 놓아두고 쉼의 자리에서 잠들기 전에 새로운 글과 만난다. 그 속의 다양한 모티브와 마주한다
우리가 둥근 책상에 마주 앉아 서로의 줄거리를 낭독하는 것처럼 새로운 만남은 신산함으로 계속 이어진다.
침실에서 새로운 삶과 죽음
식탁에서 새로운 희망
서재에서 절박한 페미니즘
거실에서 붕어빵의 사랑
스위스 어디에서 이탈리아로 갔다가 페미니즘으로 옮겨 간다. 이탈리아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페미니즘에서
죽는다. 죽어야 하는 사람이 살아나기도 한다.
남은 시간을 가져다 쓰기에도 부족하면 모든 시간을 버무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가 정태춘의 CD를 하나사고, 붕어빵을 먹은 후에 버무린 시간을
줄 세워 하나로 만든다. 줄 바꿈 없이 문장에 점을 찍고 다음줄로 옮겨 가야 한다.
문장에서도 분주함이 보이면 갑작스러운 마침표를 외면하고 싶어 진다.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어 진다.
24년과 25년을 붙여서 이어간다. 365 366 367 368 369.....
그래야 페미니즘의 그녀를 살아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섯 권의 책 속에서 제발 살아 움직이기를 바란다
침대 위 작가의 손에 식탁 위의 애절한 사랑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고, 이탈리아, 스위스, 피미니즘, 붕어빵속의 그들이 다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그런 능력을 소유한 작가이며 우리가 힘을 써 무엇으로부터 되돌아올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고 다한 죽음도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는 재주.
신이 내 삶에 머물다 가게 할 수 있는 재주. 돼먹지 않은 욕심을 숨길 수 있는 재주. 그 잘난 재주들.
다섯 권의 다른 삶이 스스로 애쓰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재주로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그 잘난 재주를 부리고 싶어 진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스럽다. 삶과 죽음을 스스로 조우하고, 그의 삶이 더욱 빛나도록 살피고, 그의 애정을 더욱 깊게 느끼며, 그 재주를 슬프도록 애잔하게 느끼며, 고통받는 우리는 그 잘난 재주 만으로도 슬픔을 마주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렇게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긴박한 순간에 기장의 노력으로 모두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