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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피싱이 따로 있나?

by 아키세라믹

삼 개월마다 병원 진료가 있다

내분비, 순환기, 안과 진료가 있는 날이면 진료 전에 준비할 것이 많다. 남은 복용 약의 정도, 수량을 파악하고

다음 삼 개월의 복용약을 가늠해야 한다.


예약 날자가 가까워지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고 당일에는 시험장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집을 나선다. 남은 시간을 반복해야 하는데 어쩌나 싶다.


오늘은 내자가 딸 집에 가 있어서 아침부터 나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핸드폰을 충전하고 복용약의 남은 수량을 적은 메모지를 가방에 넣고 키를 챙겨 집을 나왔다.


가기 싫은 곳을 가고 있으니 운전도 조심스럽지 않았다. 이런 날은 주차장을 맴도는 일이 잦다. 아니나 다를까

진료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고 계속 지하로 내려앉았다.


안과 진료는 눈의 안압이 높고 낮음에 따라 담당의사의 표정과 환자의 기분을 좌우한다. 안과진료는 자신의 노력을 더할 수 없는 진료과목이다. 내가 건강관리에 신경 쓰고 나의 노력이 검사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관계없다.


내분비 당뇨는 당화혈색소의 등락이 삼 개월 동안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검사결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의사 앞에서 조금은 얼굴을 들고 앉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검사수치가 정상범위 이내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정상범위를 넘은 지 오래됐고 다만 당뇨환자 지만 그래도 그중에 그만하네요 정도이다.


안과진료를 마치고 수납창구에서 난감한 일은 시작됐다.

정상범위를 벗어난 검사수치와 정상적이지 못한 눈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안압의 수치보다 나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어! 핸드폰이 어디 있지"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에도 외투의 안주머니에도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198번이 반복해서 점멸하며 나를 부르고 있었지만 198번 손님은 카드를 커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 미안합니다 핸드폰에 카드가 있는데 아마도 차에 두고 온 것 같습니다 가지고 다시 오겠습니다 "

" 가지시고 저에게 바로 오십시오 "

친절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차는 지하 3층에 있었다. 있어라 있어라 하지만 차에도 핸드폰은 없었다.


" 저 미안합니다 만 다음 진료에 같이 계산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시험 시작하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가당치도 않은 요구와 다르지 않았다.


" 그러면 병원계좌로 입금해 주실 수 있을까요?

병원직원은 입금만 되면 처리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나는 어떻게 입금을 해야 할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반경 1미터 안에 있어야 하는 핸드폰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핸드폰의 안위가 먼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 성격에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주한 와중에 차라리 집에 두고 온 것이 분명했으면 싶었다.


" 저 그러면 병원 전화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안사람에게 전화해서 입금할 수 있도록 해 보려고요"

신호음이 이어졌고 동시에 핸드폰의 간결한 통화종료음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네 번이나 전화를 계속했다. 하지만 전화는 아주 간결하게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아내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요즘 광고 참 끈질기게 전화하네 참" 나는 불법광고 전화 안내원이나 보이스 피싱범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가기 싫은 지하 3층을 내려가서 다시 운전하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려와서 다시 3층에 주차하고 37킬로를 왕복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점점 동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층 안내로 내려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야속한(?) 안사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사실 나는 단축번호 2번과 3번의 전화번호를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수납창구 여직원이 다른 분의 핸드폰으로 전화해 드릴까요?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첫째와 둘째에게 전화해도 상황은 같을 것 같았지만 나는 딸들의 전화를 단축번호로 기억하고 있었으니 창구의 여직원이 자제분의 번호를 알려달라는 말로 나를 더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웠다.


8번의 전화 끝에 내자는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나 싶어서 전화를 받은 것 같았다. 정말 반갑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다른 감정도 있었다. 마침내 불법 광고 안내자와 보이스 피싱범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막막했던 병원 진료를 마치고 (해결했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았다) 집에 왔다. 황당한 진료일정을 카톡으로 공유하며 웃었지만 나의 카톡은 짧았다. 웃고 넘겨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나를 당황시킨 나의 핸드폰은 나의 일관되고 질서 정연했던 삶의 패턴을 작은 편린에서 더 작은 조각으로 잘게 조각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더 노력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핸드폰?

나의 핸드폰은 충전줄을 입에 물고 배부른 상태로 편하게 누워 있었다.

정신 좀 챙겨서 다녀라 하는 표정으로 아침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모든 카드를 가슴에 품고.......


예전에 그 많던 전화번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다녔는지 신기할 뿐이다. 나는 이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에 서있는 것 같았다. 피곤하고 힘든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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