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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는 것을 모아 모아서

by 아키세라믹


작은 일들이 큰 덩치를 하고 큰 그림자로 툭툭 아는 체를 합니다.

몸의 방어기전이 튼튼할 때는 상처로 남지 않던 거친 말도 작지만 생채기가 됩니다.

저를 위협하는 말은 그대로 꿋꿋하게 살아가지만 저는 겁쟁이가 되고 소심해집니다.

오롯하게 주체적인 제가 있기는 한 것인지, 그때의 제가 지금의 저와 다르지 않은지, 충분히 행복해서 작은

상처에도 두려움 없이 은진은 강경으로 꾸려가는지 묻고 싶어 집니다.

때로는 곰팡이 먹은 떡을 손에 들고 난감해하는 자신을 볼 때도 있습니다 만 그만하니 지낼만합니다.

이런 소극적 두려움은 저만 그럴까요?.



한 작가의 책을 읽고 저는 절망합니다.

책의 끝페이지 에필로그까지 읽고 나면 저는 형광펜으로 표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문장을 필사하고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요? 이 많은 문장을 어떻게 정리하지 싶은 절망감에 또 한 번 절망했습니다.

책 한 권이 모두 울긋불긋한 형광펜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포스트잇은 밴드처럼 순서 없이 모든 곳을 가리고 어수선하게 서 있습니다.

돌아서서 제사날로 입을 막고 웃어봅니다.

절망 속에 행복해서 저는 큰일 났습니다.



책이 점점 작아지고 작가와 멀어집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시간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들고 있는 책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좀처럼 찾지 못하는 즐거움과 마주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를 묶음으로 해 놓았을까요.

얼마나 행복했으면 이렇게 한 줄도 작은 길로 빠지지 않고 문장으로 줄 세워 걸어갈 수 있을까요.

작가는 분명 말소리도 아름다워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억수로 강한 억양도 없이, 높낮이도 없이, 쌍디귿도 없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얼굴도 모르는 그를 와락 안아주고 싶어 졌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란 나에게,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가 잠깐 사는 것이다]

(어른의 어휘력)



안약을 넣고 누워 불을 끄면 내 눈에는 아이스 아메리카 속의 얼음 조각들이 가득 떠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물결치듯 갈색의 커피도 흘러갑니다.

눈의 높은 안압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속에

떠다니는 얼음 조각들을 눈을 감고 볼 수 있는 마법사가 됩니다.

고상 고상한 잠자리가 편할 리가 없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만 괜찮아 괜찮아할 뿐이지요

그래서 행복하냐고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괴까닭스럽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대형 산불로 나라가 온통 어수선했습니다.

병원 대기의자에 앉은 노인이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 하늘도 무심하지 비 좀 많이 주시지 나라가 온통 벌게지고 난리가 났어"

노인은 병원에서 산불을 걱정하셨습니다.

노인은 산불도 걱정이고 병원진료도 걱정이 많으신 것 같았습니다.

날이 조금 밝아지자

"왜 해가 떠"라고 또 걱정을 하십니다.

옆에서 말대꾸하던 중년여성이 보호자인 줄 알았는데 노인의 딸이 나타나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몸이 불편하셔서 산불도 걱정이고 날이 밝아지는 것도 걱정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노인의 계속되는 걱정의 시발점이 이곳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노인의 걱정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주름 속의 그 모든 걱정이........




외손녀가 팔 개월을 지나고 있습니다.

저를 알아보고 안아달라고 손을 내밀고 매일 볼 때마다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좋고 싫음의 의사 표현이 분명합니다.

마치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의사표현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채민입니다 저는 급한 마음에 그녀를 챔이라고 부릅니다.

그녀는 선호하는 장난감도 있고 유아용 책도 좋아합니다.

책을 읽어 주면 움직임을 멈추고 집중해서 이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보시기에 허풍이 심한 것 같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녀의 할아버지일 뿐입니다.

할아버지는 다 그렇다고요?

그럴 리가요 ㅎㅎ



아이와 어른의 차이를 아시나요?

아이들은 행복하면 모든 곳이 행복한 곳이고 어른은 행복해도 낯을 가려 결코 모든 곳이

행복한 곳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작은 손에 달고 있는 아이는 가족과 함께 있는 곳이 병원이라도 행복한가 봅니다.

캐럴송이 흐르는 장난감 판매점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행복해합니다.

아이의 즐거운 행복이 부럽습니다.


떠다니는 것을 한 곳에 나란히 줄 세워 봅니다. 불편하지 않으셨지요?



은진은 강경으로 꾸려나간다 : 어려운 상황에서도 슬기롭게 대처한다

제사날로 : 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고상 고상하다 : 잠이 오지 않아 누운 채로 뒤척거리며 애쓰다.

괴까닭스럽다 : 괴상하고 다루기가 어려운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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