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교생 실습이 내게 준 것

교생 지도 교사로 떠올리는 교생 실습

by 김샘

사범대학교의 학생이라면 4학년 1학기를 기점으로 가시적으로 진로 선택이 나뉘게 된다. 그 시기에 현장 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가기 때문이다. 사범대에 진학하는 자들은 대체로 교사를 한 번쯤은 꿈꿔본 자들이나, 사범대를 졸업하면서 모두가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십 년 전 내가 교생 실습을 할 때에도 비율은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 현재는 25% 내외 수준으로 줄었다. 이른바 돈이 중요한 시대, 보수는 적으면서 사명감은 많이 필요한 공공 분야에 대한 기피는 교육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교생 실습에 나오는 사범대생의 교직 희망 비율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교생 실습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대학교에서 이론적으로 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전공 지식을 배우고, 교생 실습에서는 실제는 어떠한지를 경험한다. 이론으로 배운 내용을 현장에서 얼마나 녹여낼 수 있는지, 발표와 비슷하게 했던 수업 실연에서 나아가 실제 주인공인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면서 실제 수업 경험을 쌓는다.


교과 교생들은 보통 1주간의 참관을 거쳐 3주간 10-15차시 내외의 수업을 직접 꾸려서 수업한다. 학급 교생으로서 학생들을 만나 조종례를 진행하고 상담을 하기도 한다. '교생=교사의 생활'이라고 온전히 말할 수는 없지만 사범대생으로 경험한 어떠한 것보다는 교사에 가까운 기간인 것 같다. 머리로만 그려온 교실, 또는 가상으로 구현가능하다고 계획한 많은 수업 계획. 그것을 현실로 옮겨와 구현해 보면서 누군가는 교사를 꿈꾸고 누군가는 완전히 이 길을 떠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이 왔다. 우리 학교에는 많은 교생들이 방문했다. 내가 있는 학교는 대학부설학교로, 매년 5월이면 50~100명 정도 되는 대학생들이 교생 실습을 위해 학교에 머무른다. 사범대에 진학한 이상, 그래도 절반 이상이 교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 교생실습에 나오는 많은 대학생들은 이미 다른 진로를 택한 경우도 많다. 올해 우리 반 학급 교생 선생님들은 모두 교직 외에 다른 일을 희망하고 계셨다. 이미 스타트업을 시작한 분, 연구실이나 회사에 출근하던 분들이었고 교생실습을 위해 잠시 업을 쉬고 왔다고 했다. 이렇게 한 분도 교직을 희망하는 자가 없는 경우는 처음이라 신기하다 여기면서, 어떻게 다들 그리 자신의 갈 길을 이미 찾은 것인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대학생들 정말 야무지고 재빠르네요.

-맞아요. 저 때는 이제 4학년 교생실습 나와서 교직 할지 말지 고민해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교직이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는 쉽지 않아서, 저는 이런 것도 좋다고 봐요. 현명한 거죠, 요즘 대학생들이.

-예전에는 그래도 교사가 한 번쯤은 희망해 봄직한 직종이었는데, 이젠 교사한다고 하면 왜? 질문받는 시대가 됐네요. 좀 씁쓸하기도 해요.

교무실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교생 선생님들과 하는 협의회 시간에 왜 교직을 하고 싶은지, 또는 하고 싶지 않은지 물어보았다. 교직을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는 교생들은 수업을 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고 말하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것이 자신이 없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내 생각처럼 되지 않는 점이 어렵다, 실제로 보니 수업 외의 업무가 과중해 보이고 수업도 적성을 많이 타는 것 같다 등을 이야기하곤 했다.

또 교직 외의 다른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다, 보수나 다른 특성을 중시하여 교직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다, 다른 일을 먼저 해보고 싶다, 요즘 교권 추락 등 많은 이야기를 들어 고민이 깊다 등의 이유를 들어 교직 외의 길을 희망했다.


우리 과의 사범대생들은 대체로 로스쿨을 희망한다고 했다. 임용 준비도 쉽지 않아 이럴 거면 리트 준비를 하며 거의 대부분이 한번쯤은 시험을 쳐본다고 했다.

ㅡ로스쿨이 학점이 얼마나 좋아야 하는데. 희망은 해도 과에서 가는 친구가 둘셋 겨우 될까요? 여튼 임용이 어렵고 요즘 서이초 사건 이후에 교직 희망자가 급격히 더 줄긴 했죠.

ㅡ강의실 맨앞에서 내 수업을 너무 열심히 듣길래 공부에 관심있나 하고 봤더니 로스쿨 준비한다더라구요. 참...

교수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요즘 과 동향을 이렇게 듣기도 했다.

그래, 나름대로 이해 가는 선택이지. 되는 것도 문제지만 되고 나서도 보수가 좀 차이 나야지. 업계에서 전문성을 쌓는 데 들이는 노력이나 에너지 면에서 교사가 법조계보다 단연코 쉽다고 말할 수 없는데 사회적 명예와 보수는 그토록 차이가 나는데,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누가 교직을 택할까.아이들이 대단히 좋고 가르치길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이상 교직 선택자가 의아해 보일 법도 하다. 요즘 사범대생들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있다.



나는 어느 쪽이었나. 돌아 돌아 지금 나는 이 공간에 남아있다. 교생 실습 기간 동안 너무 힘들어 밤마다 기절했고, 며칠 밤을 새우며 수업 준비를 하며 교사 되면 매일 이렇게 수업 준비해야 해? 하며 울부짖은 기억이 있다. 당시 나의 결정은 '역시 교사는 못 하겠다.'였다.


내가 교육 실습을 하러 간 곳은 남자중학교 일 학년 교실. 예상보다 더 산만하고 정신없었으며 교생이 와있기 때문인지 들떠있는 분위기도 뭐랄까, 딱 싫었다. 중학생 남자아이들은 어찌나 사고뭉치들인지 쉬는 시간마다 작고 큰 다툼들이 있었고 담임 선생님이 그것을 중재하는 일이 힘들어 보였다. 잠시도 말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을 조용시키고 공지를 전달하고 싸움을 화해시키고 청소시키고 하는 모든 일들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해 보였다. 업도 강도가 너무 세어 보였으며 내 에너지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또한 수업도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내 머릿속의 완벽한 교실은 없었다. 하나씩 뭔가 예상을 벗어나는 질문, 돌발 행동, 통제대로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을 때 밀려오는 무력함 때문에 나는 몹시 자책을 많이 하는 교생이었다. 매일 교생실습일지에 오늘 수업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고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 옆의 누구는 어떤 점에서 수업이 참 좋았는데 나도 배워야겠다 등의 반성만 가득했다.

오래전 교생 실습록을 발견하고 읽어보다가 질려버린 기억이 난다. 잘못에 대한 자책과 반성만 가득한 교생의 기록을 보고 이런 일기를 쓴 주제에 지금 교사를 하고 있다니, 나도 참 웃긴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의 지도 선생님은 교생은 당연히 교사보다 미숙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반성만 많은 것은 되려 좋지 않다고, 용기 좀 내라고 격려하는 코멘트를 써주셨다.


첫 수업을 수업 시간보다 무려 10분이나 일찍 끝내버리고, 학생들 수준보다 어렵고 진지한 활동을 짜와 지적을 받던 교생 김 씨는 그래도 한 달 동안 성장하여 실습이 끝날 무렵에는 "많이 성장했다."라는 지도 선생님의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자라면 알 법하지. 정말 '잘'하는 자에게는 잘했다고 하지 나아졌다고 하진 않는다는 것을. 교생을 교사로서의 자질을 평가하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생각하던 교생 김 씨는 의기소침했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런 돌발 가능성이나 통제 불가능함을 수용하고 너그럽게 학생들을 봐줄 수 있겠는가? “

결국 교사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여러 일들이 교실에서 생길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되 또한 적절히 개입하여 도움을 주는 자라고 생각한다.

당시 교생으로서 훌륭히 수업을 해낸 많은 동기나 선배 중에도 교사가 되지 않길 결정한 사람이 많았는데, 대체로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 안 하는 학생들을 이해할 수 없다, 떠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등의 이러한 태도를 갖춘 사람들일수록 빨리 교직을 포기했다. 수업의 훌륭함 유무, 학생들에 대한 관심도, 그 밖의 원인을 떠나 저 질문에 네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교직을 희망하는 듯했다. 스물세 살, 당시 나는 저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뀌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참 예뻤다. 알게 될수록 정이 가는 아이들. 교생이기 때문에 받았던 무조건적인 관심과 애정. 부족했지만 노력하는 교생을 향한 아이들의 응원은 십 년의 시간이 지나고도 마음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먼 옛날이 되어버린 교생실습 기간을 그립게 기억하는 것은 아이들 때문이다. 아직 다 크지 않은 열네 살 남자아이들은 때론 참 어리다 싶었지만, 때론 놀랄 만큼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짧게나마 학급 학생 몇 명과 상담해 보며 중학생인 그들의 삶을 열심히 그려 보고 학생들의 고민을 같이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들과 보낸 시간이 싫지 않았다.


또한 나는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느낌에 향수를 느끼는 류의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학교를 좋아했다. 오랜만에 학교라는 공간에 속해 있으니 놀랍도록 친숙하고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십 대들이 한가득인 이 공간이 주는 생기와 발랄함이 어른인 나조차도 들뜨게 만들었다. 별것 아닌 사소한 일도 이 공간 안에서는 대단히 기쁘거나 대단히 놀라운 일이 되곤 했다.


왜 교사가 됐더라, 다시 학교로 돌아왔더라 명확히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결국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교생 실습의 그리운 기억 탓에 나는 결국 학교에 남은 것이 아닐까. 교생 실습 한 달은 교사가 되는 작은 씨앗이 어느새 심어진 기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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