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정치 시스템이 공간화된 권력의 심장부, 대통령 궁
엘리제궁은 프랑스 최고 권력이 정치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파리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곳에서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국가를 통치 임무를 수행하고, 이곳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관저도 제공한다.
프랑스의 대통령은 취임을 하는 날, 이전 대통령과 독대를 하며 국가의 기밀을 전달받고, 무엇보다 핵무기를 작동하게 하는 암호를 전달받는다. 미테랑 대통령이 그 암호가 적힌 쪽지를 양복 주머니에 넣고, 취임 파티가 끝난 후에 그 암호 쪽지를 깜빡 잊고 세탁을 맡겼다는 일화가... 그럼 그 코드가 허무하게 새어 나간 것인가!(물론, 엘리제궁 안에는 세탁실도 있어서, 아마도 직원이 기밀을 유지하긴 했을 것으로... 추측해야 하리라.)
엘리제궁은 프랑스를 보여주는 상징의 정점으로 여겨져서, 프랑스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하에, 엘리제궁이 작동하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을 기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의 왕궁을 작동시키던 시스템, 특히 베르사유궁에서 '왕의 메종'이 작동하던 기본 틀을 엘리제궁으로 옮겨와서 지속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엘리제궁의 건설된 루이 15세의 섭정 시기부터, 오늘날의 마크롱 대통령까지 그 프랑스 역사의 스펙트럼을 건축 공간을 통해 알아보려고 한다.
엘리제궁의 지금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엘리제궁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었고, 시민혁명이나 공화국의 시기에는 국가에 귀속되었으며, 특히 제4공화국 시기에는 '왕실 아파트망'으로 불리며, 외국의 왕족이나 정상이 공식 방문을 할 때 머무는 귀빈의 숙소로 쓰였고, 1848년부터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루이 15세의 섭정 시기에 엘리제궁을 짓기 시작한 사람은 에브르 백작이다.(1718-1722) 당시에는 궁으로 불리지 않았고, '오텔 데브르(Hotêl d'Evreux)'였다.
당시에 섭정 필립 오를레앙은 팔레 루와이얄에 살고, 어린 루이 15세는 튈르리 궁에 머물고 있었다.
에브르 백작이 오뗄을 지을 때만 해도, 이 주변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땅이 많았다.
튈르리 궁과 정원으로 지금의 개선문이 있는 언덕(나름 약간의 경사가 있음!)까지 나무를 심고, 산책로를 조성하는 것은 왕비 마리 드 메디치(앙리 4세의 아내) 때부터 계획이었다. 루이 14세는 왕실 정원사 앙드레 드 노트르에게 계획안을 만들라고 명하기도 했다.
아래의 지도에서 오른쪽 윗부분 (북동쪽)에 센 강이 일부 보이고, 그 옆으로 튈르리 정원과 지금의 샹젤리제 길의 전신이 보인다.
1734-1736년에 조사해서 만들어진 튀르고(Turgot) 지도에서, 왼쪽 아랫부분의 HONORE라는 글자 바로 위에 에브르 오텔(H. d'Evreux)이 있다.
1753년 루이 15세가 자신의 정부인 마담 드 퐁파두르의 파리 저택으로 쓰려고 에브르 오텔을 산다. 퐁파두르는 루이 15세의 정부가 되기 전에 결혼을 해서 딸이 하나 있었다. 그 딸이 에브르 오텔에서 가까운 생 오노레 길에 있는 수도원에 있었고, 퐁파두르는 자신이 파리에 있을 때 딸과 함께할 집으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2층의 공간들을 완성하고, 정원을 확대한 후에 미로, 금으로 덮인 동굴, 폭포 등을 조성하고, 희귀한 동물들과 엄선된 가축들도 가져다 놓는다. 이것은 모두 그녀의 어린 딸을 위한 것으로, 오늘날로 치면 개인 놀이동산을 만든 것이다.
그녀가 만든 화려한 저택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정원을 확장하면서 샹젤리제의 산책로를 막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던 그녀의 저택에는 '왕의 창녀 집'이란 낙서도 쓰여 있었다고 한다.
아래 왼쪽이 마담 드 퐁파두르의 초상화(엘리제궁에 걸려 있음)이고, 오른쪽은 1층에 '퐁파두르 살롱(Salon Pompadour; 아래 도면의 4번)'이란 방의 모습이다. 이 방은 그녀가 침실로 쓰던 곳으로, 그녀뿐만 아니라 에브르 백작, 나폴레옹 1세도 이곳을 침실로 썼다. 거울 앞의 흰 대리석 흉상은 마리 앙투와네트이고, 이 방의 가구들은 루이 15세와 루이 16세 때의 것이다.
이후의 중요한 소유주는 나폴레옹의 여동생 카롤린(그림)과 그녀의 남편 뮤라(Murat)이다. 뮤라는 나폴레옹의 군대 총사령관으로, 후일 나폴리의 왕으로 등극한다. 이들은 지금의 엘리제궁이 만들어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 도면의 1층의 1번은 의전 전실이고, 그 왼쪽 옆 계단은 의전 계단이다. 이 계단은 뮤라가 만든 것으로, 승리를 상징하는 금박 종려나무 잎으로 난간 디자인을 했다.(사진. 올랑드 전 대통령과 그의 총리)
이 계단을 통해서 대통령의 집무실로 가는데, 물론 두 개의 전실을 통과해야만 집무실에 도달한다.
같은 1층에 있는 뮤라 살롱(Salon Murat; 8번)은 본래 무도회실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매주 수요일 10시에 국무회의가 개최되는 중요한 곳이다. 뮤라가 남긴 계단실과 살롱은 모두 나폴레옹 1세 때의 엠파이어 양식이다. 뮤라 살롱도 금으로 장식된 기둥이 16개가 있고, 기둥의 사이에 4개의 커다란 그림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모두 뮤라를 기리는 작품들이다. 센 강의 뇌이으성, 나일강과 기제의 피라미드, 라인강과 벤라트 성(뒤셀도르프 근교에 있는 이성은 베르그(Berg) 대공이기도 한 뮤라의 공관), 테베레강과 생앙주성(이태리 전쟁 때 뮤라와 그의 기병대가 테베레강을 건넌 적이 있는데, 로마에서 보이는 경관을 그린 것)의 그림이다.
이 곳은 공식적인 접대실로도 쓰이고, 드골 대통령 때에는 독일과의 엘리제 협약이 조인되기도 했다.
왼쪽은 국무회의를 위해서 조립식 이동 테이블이 펼쳐지고 장관들의 자리가 마련된 장면이다. 오른쪽은 테이블이 치워진 모습이다. 금색의 기둥이 보이고 위의 도면에 보면, 두 개의 실을 터서 크게 확장한 것이다.
나폴레옹 3세의 이름은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그는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이자 의붓 손자인데, 이 특이한 상황은 조세핀이 나폴레옹보다 6살이 많은데, 나폴레옹과 결혼하기 전에 낳은 딸이 후일 나폴레옹의 남동생과 결혼하면서 생긴 관계다. 나폴레옹이 재혼한 마리-루이즈 도트리쉬(그녀의 할아버지 레오폴드 2세가 마리 앙투와네트의 오빠) 사이에서 아들(로마 왕, 나폴레옹 2세)이 전쟁에서 젊은 나이에 죽고, 루이-나폴레옹이 나폴레옹 3세의 이름을 갖는다. 그는 국민투표로 1848년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대통령 집무 공간이자 관저로 결정된 엘리제궁에 입성했다.(아래 왼쪽 그림)
4년 후 루이-나폴레옹은 스스로 쿠데타를 하고 황제로 등극한다. 유럽의 왕실에서는 과거 유럽 왕실 전체의 적이었던 나폴레옹의 조카에게 하나같이 자신의 딸을 결혼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이-나폴레옹은 자신이 한눈에 반한 아름다운 스페인의 귀족 으제니(아래 오른쪽 그림)와 결혼하게 된다. 그들의 신혼집이 바로 엘리제궁이었다. 결혼할 당시 27살의 으제니는 당대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이름을 날렸고, 45세의 나폴레옹 3세는 다분한 바람둥이였는데, 으제니에게 어떻게 하면 당신과 함께 잘 수 있을까 물으니, 오직 성당에 간 이후에만 가능하다는 답변에, 결혼을 통해 합법적으로 합방을 하게 된 것이다.
엘리제궁의 현재 모습은 나폴레옹 3세가 실행한 가장 큰 공사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신부 으제니를 맞이하기 위해 궁의 아파트망 실내장식도 바꾼다. 2층의 공간들이 바로 으제니를 위한 아파트망을 구성하는 방들이었다. 현재의 녹색 살롱은 으제니의 식당(2층 3번), 현재의 대통령 집무실 살롱 도레(금색 살롱, 2층 1번)는 으제니의 침실이었다. 이곳에 으제니의 이니셜 E와 나폴레옹의 N이 엮인 모노그람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드골 대통령이 처음으로 이곳을 집무실로 꾸몄고, 1750년 루이 15세의 고급 가구 세공 장인이 만든 책상이 대통령의 업무 책상이다. 튈르리 궁에 있던 조세핀의 의자와 소파, 루이 14세의 태피스리와 루이 16세의 콘솔 등 프랑스의 가구문화유산이 한데 모여서 대통령의 집무실을 장식하고 있다.
으제니 목욕실(2층 6번)의 실내장식은 잘 보존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거울이 많고, 퐁텐블로 성의 목욕실 모티브들을 모방하여 꽃, 과일, 스케이트 등이 장식의 소재로 쓰인다. 이곳은 대통령의 사저로 쓰이는 아파트망으로 가는 전실이기도 하다. (사진 아래 오른쪽이 으제니의 목욕실 한 부분)
1층의 11번은 대연회장이다. 대통령의 취임식은 바로 이곳에서 진행된다.
엘리제궁에서 열리는 모든 국가의 중요한 행사, 국제행사, 외국의 국가원수 맞이 등은 이곳에서 진행된다. 성탄에 트리가 놓이는 곳고 여기이고, 국제적 메시지가 담긴 중대한 기자회견들도 이곳에서 한다.
이 건물은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리고, 같은 해 세계 박람회가 열리는 것에 맞추어 완공되었고, 그때 8000여 명의 초대손님을 맞이했다. 실내 장식은 평화, 예술, 과학을 주제로 삼고 있다. 한 벽면 쪽에 극장의 무대가 마련되어 1970년까지 외부의 공연장에 외출할 수 없었던 대통령을 위해 수많은 공연을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대연회장과 나폴레옹 3세의 식당(도면 9번)을 연결하는 곳에 지붕이 유리로 덮인 겨울정원(도면 10번)이 있는데 미테랑 대통령의 작품이다. 1881년에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이국적인 다양한 식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베르사유궁 오랑주리에서 온 두 개의 오렌지 나무만 온실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나폴레옹 3세 살롱 혹은 식당은 이전에 베리 공작(루이 16세의 조카이자 샤를 10세의 아들, 파리 오페라에서 암살당해 엘리제궁에서 운명)의 오랑주리가 있던 자리에 1860년 나폴레옹 3세가 무도회실을 만든 것인데, 지금은 대연회의 만찬 공간으로 쓰인다. 공간을 조성할 당시 황제의 상징인 독수리 장식을 보존하면서, 공화국의 문장(R.F. : République française)을 덧붙였고, 겨울정원과 같은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금박 기둥 장식으로 연속성이 유지된다.
오른쪽은 2017년 5월 14일, 대연회장에서 있었던 에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의 취임식 때 모습. 왼쪽은 대연회장의 극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월드컵을 보는 장면.
왼쪽은 겨울정원, 가운데는 나폴레옹 3세 살롱(식당), 오른쪽은 살롱의 코니스 장식 부분의 모노그람 FR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황제의 상징 독수리 모습이다.
9, 10,11번이 있는 서쪽의 날개 건물은 이렇게 국가의 중요한 공식 행사장 건물이고, 동쪽의 날개 건물은 2층은 대통령이 사저로 사용하는 아파트망이 있는 공간이다. 1층 공간은 영부인의 사무소와 식당 등이 있다. 이쪽 날개는 취임하는 대통령 부부의 취향에 인테리어를 개조하고, 일반에는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집무 공간도 대통령의 의도에 따라서 조금씩 조정이 되기도 한다.
엘리제궁을 비롯한 국가 소유의 (프랑스혁명을 통해 왕실 소유의 궁들은 모두 국가에 귀속됨) 궁들이 공공기관의 건물로 많이 쓰이고 있는데, 이 건물들에서 필요한 가구들을 총괄해서 관리하는 국립 가구원(루이 14세 때의 재상 콜베르에 의해 생긴 왕실 가구원이 국립 가구원으로 바뀜)이 있다. 이곳에서 기존의 가구를 수리하고, 대통령의 취향에 따라 다른 가구로 인테리어를 변환할 때 가구를 바꾸거나, 부족한 부분을 똑같은 모델로 채우기도 하고, 사료를 통해 이전의 가구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는 등 국가 소속의 가구들을 총괄한다.
엘리제궁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고위 관리들이 일을 하는 집무실들이 중심이지만, 그 안에 다양한 직군들이 모여있는 하나의 작은 도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총 900여 명이다. 엘리제궁의 전체 방 숫자는 365개에 달하고, 그중 90여 개는 지하이다. 지하에는 24명이 일하는 조리실, 실내의 꽃장식, 식물 장식을 책임지는 플로리스트들, 엘리제궁에 속한 50여 대의 자동차 관리, 정비하는 엔지니어들, 엘리제 궁에 필요한 수많은 물품들의 저장소,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포도주 저장소 등이 엘리제궁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하고 있다.
엘리제궁의 대통령 변화는 시대의 변화도 극명하게 보여주는데, 샤를 드골이 대통령이던 시절, 드골 부부는 동쪽 날개의 1층에 있는 샤펠에서 매주 미사를 봤다. 그리고 엘리제궁에 초대될 수 있는 사람은 이혼을 하지 않은 사람, 혼외정사 등의 문란한 사생활이 없는 사람으로 한정하고, 그런 조건에 드는 사람들은 초대에서 배제했다. 사르코지는 대통령 임기 기간 동안에 이혼을 하고, 엘리제궁에서 비밀리에 재혼을 했다. 그가 결혼한 가수 카를라 부르니는 엘리제궁에서는 최초로 대통령 임기 기간 동안에 아이를 낳기도 한다. 드골 시대였다면 엘리제 궁에 발도 못 들여다 놓을 조건인 두 사람을 이제 프랑스 국민들의 의식도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사르코지 같은 사람도 엘리제궁의 주인으로 뽑아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엘리제궁은 '문화유산의 날 (Les Journées du Patrimoine)'에 일반에게 공개가 된다. 이번에는 9월 16,17일 양일로 정해졌고, 보통 때에는 국가기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많은 국가 유산 건물들이 문을 활짝 연다. 올해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궁의 주인으로 손님을 맞으러 나오지 않을까. 이 특별한 날에는 2만 명가량이 엘리제궁을 방문한다고 하니, 기다리는 줄이 결코 짧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제 궁에서 만든 비디오. 주출입구로 들어가서, 직접 공간들을 살펴보고, 마지막에는 대통령의 집무실에 도착하고 끝난다. (불어 설명 없음)
https://www.youtube.com/watch?v=tMWArvWJ6C0&t=2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