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권력: 와인, 프랑스의 노하우가 드러나는 쇼케이스
프랑스에서 와인은 단순한 음료 그 이상입니다. 국가 정체성의 기둥이자, 삶의 예술을 상징하며, 주요 경제 동력이자 외교적 도구입니다. 와인의 중요성은 프랑스의 역사, 문화, 경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각 대통령들은 자신의 출신 지역이나, 정치적 배경이 되는 지역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동시에 대통령의 연고가 있는 지역 와인도 엘리제 궁에서 중요한 자리에 소개가 되는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대통령의 정치적 고려에 의해서 와인의 정책도 변화가 생깁니다. 때로는 와인에 대한 식견이 높은 대통령이 럭셔리한 와인을 외교의 무대에 올려서 프랑스의 자랑으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국내정치적으로 조금 더 대중적인 지역 와인에 힘을 싣기도 합니다.
지역 와인으로의 전환 예로 자크 시라크의 경우 코레즈(Corrèze)를 프랑수와 올랑드의 경우 루아르(Loire)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정치 전략은 와인 외교를 유지하면서도 덜 엘리트주의적이고 사회적으로 더 수용 가능한 와인 선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프랑스의 와인은 엄격하게 등급 심사를 받고, 원산지 명칭 통제를 통해 관리되면서, 계급을 나누듯 분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프랑스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의 원천이자, 생산된 와인의 품질과 진정성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전통과 문화를 꽤나 잘 포장해서, 마케팅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와인입니다. 많은 이탈리아의 와인들이 프랑스 와인들만큼 훌륭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프랑스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와인을 비싸게 팔 수 있는 코드를 만들어서 광고하고 파는 능력은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특히 프랑스인들이 2015년 세계 문화유산에 '부르고뉴 와인을 만드는 기후'를 등재하는 데 성공합니다. 2013년 올랑드 재임기간에는 샴페인이, 2010년에는 프랑스 미식 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습니다. 특히, 올랑드 대통령은 2016년에는 시테 뒤 벵 (cité du vin)이라는 와인 전시관을 보르도에 개관해서, 보르도의 신도시 개발 구역의 중심에 와인 관광의 메카로 만들어 놨습니다. 나중에 와인시티로 번역할 수 있는 이 건물 이야기도 해 볼 기회가 있겠죠.
스파클링 와인의 대표주자, 샴페인을 통해 프랑스의 우아한 외교가 펼쳐집니다. 때로는 그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 첨예하게 이권을 다투는 각축장에서는 협약의 정치력과 소송의 칼날이 난무하기도 하지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9년 베르사유궁 거울의 갤러리에서 서명된 베르사유조약에서 승전국(미국, 영국, 프랑스 및 기타 연합국)은 패전국 독일에 대해 징벌적인 영토, 군사 및 경제 제재 조항을 시행했습니다. 이때, 프랑스는 독일에서 만들어지는 기포성 화이트 와인을 샴페인으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첨가하는 아주 치밀하고 약삭빠른 정치력을 발휘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질의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데는 프랑스로 이민 온 독인일들의 공이 아주 컸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잘 살펴보면 샹파뉴지역의 엄격한 원산지 명칭 통제(AOC)를 받는 유명 샴페인 이름들은 독일인들의 성씨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아요. HEIDSIECK(하이직)은 플로렌즈-루도빅 하이직이 1777년 렝스에 처음 만든 샴페인 메종이고, 그 외에도 KRUG (크루), MUMM (뭄), BOLLINGER (볼링어), DEUTZ (도이츠), KOCH(콕)도 독일인들이 만든 메종의 이름입니다.
거꾸로, 프랑스의 유명한 샴페인 메종인 Veuve Clicquot (뵈브 끄리꼬)에서 일했던 조르주-크리스티앙 케슬러 Kessler가 독일로 돌아가 1826년 샴페인 하우스를 만드는데, 이때 이름을 Zecte (젝트)라고 짓습니다. 그래서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샴페인을 만들지만, 독일은 1919년 이후로 샴페인으로 부르지 못하고, 젝트( Zecte )라고만 부릅니다.
프랑스 내의 다른 지역에서도 샴페인과 비슷한 기포성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곳들이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샹파뉴 지역 외에는 프랑스 다른 지방에서도 샴페인이라는 이름은 붙일 수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부르고뉴, 알자스, 루와르 지역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은 Crémant (크레망), Clairette (클레렛)이라고 부릅니다. 유럽의 다른 나라도 비슷한 와인이 있는데, 이탈리아는 Prosecco (프로세코), Franciacorta (프란차코르타), 스페인은 Cava (카바)인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영어식의 스파클링 와인이라 부르지요.
그런 와중에 러시아가 2021년 7월 새로운 법안을 내면서, 프랑스의 샴페인이 가진 독점적 지위에 도발을 합니다. 러시아의 새로운 법률이 러시아 생산자에게만 병에 "샴페인"이라는 단어를 표시할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반면, 프랑스 생산자는 샴페인이란 명칭을 쓰지 못하고, 뒷면 라벨에 "스파클링 와인"이라는 단어를 붙이도록 해서 논란이 됐었습니다. 러시아가 프랑스 샴페인의 스토리텔링을 훔치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한 것인데, 사실 프랑스와 러시아가 독일처럼 샴페인이란 용어를 쓰지 않겠다는 협약을 한 일은 없긴 했지요. 프랑스가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고 나서며, 러시아에 샴페인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AOC 원산지 명칭 통제는 프랑스 농산품과 식료품 분야에서 법규로 원산지의 명칭을 붙일 수 있도록 통제하는 것입니다. 어떤 생산물이 만들어지는 지리적 환경에서 빼어난 품질과 차별적 특성을 지니고 있을 때, 원산지를 엄격하게 관리, 통제하여 그 지역명을 특정한 생산물에만 독점적으로 붙이도록 허가하는 제도예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AOC 샴페인"은 유럽연합, 프랑스, 그리고 국제와인기구와 샴페인 전문가 위원회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어요. 그래서 이미 '샴페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원산지 명칭 통제에 의해 허가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샴페인 생산자들은 포도는 늘 사람 손으로 직접 수확하고, 포도나무도 엄격하게 정해진 간격을 유지하며 심고, 두 번을 숙성하는데, 한 번은 양조통에서, 다른 한 번은 병에 담고서 숙성을 하는 등 자신들의 엄격한 룰은 시간과 노동이 더 많이 들기 때문에 샴페인의 비싼 값은 그런 차별화된 자신들의 노력에 합당한 가격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더 오랜 기간 숙성을 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오랜 노하우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스토리텔링도 중요한 마케팅 요소겠지요.
러시아의 샴페인 도발은 러시아가 이 법을 통해 국내 생산자, 특히 2014년 합병된 쿠반과 크림반도의 생산자들을 지원하고자 의도한 것입니다. 이 법안의 목표는 경제적 주권과 상업적 애국심을 바탕으로 러시아 스파클링 와인을 국내 시장에 홍보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와 몇 달간의 긴장 상태 이후 2021년 10월, 프랑스산 샴페인의 러시아 수출이 재개되었지만 러시아 법률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사실상 타협안이 도출되었습니다. "샴페인"이라는 단어는 앞면 라벨에 그대로 유지되지만, 뒷면 라벨에는 러시아 법률에 따라 러시아어로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표기해야 합니다. 프랑스의 샴페인 생산자들은 이를 유감스러운 차질이라 생각했지만, 매년 약 200만 병이 수출되는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는 손해는 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타협을 한 것이지요.
샴페인을 마시는 잔은 길고 오목한 것과 넓고 낮은 것 두 가지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낮고 넓은 잔은 루이 15세의 애첩 마담 퐁파두르의 왼쪽 가슴을 모형으로 떠서 잔을 만들었다고 하는 얘기가 있어요. 혹은 루이 16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 또는 나폴레옹의 막내 여동생 폴린 보르게즈 보나파르트 (Pauline Borghese Bonaparte, 1780-1825) 가슴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설도 전해지지요. 역사적으로 사실은 아니라고 하는데, 이런 일화가 널리 퍼졌던 이유는, 샴페인이 여성스러움, 고급스러움, 그리고 관능미로 표현되는데, 당대의 아름다운 여인들,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 파워와 샴페인의 상징이 강하게 연동된 것이 이유 같아요. 즉, 샴페인이 파티, 축하, 관능미, 그리고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던 시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낮고 넓은 잔은 18세기에 만들어졌고, 근대에 새롭게 나타난 길고 오목한 잔이 샴페인 잔으로 널리 자리를 차지합니다. 길고 오목한 잔이 가스를 더 오랫동안 머물게 하면서, 거품이 샴페인의 향을 함께 끌어올리기 때문에 더 오래 샴페인의 맛을 음미하는데 적합하다고 폭넓게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나폴레옹의 여동생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폴레옹시대에 군대가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샴페인을 마실 때, 군인들이 옆구리에 차고 있는 긴 칼로 단박에 머리 부분을 위로 올려쳐서, 주둥이 부분을 깔끔하게 자르는 기술을 썼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방법이 위험하다고 비추를 하는데요, 여하튼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샴페인 한잔은 정말로 널리 퍼진 문화가 되었지요? 샴페인 메종들이 정말 세계적인 마케팅을 잘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비슷한 맛을 내는 스파클링 와인도 많으니, 이름이 샴페인이 아닐 뿐, 훌륭한 맛을 내는 좀 덜 엘리트적인 축하 와인을 선택해서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은 투자 은행인 로칠드 (Rothschild) 은행에서 일했던 금융자본 출신 정치인입니다. 재미있게도 현 대통령 엠마뉴엘 마크롱도 같은 은행 출신인 것을 보면, 로칠드 은행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곳이고, 정치력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드골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조르주 퐁피두는 로칠드 은행을 필두로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은행에서 일하는 동안 모든 훌륭한 보르도 와인을 시음했습니다.
보르도의 그랑 크뤼 메종(라피트 Lafite와 무통 Mouton이 대표적)을 여럿 소유한 로칠드 은행은 퐁피두 대통령 당시에는 보르도의 실력자 필립 로칠드 소유였습니다. 로칠드 은행을 인연으로 두 사람은 당연히 가까운 사이였죠. 퐁피두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이 점심 식사를 하면서 퐁피두가 로칠드에게 블라인드 와인 테스트를 하는데, 1949년은 정확히 맞췄지만, 무통 로칠드가 아닌 바로 옆 동네 포토밭에서 생산되는 샤토 푸조(Poujeaux, 가격은 더 저렴) 와인이라 답이 가깝게 빗나간 일화가 있었습니다. 근데 몇 년 후인 1973년, 퐁피두가 임명한 젊은 농업부 장관인 자크 시락에게 무통 로칠드를 2등급 대신 1등급, 프르미에 크뤼로 공식 승격시키는 서명을 하게 합니다. 이는 나폴레옹 3세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신성불가침의 1855년 등급 체계에서 유일하게 1등급으로 승격된 사례가 됩니다. 무통 로칠드 이외에는 그와 같이 승급된 사례가 전에도 후에도 없었던 정말 특별한 사례입니다. 보르도의 그랑 크뤼 와인들 맛을 잘 아는 퐁피두 대통령의 지원이 큰 영향을 준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퐁피두는 카오르 Cahors) 와인에도 약간의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카오르 지역에 별장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웃인 와인생산업자 주프로(Jouffreau)씨와 친분이 쌓였습니다. 덕분에 퐁피두는 카오르의 오래된 빈티지 와인을 자주 맛볼 수 있었는데, 그는 그 와인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주프로씨가 카오르 아펠라시옹(Cahors AOC)을 신청했을 때, 퐁피두는 필요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카오르는 한때 매우 유명한 와인이었지만, 보르도의 힘에 눌려서, 카오르 와인의 명성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차에, 퐁피두의 지원으로 카오르 와인의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사회당 출신의 대통령 프랑수와 올랑드는 와인으로 민중적인 정책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는 엘리제궁 와인셀러의 일부 고급 와인들을 팔아서 얻은 700 000유로로 좀 더 대중적인 와인을 사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때 와인 애호가들은 1961년 산 페트뤼 (Petrus) 등의 귀한 와인들을 사들이는 기회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제5 공화국 이전, 상원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에드가 포르(Edgar Faure)가 대통령 공관 엘리제궁, 국회의사당, 총리의 공관 오텔 마티뇽, 각각의 와인셀러에 자신의 지역인 주라(Jura)의 와인을 꽉꽉 채워 넣은 유명한 이야기도 있어요. 나중에 각 공관의 와인셀러에 대해서도 더 얘기하기로 하죠.
이렇게 와인은 국내 정치와 대통령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현 마크롱 대통령은 와인 로비스트의 힘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받을 정도로 와인 전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와인이 없는 프랑스 식사는 프랑스 식사가 아니다"라는 선언과 함께, 이전 대통령들의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그는 와인 시음을 의도적인 정치적 프로젝트로 전환하여 와인 시음 하나하나를 프랑스의 경제적, 문화적 홍보 활동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와인을 무기로,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한 이전의 프랑스 대통령들이 어떻게 외교활동을 펼쳤는지 다음 편에서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