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들의 와인 외교
프랑스의 대통령들이 와인을 정치적으로 외교적 활용할 때에도 그들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여섯 명의 프랑스 대통령 사진인데, 와인 관련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재임기간: 1974-1981)은 상당히 젊은 나이에 드골과 퐁피두 대통령 밑에서 재경부 장관으로 발탁되고, 48세에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와인의 애호가였고, 테이스트벵의 기사단(Chevalier du Tastevin) 회원이었습니다. 테이스트벵(Tastevin)은 부르고뉴 와인을 홍보하고 지역의 와인과 미식 전통을 유지하고 홍보하기 위해 1934년에 설립된 부르고뉴 전통 와인 양조 협회입니다.
지스카르 데스텡은 오베르뉴지역 출신의 대부호였습니다. 그는 대통령직을 현대화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세련됨, 우아함, 그리고 국가적 의전에도 깊은 애착을 가졌습니다. 공식 만찬에서 대통령이 먼저 대접을 받는 것이 일종의 공화주의 군주제적 엄숙함이라 보고 앙시앵레짐이나 제국시대에서 영감을 받는 전통적 요소를 보존하고 복원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 시대처럼 대통령이 가장 먼저 접대를 받는 특권을 부활시켰습니다.
아베롱에 소규모의 포도밭은 그의 이름을 딴 AOC와 그의 가문 이름을 딴 샤토가 있는데, 지스카르 데스텡이 그 샤토를 2005년에 사들이고, 자신의 이름을 붙인 라벨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위의 타이틀 배경이 샤토 데스텡과 주변의 풍경입니다.
샤를 드골 대통령,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 그리고 마크롱 대통령도 테이스트벵의 기사단 회원입니다. 그리고, 이 기사단 자격은 외교의 도구로 이용되어, 와인에 관심이 있는 독일 총리에게 수여되었습니다. 드골이 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에게, 프랑수와 미테랑이 헬무트 콜 총리에게, 그리고 마크롱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테이스트벵 기사단이 활용하는 무대인 클로드부조 성(château du Clos de Vougeot)에서, 기사단 휘장을 선물합니다.
이 성은 12세기와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시토 수도회 건물입니다(디종에서 남쪽으로 약 20km).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르고뉴 미기후와 테루아르(풍토)를 대표하는 포도밭(50헥타르에 달하는 코드 드 뉘 그랑 크뤼에서 가장 큰 규모)이 클로드부조 성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와인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중세시대에 시토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포도주를 만들던 시설과 건물이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 연중 방문객에게 개방되어 있고,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여전히 개최되고 있으며, 테이스트벵 기사단의 본부이기도 합니다.
드골 대통령은 1961년 5월 처음으로 케네디 대통령 내외를 맞이합니다. 43살의 케네디는 취임한 지 몇 달 되지 않았고, 70세인 드골은 1959년에 취임했습니다. 케네디의 아내 재클린은 조상이 프랑스계라 그녀는 불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프랑스 문화를 사랑했습니다. 가장 화려한 만찬은 베르사유궁의 거울의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67미터의 테이블에서 174명의 참석자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 바로 아래의 사진입니다. 이 역사적인 만남이 있던 만찬에서 드골 대통령은 페트뤼 와인(Petrus, 보르도의 그랑 크뤼 클라세(Grand cru classé))을 내놓습니다. 이 와인은 포므롤(Pomerol) 지역에서 생산되고, 희귀하고 강렬하며 세련된 풍미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이자 가장 비싼 와인 중 하나로 손꼽습니다. 케네디가 매우 좋아하는 와인이 페트뤼 와인인 것을 알고 내놓은 것이지요. 2차 대전 이후 냉전시대에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프랑스의 가장 명망 높은 와인을 선물한 것입니다. 양국 관계를 강화하려는 개인적인 배려가 프랑스의 세련되고 탁월한 와인으로 표시된 것이지요.
엘리제궁에서 만찬을 관장하는 책임을 지고 있던 고위관리 제롬 모노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와인이 얼마나 중요한 외교적 도구였는지 회고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정치에서 와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고, 주저 없이 와인을 이용하고 심지어 남용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제 귀에 대고, 소믈리에(포도주 전문 담당자)들에게 외교관과 외국 고위 관료들이 앉은 테이블의 와인잔을 쉼 없이 채워서, 그들이 의심을 내려놓고, 프랑스가 기다리는 것을 얻어낼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도 와인외교에 대한 의견을 르몽드 인터뷰에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행사에 쓰이는 와인을 고를 때 엘리제궁의 전속 소믈리에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공식 만찬과 리셉션에서 제공되는 와인과 음식은 손님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요소입니다. 와인의 중요성은 과장할 필요 없는 외교의 도구이자 오히려 우정과 유대감을 표현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자신만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영국 여왕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아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는 와인도 치즈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거의 막상막하였지요. 제가 엘리제궁의 와인 셀러에서 아주 좋은 와인을 손님들을 위해 내오도록 했을 때, 그들이 거의 입에도 대지 않은 것을 보면 속이 무척 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크롱이 시진핑에게 선물한 La grande robe rouge 와인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은 스스로를 와인 애호가라고 칭하며 '와인이 없는 식사는 슬프다'라고 말해왔고, 점심과 저녁 식사에 항상 와인을 곁들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외교 무대에서도 와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대통령입니다. 2024년은 파리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이자, 프랑스가 중국과 수교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중국과 관련된 여러 가지 행사를 했고, 시진핑 주석을 국빈으로 초대했습니다. 5월에 개최된 국빈 만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장 뤽 콜롬보(Jean-Luc Colombo)의 2008년 산 코르나 (AOC Cornas) 와인을 선물했습니다. 이 와인은 검붉다 할 정도로 짙은 붉은색을 띠는 론계곡 와인 (Vallée du Rhône)입니다. 마크롱은 이 와인을 '프랑스와 중국 간의 깊은 우정의 증거'라고 묘사했습니다. 이 코르나 와인의 강렬한 '붉은 드레스(robe는 불어로 '드레스'를 뜻하는데, 이는 와인의 색을 표현할 때 쓰는 어휘)'가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를, 그리고 비슷한 색깔의 중국의 명차, '그랑 로브 루즈(La grande robe rouge, 중국 푸젠성 무이산에서 재배되는 유명한 '다홍포 大红袍 ' 우롱차)'를 연상시켜 프랑스와 중국의 우정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담아 특별히 선별한 것입니다. 2008년 빈티지(밀레짐)는 베이징 올림픽이 있던 해를 기념하여 고른 것이었습니다. 이 시적이고 시각적인 은유는 두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고, 예상치 못한 유대감을 강조했으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인상을 남기려는 의도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와인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배려의 표시이자, 상호 유사점을 찾아 친근함을 부각하려는 의미였습니다.
2020년 브뤼셀의 유럽정상 회의에서 마크롱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재임기간: 2005-2021)가 66번째 생일을 맞은 것을 알고, 샤토 마레 (Château‑Maret, AOC Châteauneuf-du-Pape (AOC 샤토네프 뒤 팝)) 와인을 준비해 갔습니다. 그리고 7월 17일 오후 일정이 끝난 후에, 유럽 정상들과 함께 와인잔을 들어 메르켈 총리의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2021년 11월은 메르켈 총리가 퇴임을 한 달 앞두고, 마지막으로 프랑스를 공식 방문을 했던 때입니다. 이 방문이 바로 상징적인 것이었는데, 마크롱과 메르켈이 부르고뉴의 클로드부조 성에서 회동을 갖습니다. 이때 고급 부르고뉴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함께 하며, 개인적 유대감과 프랑스와 독일 관계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이때 메르켈 총리에게 엄선한 두 가지 고급 부르고뉴 와인을 선물했습니다. 하나가 생 오벵 프르미에 크뤼 (Saint-Aubin 1er cru) "르 샤르무아(Le Charmois)" 2015년 산이고, 두 번째가 뉘 생 조르주 프르미에 크뤼 (Nuits-Saint-Georges 1er cru) 2014년 산이었습니다. 첫째는 메르켈 총리의 절제되고 정교한 취향에 맞춘 와인이고, 둘째는 깊이, 복합성, 그리고 섬세함을 지닌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반영한 와인이었습니다.
사실, 독일과 프랑스는 샤를마뉴황제 (Charlemagne) 시대에는 하나의 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독일 정상을 맞이할 때 자주 코르통 샤를마뉴 (Corton-Charlemagne) 와인을 내곤 하는데, 이는 훌륭한 화이트 부르고뉴 와인입니다. 이 선택은 양국 역사의 중요인물이자 프랑스와 독일을 하나로 묶는 유산을 남긴 카롤링거 샤를마뉴황제에 대한 존경의 표현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은 단순한 미각적 즐거움을 넘어 공동의 역사와 운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외에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9년부터 미국은 특정 프랑스 와인, 치즈, 기타 농산물을 포함한 다양한 유럽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관세는 에어버스(프랑스)-보잉(미국) 분쟁 상황에서 미국이 유럽연합과 프랑스에 대한 압박 조치였습니다. 와인이 제재의 무기로 쓰이기도 하는 것이지요. 중국이 프랑스의 코냑에 대한 세율을 높일 때는, 마크롱이 시진핑에게 코냑을 선물하며, 정치적 의미가 담기도 하죠. 이렇게 좋은 술을 중국 국민과 같이 즐겨야지~ 하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이렇듯 와인은 외교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중 프랑스 대통령이 거주하는 엘리제 궁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프랑스산 와인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미테랑이 유럽정상들을 모아놓고 엘리제 궁의 와인셀러에 있던 1945년 산 무통 로칠드 와인을 따면서, 유럽연합의 승전 50주년을 기념한 이야기도 전했었죠? 다음에는 엘리제궁의 와인셀러 이야기를 더 해보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