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제궁의 와인셀러

어떤 와인이 들어오고 나가는지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

by 도시 은둔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와인셀러


엘리제궁의 와인셀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엘리제궁의 와인셀러를 담당하고 있는 소믈리에도 유명하지만 (2007년에 뽑힌 당시 30대의 최초의 여성 소믈리에, 베르지니 루티 Virginie Routis) 그 안에 어떤 와인들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소믈리에에게 엄격한 비밀 유지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엘리제궁의 와인셀러 총예산도, 그 안에 로마네 콩티가 몇 병이나 있는지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소믈리에가 어떤 술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치적 행위임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엘리제궁의 국빈만찬에 참석한 손님들이 당시 마셨던 와인을 생산하는 메종에 연락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고 합니다. 즉, 만찬에 사용된 와인이 직접적으로 홍보가 된다는 것인데, 국빈들이 소믈리에에게 와인 정보를 요청한다는 뜻이겠죠? 베르지니 루티가 독일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과 메모를 주고받았다는 얘기도 기자에게 귀띔을 하더군요.


반면, 소믈리에가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엘리제궁의 와인셀러는 프랑스 전역에서 사 온 와인으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타국의 와인은 사 오지 않으며, 가끔 있는 외국의 술은 주로 외국의 정상들이나 고위 인사들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들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믈리에는 모든 와인 생산자들을 맞이하고, 그들과 함께 그들의 와인을 마시는 일도 중요한 임무라는 것입니다.


엘리제궁의 와인창고에는 총 12 000 -14 000병가량의 와인이 보관되고 있습니다. (자료: 12 000 병의 와인 보유 (2015년, 르몽드 기사), 위키피디아에서는 현재, 14 000병) 엘리제궁의 와인셀러 와인 종류를 보면, 보르도가 1/2을 차지하고, 부르고뉴 화이트와인 1/4을, 나머지가 다른 지역들의 와인이 나머지 비율을 나눠가지는 구성입니다. 자크 시락 대통령 시절인 1982년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13도를 유지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때로 대통령의 선호에 따라 지역 와인의 비율이 변화되기도 하지만, 점차 다양한 지역의 와인들로 균형을 맞추는 임무가 소믈리에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엘리제궁의 와인셀러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이 무엇인지 궁금하시죠? 이것은 1906년 산 소테른 (Sauternes)이라고 하네요. 보르도 지역의 가론(Garonne) 강 왼쪽 편에 넓지 않은 지역의, 특별한 미기후에서 생산되는 단맛의 화이트 와인입니다. 성탄에 푸아그라와 마시는 와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대표 와인이 바로 샤토 디켐(Château d'Yquem)입니다. 이 소테른이 만들어지는 지역이 테루아르(terroir)에 대한 아주 특별한 조건을 잘 보여주는 예인데, 다음에 더 자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엘리제궁 와인셀러의 균형 잡는 줄타기


엘리제궁의 와인셀러는 엘리제궁에서 대통령이 너무 호화스럽게 생활한다는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외국의 정상이나 왕실의 손님을 대접하는 외교적 수단으로 프랑스의 우수한 와인을 내놓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줄타기를 해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엘리제궁에서 열리는 대통령의 국빈 만찬 경우에는 초대 손님이 수백 명인 경우가 많은데, 이때 소믈리에는 엘리제궁의 와인셀러에서 같은 해, 같은 메종에서 생산된 48병 이상 보유한 와인에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와 올랑드 대통령의 재임기간인 2013년 5월, 엘리제 궁은 "공식 만찬에 내놓기에는 수량이 부족한 아름다운(귀하고 비싼) 라벨을 보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와인 저장고의 일부인 1,200병을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페트뤼스 Pétrus (포므롤 pomerol), 샤토 슈발 블랑 (Château Cheval-Blanc)의 상테밀리옹 이나 샤토 오존 (Château Ausone)의 상테밀리옹, 미션 오브리옹 (Mission Haut-Brion)의 페삭 레오냥(pessac-léognan) 등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약 72만 유로에 달하는 경매 수익금은 와인 컬렉션을 재구성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2013년 6월 르몽드 기사에, "엘리제궁이 와인을 판매하고, 중국인들이 사들인다"라는 타이틀이 실렸습니다. 엘리제궁이 와인셀러 10분의 1 가량에 해당하는 1,200병의 와인을 판매했는데, 구매자 중에 대통령의 와인을 가방에 넣고 귀국하려는 중국인들도 많았다고 얘기합니다. 이 경매를 보면서, 국부의 유출은 아닌지, 혹은 엘리제궁의 합리적인 와인 정비와 운영인지, 사이에서 기사의 뉘앙스는 전자에 살짝 기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철문으로 봉쇄된 아치형 벙커에 자리 잡은 엘리제궁 와인셀러?


엘리제궁의 와인셀러는 1947년 제4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벵상 오리올 (Vincent Auriol, 재임기간:1947-1954)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이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정치와 외교를 정상화하며 손님들을 접견할 때 프랑스의 예술성과 문화적 유산으로 와인이 가진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후 페트뤼스, 라피트, 라 로마네 콩티, 샤토 샬롱 등 프랑스 유산의 걸작들이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놀랍게도 이곳은 1947년 만들어진 당시와 같이, 아직도 원형 그대로입니다. 아치형 벙커로, 방탄 처리되어 있고, 철문으로 봉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프랑스 원자 무기고가 있는 주피터 본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피터 본부는 프랑스 대통령의 권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인데, 엘리제궁의 지하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의 이임식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은 바로 이 주피터 본부에서 원자폭탄을 사용할 수 있는 비밀번호를 전달받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살림을 물려줄 때 곳간 열쇠를 넘기는 것이 가장 상징적인 일인 것처럼요. 우리나라의 국군통수권에 해당하는,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힘과 권력의 집중이 원자폭탄 작동 비밀번호로 대표되는 것이지요. 예전에 '미테랑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식 파티에서 그 비밀번호를 조끼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꺼내는 것을 잊고 세탁을 맡겼다'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비밀번호는 얇은 철판에 새겨져 있어서 손상이 되진 않았겠지만요.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00시부터 자동으로 국군통수권이 이양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새 대통령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국군통수권을 행사할 수 있고, 취임 첫날 가장 먼저 합동참모본부로부터 군사 대비 태세 등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으로 공식적인 통수권 행보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버킹검 궁의 와인셀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버킹검 궁에 왔을 때, 프랑스 대통령을 위해 자신의 와인셀러에서 아주 귀한 와인을 꺼내게 했습니다. 1900년 산 보르도(Bordeaux) 중 메독(Médo)의 유명한 와인인 샤토 마고(Château Margaux)를 잔에 담고 건배사를 했는데, 사르코지가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일화는 소믈리에들 사이에서는 거의 악몽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외교적으로도 훌륭한 행동은 아니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이 술을 절대 마시지 않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왕실에서 그를 위해 물과 색깔이 같은 술을 고르는 외교술을 발휘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여하튼, 귀한 손님을 위해 귀한 술을 내오는 것은 극진한 대접을 뜻하는 것인데, 술을 안 마시는 상대에게는 그다지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은 뭐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프랑스에 왔을 때, 엘리제궁의 만찬에서 소믈리에가 선택한 것은 폴 로저 메종 (maison Pol Roger)의 샴페인이었습니다. 이 샴페인은 영국왕실에서 인정한 8가지 샴페인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날 특별히 여왕을 위해 선택한 것은 '윈스턴 처칠 경' 빈티지였습니다. 처칠은 여왕의 첫 번째 총리였고, 처칠은 전쟁 영웅이자 국가의 원로였습니다. 두 사람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손녀뻘인 젊은 여왕을 처칠은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폈으며, 여왕의 초기 재위 기간 동안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왕에게 특별한 샴페인을 대접하려는 의도로 이런 빈티지를 고른 것이지요.


사실, 샴페인은 엘리제궁이나 버킹검 궁에서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빠질 수 없는 와인이지요. 버킹검 궁의 와인셀러도 엘리제궁의 와인셀러 못지않게 유명한 곳이고요. 특히 다음 편에서는 영국 왕실에 공급되는 8가지 샴페인 얘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엘리제 궁 외에도 총리관저인 오텔 마티뇽, 그리고 국회의사당과 상원의 룩상부르그궁에도 와인셀러가 있습니다. 프랑스 공화국의 와인셀러와 영국 왕실의 대표적인 버킹검 궁 와인셀러를 비교하며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다음은 버킹검 궁의 와인셀러 2편으로 돌아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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