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의 와인, 프랑스 엘리제궁의 와인, 손님맞이에 쓰이는 와인들
먼저 엘리자베스 2세 때 영국 왕실에서 선택한 샴페인 8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Bollinger 볼랭저
2-Lanson 랑송
3-Moët & Chandon 모에 샹동
4-Veve Clicquot-Ponsardin 뵈브 클리코 퐁사르댕
5-Krug 크뤼그
6-Mumm 뭄
7-Pol Roger 폴 로저
8-Louis Roederer 루이 뢰더레
9-Laurent-Perrier 로랑 페리에 (찰스 왕세자(현 찰스 3세)에 의해 공인)
그리고 덤으로 붙은 아홉 번째는 다른 샴페인보다는 조금 덜 화려한 샴페인입니다.
이 리스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궁정 납품 허가증(Royal Warrant)을 가진 샴페인 하우스들이고, 현 찰스 3세는 6개의 샴페인을 선택했는데, 볼랭저, 모에 샹동, 뵈브 클리코 퐁사르댕, 폴 로저, 루이 뢰더레, 로랑 페리에가 리스트에 남아있습니다. 여왕이 2022년에 서거하면서, 여왕이 부여한 워런트는 2년 후에 사라지게 됩니다. 이 로열 워런트는 왕, 여왕, 왕세자가 부여할 수 있고, 최대 5년간 부여, 5년 후 다시 심사를 거쳐 갱신된다고 하는데, 볼랭저의 경우에는 빅토리아 여왕시대부터 왕실에 납품을 하던 샴페인입니다. 이 로열 워런트를 받은 이들의 조합 사이트에는 왕과 왕비에게 납품하는 모든 물품과 기업 리스트가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중 한 예로 할시온 데이즈 (HALYCON DAYS)라는 상표가 지난 50년간 받은 로열워런티 로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HALYCON DAYS 홈페이지) 이곳의 홈페이지를 보면서, 여왕님의 티타임 때 이곳의 차세트가 쓰였겠구나, 싶더군요.
먼저, 샴페인은 엄격하게 프랑스 샹파뉴지역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에, 위의 8가지 샴페인은 모두 프랑스 산이라는 뜻이지요. 각 샴페인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에 샴페인 편에서 자세하게 얘기하기로 하고, 지금은 영국의 왕실에서 샴페인의 의미, 영국왕실의 와인셀러에 대한 이야기, 프랑스와 비교를 중심으로 다루기로 하죠.
보시다시피 샴페인 하우스와 왕실 사이의 연결 고리는 오래되고 견고합니다. 영국 왕실은 17세기와 18세기에 샴페인 홍보를 장려했습니다. 볼랭저(Bollinger)는 아주 일찍부터 이로부터 이득을 얻었습니다. 1884년, 뛰어난 와인 감정가였던 빅토리아 여왕은 자크 볼랭저에게 궁정 납품 허가증인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y)"를 수여했습니다. 1년 후, 미래의 에드워드 7세가 될 웨일스 왕자도 같은 허가를 내렸습니다.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국가 원수들은 볼랭저 R.D.*샴페인으로 축하했었습니다.
(*볼랭저 R.D. 의 R.D. 는 볼랭저 샴페인 하우스가 1967년 빈티지 정식 명칭으로 정한 법적 상표입니다. R.D. 의 의미는 Récemment Dégorgé, 영어로 recently disgorged이며, '최근에 데고르제 과정을 거친'이란 뜻입니다. 샴페인은 병 속에서 2차 발효를 거치며 탄산가스를 생성하는데, 이때 사용된 효모는 발효가 끝나면 죽어서 병 안에 침전물로 남게 됩니다. 이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샴페인이 맑고 깨끗하고, 맛과 향이 더욱 좋아지게 됩니다.)
프랑스의 엘리제궁 와인셀러처럼 영국 왕실의 와인셀러에 대해서도, 비밀유지 엄수가 원칙입니다. 왕실의 와인 취향도 왕실의 중립적 이미지, 윈저가문의 왕족들 개인 취향에 대한 비밀, 보안과 외교적 전략, 왕실 의전의 신중함 등을 이유로 기밀로 여겨집니다. 그런 와중에 왕실이 선택한 샴페인 8가지가 알려진 것은 로열 워런트 기업 조합의 리스트 공개 때문입니다. 사실 이 8개의 샴페인 상표도 페어플레이를 위해서 돌아가면서 국가 행사에 사용된다네요.
영국은 왕실이 여전히 존재하고, 프랑스는 시민혁명으로 왕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엘리제궁을 비롯한 프랑스 공화국의 궁들은 이전 프랑스 왕실 소유를 모두 국가에 귀속시킨 것들입니다. 엘리제궁은 루이 15세의 애첩으로 유명한 마담 퐁파두르와 나폴레옹의 여동생 카롤린이 살았던 궁이었습니다. 현재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는 궁은 부르봉궁이라고 불리는데, 루이 14세의 애첩 마담 몽테스팡이 낳은 딸 루이즈-프랑수와즈 공주가 지은 궁이었습니다. 그리고 룩상부르그공원 안에 있는 룩상부르그성은 현재 상원이 자리 잡고 있는데, 앙리 4세의 두 번째 왕비인 마리 드 메디치(1575-1642)가 자신이 살던 피렌체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피티궁(Palazzo Pitti)을 모델로 지은 왕궁입니다. 총리관저인 오텔 드 마티뇽도 1722년에 지어진 귀족의 저택으로, 모나코 왕세자비 루이즈 이폴리트 그리말디(1697-1731)와 결혼한 자크 4세 드 마티뇽(1689-1751)이 1725년부터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오텔 드 마티뇽은 프랑스혁명까지 모나코의 군주와 왕비들의 파리 거주지로 쓰였습니다. 케도르세(Quai d’Orsay)라 불리는 외무부 공관은 1845년 7월왕정 하에서 외교활동을 위해 지은 건물로, 프랑스 공화국이 자발적으로 부처 업무 수용을 위해 지은 최초의 공식 건물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건물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왕이나 왕족들, 귀족들이 지은 궁이나 저택을 국유화한 것들이거든요. 여하튼, 엘리제궁을 비롯하여, 오텔 드 마티뇽과 외무부공관 케도르세는 모두 각각의 와인셀러를 가지고 있고, 엘리제궁 다음으로는 케도르세의 와인셀러가 활발한 외교활동을 하는 장소이다 보니 나름의 중요한 컬렉션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영국에는 외무부에서 관리하는 영국 정부 와인 저장고 (The UK Government Wine Cellar)가 랭커스터 하우스 (Lancaster House)에 1908년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공식 외교 행사, 국빈 만찬, 국제 리셉션 등의 행사에서 쓰이는 와인은 이곳에서 조달을 합니다.
반면, 영국의 왕실은 1703년 경부터 버킹검궁 지하에 왕실 개인 와인셀러를 가지고 있는데, 버킹검궁이 왕실의 공식 왕궁이 되기 전부터, 지하의 와인셀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궁의 지하에 터널이 있고, 버킹검 궁의 한 방에서 화이트홀, 의회, 클래런스 하우스, 심지어 다우닝가 10번지까지 연결되는 지하 터널망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거울로 장식된 캐비닛 뒤에 숨겨진 화이트 드로잉 룸(White Drawing Room)의 은밀한 터널은 군주가 개인 거주지로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인근 지하 통로의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특정 통로의 존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하는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의 시종장이 전쟁 후 터널 중 하나에 사는 남자를 만났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비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지하 통로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여튼, 지하터널은 공식적으로 확인이 안 되어서, 버킹검궁의 비밀이라고들 말하는데, 사실 왕실의 와인셀러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버킹검궁 왕실 와인셀러의 컬렉션은 정치적 의무 없이 왕실의 취향에 맞춰 고품질을 추구합니다. 그리하여, 프랑스 와인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여왕이 좋아했던 샴페인이, 이제는 찰스 3세 중심으로 구성에 변화가 생기겠죠? 왕은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생산된 유기농 와인에 대한 관심도 많고, 영국의 와인의 부흥을 지원하기 위해, 윈저궁의 공원에 포도를 심기도 했답니다. 언젠가 프랑스의 샴페인에 경쟁할 만한 스파클링 와인이 왕실 행사에 쓰일 날이 올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참고로, 현재 로열 워런티를 얻은 카멜벨리-콘월(Camel Valley - Cornwall)은 1989부터 자이너메이커 (Xinemaker) 가족이 만드는 영국산 스파클링 와인인데, 국제 와인 챌린지 트로피 4개 수상, 볼레치니 델 문도에서 '세계 최고의 스파클링 로제' 수상, 2017 콘월 지속가능성 트로피 수상 등을 자랑하는 영국산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왕실 와인셀러의 컬렉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식전주로 듀보네 + 진 (Dubonnet + gin)을 즐겨 마시고, 좋은 샴페인 한 잔을 즐기던 취향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듀보네(Dubonnet)는 1846년 파리에서 조셉 뒤보네가 만든 것으로, 와인, 허브, 키니네(quinine, 나무껍질에서 추출)로 만들어진 프랑스식 식전주입니다. 당시에는 와인을 베이스로 한 쓴맛이 나는 식전주로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이 제공될 때에는 본래, 엄격한 위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샴페인은 국가의 원수, 대국의 고위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제공이 됩니다. 그런 샴페인을 왕실의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는 때가 있는데, 바로 왕세자가 태어난 날 같은 때이죠. 2013년 7월 22일 증손자 조지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여왕은 왕궁 직원 모두에게 샴페인 한 잔을 제공했는데, 그때 샴페인 브랜드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여왕의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매일 로제 샴페인을 한병 따서, 한잔 마시고, 나머지는 그녀의 고용인들에게 나눠졌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샴페인 선호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여왕은 프랑스 혈통을 이어받았고, 불어가 유창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문화와 와인, 샴페인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는 상황이었겠지요. 여왕의 샴페인에 대한 이러한 애정은 찰스 3세에게까지 이어져, 그는 사적인 귀빈이나 고귀한 손님들에게 샴페인을 대접합니다. 하지만 일반 손님들에게는 '듀시 오리지널스 (Duchy Originals)'라는 하우스 스파클링 와인이 제공한다고 하네요. 이렇듯, 왕실에서 내오는 술의 종류에 따라 대접에 대한 등급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샴페인이 나온다면, 이는 당신을 최고의 극진한 손님으로 대우한다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샴페인에 관한 프랑스와 영국 상류층들의 선호에 차이가 있는데, 영국은 25년 이상된 샴페인을, 프랑스는 젊은 빈티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을 맞이하며, 만찬에 내놓은 와인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2014년 파리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빈 만찬이 있던 6월 6일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7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필립 공과 동행을 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엘리제 궁에서 국빈 만찬을 개최했습니다. 그때 제공된 와인들을 보면, 식전주로 나온 브뤼 샴페인은 2004년 산 메종 도이츠 (Maison Deutz)였습니다. 우아하고 꽃향기가 풍부한 와인으로 절제된 외교적 예절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와인은 콩트 라퐁 (Domaine des Comtes Lafon) 도멘의 2009년 산 뫼르소 프리미에 크뤼 (Meursault Premier Cru 2009)인데, 고급 생선이나 가금류 소스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입니다. 세 번째 와인은 육류와 함께한 보르도 프르미에 그랑 크뤼인 1996년 산 샤토 마고(Château Margaux)였습니다. 보르도 와인의 전문성과 탁월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레드 와인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마르 도멘(Domaine Baumard)의 2005년 산 코토 뒤 레이용(Coteaux du Layon)은 루아르 계곡의 달콤한 화이트 와인으로, 디저트와 즐기기에 적격인 부드럽고 과일 향이 풍부하며 달콤한 마무리에 안성맞춤 와인입니다.
각 와인들의 의미를 살펴보면, 샤토 마고는 프랑스에서 가장 귀한 와인 중 하나로, 이 빈티지를 여왕에게 바치며 프랑스의 특별한 애정을 표시한 것입니다. 뫼르소는 왕실 의전에서 소중히 여기는 부르고뉴의 섬세함을 강조한 선택이고, 샹파뉴 지역, 보르도, 부르고뉴, 루아르 등 다양한 지역의 와인을 엄선하여 프랑스 와인 문화의 풍요로움을 골고루 선보이는 무대였습니다.
2022년 가을 여왕이 돌아가신 후에는 샤를 3세가 즉위를 했죠. 그다음 해 왕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베르사유 궁전과 엘리제 궁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맞이하며 내놓은 와인을 한번 알아보죠. 2023년 9월 20일, 샤를 3세 국왕과 카밀라 왕비의 방문을 기념하여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제공된 와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948 산 샴페인 살롱 (Champagne Salon)은 엘리제 궁에서 환영 건배로 제공되었으며, 마크롱 대통령이 샤를 3세에게 바친 상징적인 선물이었습니다. 1948년은 샤를 3세가 태어난 해를 기념하는 빈티지(밀레짐)입니다. 그리고, 찰스 1세의 수채화가 담긴 라벨의 2004년 산 더블 매그넘 샤토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on Rothschild)로 베르사유궁 유리의 갤러리 만찬을 축하했습니다.
1945년부터 무통 로칠드 라벨에는 예술가의 작품이 일러스트로 그려져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포도나무와 와인에 대한 작품이지만, 때로는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도 합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1904년 4월 8일 체결된 영국과 프랑스의 협상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4년 라벨을 제작했습니다. 에드워드 7세의 직계 후손이자 그림에도 재능이 있는 웨일스 왕자 찰스에게 의뢰했습니다. 그는 2004년 무통 로칠드 와인 라벨에 프랑스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자신의 수채화 그림을 넣는 데 동의하며, "영불동맹 100주년을 기념하며 - 샤를, 2004"라는 친절한 문구를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