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들의 비밀 와인 노트

정치와 와인이 만나는 이야기

by 도시 은둔자

프랑스 대통령들(제5 공화국: 샤를 드골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현재 마크롱 대통령까지)과 와인의 관계는 복잡하고 다양하며, 개인적 선호, 상징적 역할, 외교, 그리고 공중 보건 문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와인, 프랑스 경제의 핵심 동력


2022년 프랑스 수출 1위는 항공우주 산업이었고, 2위가 바로 와인이었습니다. 2024년에는 의약품과 기계·전자가 1, 2위를 차지했지만, 와인은 여전히 3, 4위 안에서 항공우주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와인은 프랑스의 핵심 수출 산업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특정 와인에 대한 선호를 밝히는 것은 단순한 개인 취향을 넘어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 됩니다.

프랑스 대통령들은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와인을 이용하고, 와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의 와인은 자신의 출신과 관련된 지역적 자부심, 개인적 취향, 심지어 정치적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 알코올 성분인 와인이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반(反) 알코올 캠페인과 보건 관련 우려가 커지면서, 제5공화국 대통령들이 와인을 다루는 방식이 더욱 복잡 미묘해지고 있습니다.



역사 속 와인의 변화: 일상음료에서 기호품으로 - 아이들도 마셨던 와인의 시대


와인이 알코올음료로, 주의해야 할 음료가 되기 전에 프랑스인들은 와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 (재임기간: 1974-1981) 임기 때 고등학교의 구내식당에서 와인 전면 금지가 실행됩니다. 1956년에는 14살 미만 아이들의 학교에서 와인이 금지되고, 대신 우유를 장려합니다. 즉, 그 이전까지 와인은 대중적인 음료로, 아이들도 물에 탄 와인을 마셨던 것입니다. 그때는 와인이 물보다 더 위생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와인이 발효과정에서 박테리를 죽이고, 살균하는 효과도 기대했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마시는 물을 지금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적인 수도시설이 없었던 때임을 환기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리고, 옛날부터 물은 마시기에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왕들은 우물이나 물에 독을 타서 살해당하는 위협에 늘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왕들은 (완벽하게 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와인에 독을 타면, 와인 색이 변한다든가, 와인의 향을 변화시켜서 독이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다고 믿으며 와인을 선호했습니다. 또한 질 좋은 와인을 마시는 것은 부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 3세: 샴페인으로 인심을 산 황제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동시에 의붓 손자!)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아버지가 나폴레옹 1세의 동생(루이 보나파르트)이고, 어머니가 나폴레옹 1세의 아내인 조세핀의 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아버지가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 프랑스 귀족이자 군인)입니다. 좀 복잡하지만, 여하튼 나폴레옹의 동생이 조세핀의 딸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 그래서 이름도 루이-나폴레옹 (동생+형) 모두 담고 있는 것입니다. 루이-나폴레옹은 삼촌의 후광 덕분에 무려 74퍼센트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황제로 등극하고 나폴레옹 3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삼촌처럼 군대에서 인기와 신임을 얻지 못했기에, 군인들에게 샴페인을 뿌려대며 환심을 사려고 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이는 화려한 파티에서도 샴페인을 줄지어 들였습니다. 심지어 나폴레옹 3세는 파리와 샹파뉴 지방을 잇는 철도를 건설하여, 더 쉽게 샴페인을 가져왔습니다. 지금도 파리-렝스를 잇는 TGV가 40분 만에 왕복하고 있는 것은 그때의 기초 덕분입니다. 당시의 언론은 나폴레옹 3세의 이런 행태를 "샴페인의 황제 카이사르"로 비꼬았습니다.



제5 공화국 대통령들의 와인 철학


샤를 드골은 파리 근교의 프랑스에서 가장 큰 공항이름이자, 5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드골 장군(재임기간: 1959-1969)의 이름입니다. 드골이 집권하던 시기의 프랑스인들은 매년 개인당 160리터의 포도주를 마신 것으로 집계되는데, 이는 일인당 213병에 해당합니다. 시대가 변하여,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 (재임기간: 2012-2017) 시기에는 매년 개인당 42리터의 포도주를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일인당 56병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이렇게 프랑스인들의 와인 소비가 급격하게 변한 것처럼, 대통령들의 와인 관련 태도와 정책들도 다양한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도 크게 반영되지만, 정치적, 외교적 중요성은 지금까지도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샤를 드골: 절제 속의 상징성

드골 장군(프랑스인들은 샤를 드골 대통령을 장군으로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듯합니다)의 집권시기에, 대통령은 포도주 소비에 있어서 엄격한 입장을 보여줘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드골은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아니었고, 드골의 아내 이본느는 가톨릭 신자로 엄격하고 단순한 삶을 살며, 앞으로 드러나지 않고 신중하게 드골을 내조했습니다. 반면, 드골은 포도주가 프랑스에서 차지하는 크고 상징적인 입지를 무시할 수는 없었고, 엘리제궁에 1947년 처음 만들어진 와인셀러를 더욱 키운 것도 그였습니다. 나중에 1961년 케네디 대통령과 마신 와인 이야기도 하기로 하죠.


엘리제궁의 와인셀러에는 중요한 프랑스 빈티지 와인들이 보관되어 있고, 대통령들의 와인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엘리제궁의 와인셀러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샤를 드골(재임기간: 1959-1969)은 자신의 고향의 이웃에서 생산하는 샴페인을 엘리제궁의 만찬에서 자주 올렸고, 이 메종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샤를 드골 탄생 100주년 기념 와인을 만들고, 왜 와인 병따개에 드골 장군의 이름이 붙었는지 그 유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일단 이런 이야기들도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조르주 퐁피두: 로칠드 가문과의 인연

인상주의 시대 이후의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퐁피두 센터를 많이들 아시죠? 네, 바로 그 퐁피두 센터를 발주한 대통령이 바로 조르주 퐁피두(재임기간: 1969-1974) 대통령입니다. 그는 파리라는 도시에 전통에서 벗어난 현대적이고 모던한 요소들을 불어넣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엘리제궁의 인테리어를 모던하게 획기적으로 (물론, 사적인 주거공간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그는 최고급 보르도와 좀 더 대중적인 카오르(Cahors) 등의 와인을 마셨습니다. 그는 특히 자신이 로칠드 은행의 사장으로 있었던 인연으로, 다양한 로칠드 와인들을 잘 알았고, 엘리제궁의 만찬에서도 이 와인들을 자주 마셨습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부르고뉴의 애호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재임기간: 1974-1981)은 공식 석상에서는 와인 마시는 것을 자제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선호하는 와인이 뚜렷했습니다. 그는 특히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했으며, 자신의 명의로 된 *AOC(포도주 원산지 통제 명칭)도 있습니다. 데스탱 와인, 또는 지스카르 AOC라고 불리는 이 와인은 전 대통령이 2005년 자신의 성과 같은 데스탱 샤토를 구입한 것과 관련이 깊습니다. 또한 그는 부르고뉴 와인을 홍보하는 책임을 맡은 테이스트뱅 Tastevin 기사단의 휘장도 받았습니다.


*원산지 통제 명칭(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은 프랑스 정부 포도주, 치즈, 버터 혹은 다른 농산품들이 생산되는 곳의 지형학적 특성들을 인증하는 것으로, '테루아르 (terroir)'를 기반으로 합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역사적 순간의 와인

프랑수아 미테랑(재임기간: 1981-1995)은 와인에 있어서 더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특히 에뱅 법(loi Evin, 알코올과 담배 판매, 광고 규제 관련법)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는 유일하게 코냑(Cognac)의 땅, 샤랑트 지역(les Charente)의 포도농장에서 태어났지만, 특별히 포도주에 더 전문성을 갖고 있는 대통령은 아니었습니다. 1995년, 미테랑은 유럽의 국가 원수들이 모여, 유럽 해방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엘리제궁의 연회장에서 개최할 때, 엘리제궁의 와인 셀러에서 1945년의 승전을 기리는 1945년 산 무통 로칠드를 테이블에 올리자('희생하자',라는 불어표현이 쓰였는데, 참고로, 2018년에 1945년 산 무통 로칠드 매그넘(1.5L)이 가격이 15,808유로로 책정)고 제안했을 때 한치의 망설임 없이 허락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와인의 빈티지(포도를 수확한 해, 불어로는 밀레짐(millésime)이란 단어를 사용)는 특별한 해를 기념해서 쓰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내 프랑스 친구 부모님은, 그 친구가 태어난 해에 좋은 와인을 많이 사놨다가, 그 친구가 결혼할 때 축하파티의 와인으로 내놨습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우리 아이가 태어난 해의 와인을 선물로 주시기도 했다.


자크 시라크: 맥주를 선호한 대통령

자크 시라크(재임기간: 1995-2007)는 딸로부터 소개받은 맥주(이름이 코로나 Corona인 벨기에 맥주)를 선호했습니다. 와인보다 맥주를 선호한 흔치 않은 프랑스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그는 매년 파리에서 농업 박람회가 개최되면, 오랜 시간 머물면서 농민들과 포도주 생산자들을 만났고, 농업관계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대통령이었습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금주주의자의 역설

니콜라 사르코지(재임기간: 2007-2012)는 와인의 온라인 광고에 대한 에뱅 법(loi Evin)을 완화했지만, 금주주의자였습니다. 특히 2008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윈저궁으로 초대해서, 사르코지와 카를라 브뤼니에게 와인을 들고 건배사를 했습니다. 이때, 여왕은 특별히 1900년 산 샤토 마르고를 준비했는데, 사르코지가 여왕의 건배를 청할 때, 와인잔에 물을 넣어 건배한 후에 재빠르게 잔을 내려놓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술을 비롯한 와인을 마시지 않는 사르코지 재임기간에 엘리제궁의 와인셀러에 가장 많은 와인을 모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대략 25 000병의 와인이 있었고, 현재는 그 절반 정도인 14 000병이 있고, 외교부 장관의 공관에도 10 000병 정도를 보유한 와인 셀러가 있다고 합니다.

2022년에는 카를라 브뤼니와 샤토 데스투블롱 (château d’Estoublon)을 구입하여, 사르코지 라벨이 붙은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금주주의자의 행보로는 참 역설적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뭐, 술을 안 마셔도 와인은 생산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한다면 뿌꾸와빠(pourquoi pas, 왜 안 되겠어)?


프랑수아 올랑드: 실용적 접근

프랑수아 올랑드(재임기간: 2012-2017)는 '모든 와인을 사랑하는' 대통령으로 묘사합니다. 사회당 대통령인 그는 2013년에 엘리제궁의 와인셀러에서 1200병의 비싼 와인을 경매로 팔아서, 더 저렴한 와인으로 교체하는 실용성을 보여줬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와인 외교의 부활

에마뉘엘 마크롱(재임기간: 2017-현재)은 와인에 대한 관심을 공공연히 표현하며, 와인을 식사의 필수품이자 주요 외교적 자산으로 여깁니다. 와인은 경제적 자산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정체성"으로 여기며, 다양한 외교 활동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정치 무대에서 활약하는 대통령 곁에서 와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대통령은 와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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