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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은둔자 Oct 31. 2020

파리 시청, 민중의 베르사유궁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공화국과 민중의 영예를 빛내는 전당

700년 역사의 파리 시청은 센강에서 가장 중요한 나루터를 끼고, 당시 파리에서 유일한 광장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앙리 4세가 보쥬 광장 (당시에는 왕실 광장, 시민혁명 후 이름이 보쥬로 바뀐다)을 건설하기 전까지 파리에는 광장이 이곳뿐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센강으로 이동한 식료품, 포도주, 옷감 등의 물품들이 이곳 나루터에 하적 되고, 중앙시장으로 이동했다. 이 광장의 이름은 그레브(grève, 동맹파업이란 뜻)였는데, 여기 쌓인 물품들을 하적하고 배달하는 날품팔이 일을 찾아 실직자들이 모여든 것에서 유래한다. 이 중앙시장 상인들의 조합 대표가 지금의 파리 시장에 해당하고, 이 상인조합들의 본부가 시청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센강의 나루터와 그레브 광장, 광장 오른쪽에 파리 시청의 모습이 보인다. 위키피디아


현재 우리가 보는 파리 시청은 1529년 프랑수와 1세가 이탈리아인 건축가 보카도(Boccador)에게 설계를 맡긴 르네상스 양식 건축에서 시작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청광장은 공개처형이 이뤄지는 장소였다. 시청의 맞은편에는 시테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데, 죄인은 성당에서 마지막 기도를 하고, 광장으로 옮겨져서 처형을 당했다. 앙리 4세를 암살한 하바약도 이곳에서 처형되고, 루이 15세를 칼로 찌른 다미앙도 이곳에서 네 마리의 말이 팔다리를 잡아당겨서 떼어내는 형벌인 능지처참 형을 당했다. 


1610년경의 파리 시청, 광장의 오른쪽에서 화형이 집행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파리 시청은 1871년 파리코뮌에 의해 전소된다. 코뮈니스트들이 프로이센에게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격렬하게 싸우다 후퇴하며 자신들의 보루인 시청을 불태우며 퇴각한다. 당시 프로이센에 항복한 정부는 베르사유궁으로 이동해있었는데, 파리코뮌을 정복하고 파리로 돌아와서 파리 시청을 재건하기로 한다. 이때 보카도의 르네상스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며 더 크게 확장하여 복원한다. 10년간 900여 명의 노동자가 매일 공사에 투입되었고, 시청 건축에 참가한 조각가만 230여 명에 이른다. 시청 건축에 참여한 화가들과 조각가들이 수백 명에 이른 것은 시청의 장식이 무척이나 화려했음을 뜻한다.

파리 시청의 파사드를 비롯한 외관은 207명의 파리시 중요인사들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중 시청을 설계한 건축가 보카도, 몰리에르, 볼테르, 라부아지에 등과 파리의 시장들이 있다.

 

파리 시청에는 207명의 파리시 중요 인사들 조각이 외관을 장식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3공화국의 지도자들은 베르사유궁의 화려함에 놀랐는데, 파리 시청을 왕궁에 대적하는 공화국과 민중을 찬양하는 전당으로 만들고자 했다. 당시 민중의 80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농민에 대한 찬양, 어민과 공인에 대한 찬양, 수공업과 장인에 대한 헌사로 가득한 그림과 조각이 시청 실내를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이상적 기대와 예찬이 반영된 작품이 두드러진다. 그중 시청 연회장을 베르사유궁 거울의 갤러리에 비견되는 크고 화려한 공간으로 계획한다. 길이는 76미터인 거울의 갤러리에 미치지 못하는 50미터이지만, 폭과 높이는 그보다 더 높고 넓게 한다. 프랑스 공화국의 이니셜(RF; République Française)을 곳곳에 새기고, 각 지방의 알레고리(은유)가 천정과 그 아랫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당시에 프로이센에게 빼앗긴 알자스 지방은 없고, 프랑스에 귀속되었던 알제리는 프랑스 지방 중 하나로 남아있다. 


왼쪽은 파리시청 연회장의 천정부분, 오른쪽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왔을 때 시청 연회장 행사 장면. 위키피디아


아래, 시청의 내부 장식 중에서 왼쪽 조각은 잡은 물고기를 어깨에 메고 있는 어부를 형상하고, 오른쪽은 제목이 '태양을 향한 대지의 찬가'인데, 농부와 농촌을 기리는 작품이다. 

모든 사진의 출처는 위키피디아

위의 오른쪽 작품은 연회장의 천정 아랫부분으로 프랑스의 각 지방을 상징하는 여인들이다. 천을 감싸고 있는 오른쪽의 금발 머리 여인은 리용의 발달된 견직물 공업을 나타내고, 왼쪽의 베일을 하고 있는 흑인 여인은  당시 프랑스의 한 지방에 속했던 알제리를 상징한다. 왼쪽의 그림은 여러 예술의 분야 중 건축을 상징하는데, 여인의 손에 도면을 말아서 들고 있다.   



파리 시청의 남쪽, 세느강변 쪽에 위풍당당한 기마상이 서있다. 그 주인공은 에티엔 막셀로, 14세기 프랑스가 영국과 백년전쟁을 하던 시기에, 전쟁으로 인한 상인들의 경제적 압박에 저항하며 프랑스 군주제에 맞선다. 1357년 반란을 주동한 파리 상인들의 대표(당시의 시장에 해당) 에티엔 막셀은 왕이 영국에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시테 궁에서 섭정을 하고 있던 왕세자(미래의 샤를 5세)에게 쳐들어가, 그를 협박하여 세금 개혁을 강요했다. 에티엔 막셀은 다음 해, 주도권을 잡은 왕권에 의해 살해되지만, 왕권에 대항한 그의 업적은 지금까지 파리 시청에 기마상을 세워 기려지고 있다. 


파리시장의 집무실은 남쪽과 서쪽의 모서리에 센 강과 광장을 향해 있다. 파리 시청에서 가장 큰 집무실(155제곱미터)이고, 파리가 독일의 점령에서 벗어난 것을 드골 장군이 이 집무실의 창문에서 선포하여 광장에 모인 파리 시민들이 환호하는 역사적 장면의 무대가 이곳이었다. 시장의 관저도 시청 건물 안에 마련되어 있다. 

 

왼쪽은 파리시청 남쪽 측면에 세워진 에티엔 막셀의 기마상, 오른쪽은 파리시장의 집무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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