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태어난 집, 살았던 집, 죽은 집,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는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데, 그가 화가, 작가, 도시계획가, 건축가, 디자이너 모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다재다능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르 꼬르뷔지에(1887-1965)는 미스 반 데르 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1886-1969), 월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1883-1969),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1867-1959), 알바 알토 Alvar Aalto(1898-1976)와 더불어 근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린다.
지금에야 현대 건축들에 익숙해진 우리는 근대 건축의 아버지들이 지어 놓은 건물을 보면서, 음~ 저것이... 왜? 뭐가? 훌륭한 것이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근대 건축의 아버지들이 활동한 시기가 20세기 초, 즉 1900년대 초반인 것을 고려하면, 프랑스만 해도 당시 벨 에포크의 오스만 건물이 파리를 점령해 가고 있었고,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민족 최대의 위기, 식민지 시대를 지나던 때로, 당시의 사진을 보면, 서울에 여전히 초가집이 즐비하던 시기이다. 그런 때에 이들은 아래와 같은 건축물들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 중에 건축을 공부한 사람은 알바 알토뿐이다. 미스 반 데르 로에의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그것이 가족 사업이었고, 그는 초기에 가업을 전수받다가, 건축사무소에 제도사로 들어간다.
르 꼬르뷔제도 아버지의 직업이던 시계 디자인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직접 건축가들을 찾아다니며 현장에서 배우고, 로마와 그리스를 여행하며 고대의 건축을 직접 보고, 스케치하며, 건축에 대한 생각과 사고를 키웠다. 즉, 건축을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얘기다.
특히 24살에 친구와 함께 독일 베를린에서 출발해 도나우강을 따라 보헤미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거쳐 터키와 그리스를 6개월간 여행을 한다. 그때 남긴 스케치와 기록은 54년이 지나 건축가의 세심한 주석을 덧붙여 '동방여행(1914년)'으로 세상에 나온다.
무엇이 근대 건축인가? 왜 근대건축의 아버지라고 하는가를 논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것은 파리의 오스만 양식과 비교하면 근대성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이는데, 이는 후일 다른 꼭지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르 꼬르뷔제의 삶을 따라갈 수 있는, 그가 살았던 건축물을 통해, 그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가, 그가 어떤 삶을 꿈꾸었는가를 알아보려고 한다. 주로 프랑스에서의 삶과 관련된 건축물을 다루는 것을 1편으로, 스위스에서의 삶과 관련된 건축물은 2편으로 나누어서 이어가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한 르 꼬르뷔제의 17개 작품이 있다. '르 꼬르뷔제의 건축 산책'이라는 타이틀도 붙여놨다. 그중 개인적으로 샤를-에두아르 잔느레(Charles-Edouard Jeanneret, 르 꼬르뷔지에의 본명)의 삶이 묻어 있는 건축과 장소들을 따라가 보자.
샤를-에두아르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고, 잔느레가 성이다. 르 꼬르뷔지에라는 이름은 '에스프리 누보(새로운 정신)'라는 잡지를 오장팡(Ozenfant)과 만들면서, 잡지가 대부분 두 사람의 글을 채워지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다양한 필명으로 쓰게 된 것이다. 오장팡이 자신의 어머니 쪽 성을 사용한 필명을 만들면서, 샤를-에두아르에게도 같은 방법을 제안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 쪽 조상 이름인 르 꼬르뷔지에 Lecorbésier에서 이름을 따온다. 이후 약간 변형된, 르 꼬르뷔지에란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다.
그의 아버지는 시계에 정교한 디자인을 새기는 금속 세공사였고, 어머니는 피아노 교사였다. 그는 아버지처럼 금속세공을 배운다. 그런데 반복적인 작업이 맘에 들지 않았고, 눈이 너무 나빠서 금속세공을 계속할 수도 없었다. 그는 화가가 되고 싶어 했는데, 사실 퓨리즘(purisme 순수주의)이라는 양식의 그림을 그렸지만, 화가로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건축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그것에 만족하지는 못한 것 같다.
르 꼬르뷔지에는 화가가 되고, 화가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그리고, 끝까지 그림 그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이 잘하고 재능이 있는 것과 자신이 원하고 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갭이 생길 때 갈등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과연 답이 있을까? 혹은 르 꼬르뷔지에처럼 둘 다? 그래도 그는 건축가로서는 성공했으니, 절반의 성공은 했다고 볼 수 있으려나?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스위스인인 그가 파리에서 건축가로 자리를 잡게 된 계기는 '에스프리 누보 (새로운 정신)'라는 예술잡지를 내고, 그를 통해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듯 삶의 근거지인 스위스를 떠나 파리에 온 이후, 일을 따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는데, 그 일환으로 예술잡지를 내고, 그것이 널리 알려진다. 그를 계기로 초기에는 예술 애호가들로부터 건축설계, 주로 주택설계를 의뢰받기 시작한다.
르 꼬르뷔제는 글로 자신을 잘 표현할 줄 아는 건축가였고, 그 능력으로 건축가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자료: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한 르 꼬르뷔제의 17개 작품이 있다. '르 꼬르뷔제의 건축 산책'에 나오는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https://fr.wikipedia.org/wiki/L%27%C5%93uvre_architecturale_de_Le_Corbusier
유네스코에서 선별한 17개의 르 꼬르뷔지에 작품과 그의 생에 관련 자료(사진, 도면, 스케치 등)가 풍부하고, 특히 르 꼬르뷔지에 당시의 도면 자료를 볼 수 있어서 좋다.
https://lecorbusier-worldheritage.org/la-serie/
르 꼬르뷔지에의 주거, 16구와 블로뉴의 경계에 있는 중층 아파트
주소: 9 allée des Pins et 7 rue des Arts à Boulogne-Billancourt
르 꼬르뷔지에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아파트와 그가 죽음을 맞은 지중해의 조그만 오두막은 그의 청교도적 검소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아파트 건물은 자신이 설계한 건물이고, 그중 한 아파트에서 임대인으로 사는 줄 알았는데, 실은 건축물을 짓고, 임대사업을 하는 회사로부터 건축 의뢰를 받고, 자신의 아파트는 자신의 돈을 내고 짓는 것으로 협상을 하면서 설계를 했다. 그리고 설계를 맡겼던 회사가 파산하면서, 건물이 매각되는 위기에서 처했는데, 10년간의 소송을 통해 결국 자신의 아파트 소유권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파트는 중층으로 만들고, 지붕에 옥상정원과 손님방도 설계해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집은 두 개의 면이 서로 다른 동네에 속하는데, 필지가 파리 16구와 블로뉴-비앙꾸르에 걸쳐 있다. 집합주택 중에서 처음으로 전면을 유리로 설계한 건물이라고 한다. 이 집에서 그는 아침에는 화가로, 낮에는 건축가로 살았다. 그래서 르 꼬르뷔지에의 '아뜰리에-아파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울과 화장대가 있는 쪽은 아내 이본느의 욕실, 그 옆에는 샤워기, 변기와 세면대가 있는 르 꼬르뷔지에의 화장실이 따로 있다. 그리고 문제의 비데가 있는데, 비데의 위치가 좀... 이해하기 어려운 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이본느의 화장대 옆에 있는데, 뭐 욕실에 문이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렇게 비데를 꺼내 놓은 이유는, 아마도 키우는 강아지를 씻기거나, 발을 씻는 용도로 더 많이 사용했기 때문일까? 비데는 프랑스의 왕실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세계대전 당시 미군들은 비데를 처음으로 보는데, 그 장소가 바로 사창가였다고 한다. 하여, 비데의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그에 반기를 들듯, 르 꼬르뷔지에는 자신의 집에서 비데를 보아라~ 나의 비데를! 하듯 침대 바로 옆에 떡~하니 꺼내 놓았다. 이에 관해 많은 이들이 르 꼬르뷔지에의 비데에 대해 논하는데, 하여튼 르 꼬르뷔지에의 비대에 대해 다들 미스터리하게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문에 수납장이 딸려있는데, 이것을 열면 바로 다이닝룸(salle à manger)과 시원하게 연결이 된다.
아래 오른쪽의 사진이 아뜰리에를 나와 거실에서 다이닝룸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다이닝룸은 다시 발코니로 연계되고, 주변의 경관이 시원하게 트여있다.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한 집에서 사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신의 개념이 설계로 실현된 것과 직접 그 개념대로 삶이 살아지는 가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설계한 집에서 사는 것은 하나의 실험이자 모험이 되기도, 기쁨이 되기도 할 것이다.
르 꼬르뷔지에는 이 집으로 1934년 이사를 와서 1965년 지중해에서 죽음을 맞기 전까지 살았다.
1934년 이본느와 다시 결합하며, 결혼을 하고 이 집으로 이사를 온다. 이후 살면서 지속적으로 집을 고치고 바꾸고 했다고 하니, 초기의 설계 개념과 삶이 한 번에 딱 들어맞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2018년 르 꼬르뷔지에의 아파트를 리노베이션하고 열기까지 어느 시기의 아파트를 리노베이션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결국은 르 꼬르뷔지에가 마지막으로 살던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르 꼬르뷔제가 일하던 7구 세브르의 사무소
주소: 35 rue de Sèvres Paris
당시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사진들은 르 꼬르뷔지에의 세브르 사무실에서 가구 작업을 협업하던 샤를롯 페리앙이 썼던 글과 사진으로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로 들어가면, 사진을 보실 수 있는 점도 알려드린다.
Charlotte Perriand – L’atelier de la rue de Sèvres (extrait de : Une vie de création, Éditions Odile Jacob, Paris, 1998)
꼬르뷔제가 죽은 곳, 로크브륀-캅-마르탱 Roquebrune-Cap-Martin
주소:
Sentier Le Corbusier
06190 Roquebrune-Cap-Martin
로크브륀 Roquebrune이라고 짧게도 부르는 이곳은, 르 꼬르뷔지에의 지중해 별장 오두막이 있던 곳이다. 로크브륀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이 지중해에서 접하는 곳 가까이 있는데, 모나코에서 이탈리아 쪽(산레모)으로 가는 바닷가 중간 지점에 자리한다.
이곳도 그가 살던 집과 함께 2016년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건축물이다.
그가 자신의 샤토(성)이라고 불렀지만, 실상 크기는 3.66*3.66미터로 오두막이 더 어울리는 사이즈다.
자신이 발명한 모듈러에 기초하여 디자인되었고, 4개의 직사각형이 4개의 공간을 4개의 기능으로 나눈다. 그리고 오두막의 각 부분들이 코르시카에서 제작되고, 배로 옮겨진다. 그리고 호크 브륀에서 조립되어 완성된다. 르 꼬르뷔지에는 1900년대 초, 배, 기차, 비행기, 자동차에 매료되어, 기술적인 진보와 그에 따른 작고 기능적인 공간에도 관심이 많았다. 배나 비행기로 여행을 하며 최소의 공간 속에 삶을 조직적으로 구성하는 선실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로크브륀은 1952년 친구 부부인 다보비치와 그레이 Jean Badovici et Eileen Gray의 빌라 Villa E-1027를 통해서, 인연을 맺게 되고, 이후 자신의 별장도 이곳에 짓게 된다.
르 꼬르뷔지에는 로크브륀의 별장과 지중해에서 수영을 하면 보내는 휴가를 무척 좋아했다.
그는 평소 수도사들이 자신의 작은 방과 작은 정원을 가진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었다.
1952년 친구인 사진작가 브라사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오두막에서의 나날이 너무 좋아서, 아마도 내 삶은 이곳에서 마감하게 될 것 같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자신의 말은 실제가 된다.
1965년 꼬르뷔제는 이곳 지중해에서 평상시처럼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는다.
르 꼬르뷔지에 별장에 가기 위해서 타야 하는 기차와 예약에 관한 실용정보도 담긴 사이트
http://www.sites-le-corbusier.org/cabanon-de-le-corbusier
르 꼬르뷔지에의 별장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는 아르테의 짧은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_5Kvm3nm32w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 삶 동안 거쳐간 집, 설계한 집을 통해, 그가 그린 이상적인 집과 삶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고 싶었다. 건축가보다 화가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그는 그림 그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지중해의 작은 오두막에서 수영을 하며 행복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나는 어디에서 죽으면 좋을까... 내 집은 나의 모습을 담고 있나... 먼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건축은 삶을 담는 공간이라고 하는데,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 어떤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