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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은둔자 Dec 17. 2021

스위스에 남아있는 르 꼬르뷔지에의 자취

르 꼬르뷔제의 고향, 레만 호수, 제네바, 취리히에 지은 건축들


개인적으로 로잔을 조금 더 알게 되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던 스위스의 지명이 실제적으로 땅이름과 연결되었다. 그러면서, 아~ 이게 거기였어! 하는 곳들이 생겼다.

특히, 로잔이 속한 보 Vaud 주(州, canton)는 르 꼬르뷔제와 깊게 관련된 지역이었다!


스위스의 지폐에 새겨진 르 꼬르뷔지에

르 꼬르뷔지에는 스위스에서 태어나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으며, 프랑스에서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스위스에는 그의 건축물을 국가기념물로 지정하여 잘 보존 관리하고 있는 것들이 여럿 있다.

그리고, 이렇게 르 꼬르뷔지에를 스위스의 지폐에 새겨 넣으며, 그를 기리고 있다.

내가 스위스에서 르 꼬르뷔지에의 건물을 찾을 때, 주소를 보면서도 어떤 건물인지 몰라,

지나가는 스위스 사람 여럿에게, 지폐를 보여주며 이 건축가의 건물이 이 근처 어디에 있는가? 물었는데,

모두가 지폐 속의 르 꼬르뷔지에가 누구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당연히 건물 찾는데 일생에 도움이 안 되었던 슬픈 기억이 있다.


스위스 10프랑의 지폐 앞면은 꼬르뷔제의 모습이, 뒷면은 인도 찬디가르의 대법원 건물과 모듈러를 모티브로한 디자인. 오른쪽의 건물이 인도 찬디가르의 대법원 건물이다. (위키피디아)





꼬르뷔제가 태어난 곳, 하얀 집

1887년 Jura Suisse, La Chaux-de-Fonds


1912년 르 꼬르뷔지에가 자신의 건축설계 사무소를 열고 처음으로 설계해서 지은 집이다. 이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따서 '잔느레-페레의 집'이라고도 하고, 또는 '하얀 집'으로도 부른다.  

이 저택을 지으면서 청교도적 프로테스탄트인 잔느레 가족이 너무 큰 빚을 지게 되어, 1919년 이 집을 팔고 떠나게 된다. 이후 여러 사람들의 소유를 거쳐, 2000년에 하얀 집 협회가 만들어지고, 집을 사서 소유하게 된다. 이 주택은 그사이 1979년 뉴샤텔 주 (Canton de Neuchâtel)에서 기념 건축물로 지정하고, 1994년 스위스 연방정부에서 국가기념물로 지정한다.

이 주택을 통해 지역의 아르누보('전나무 양식'이라 부름)와 결별을 하고 신고전주의적 성격을 드러낸다고 보는데, 파리에서 오귀스트 페레와 베를린에서 피터 베렌스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콘크리트와 철과 유리가 근대건축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목격한 경험 덕분이리라.

이 집은 외벽과 내부의 50*60센티미터의 4개 기둥만이 구조를 지탱하고, 나머지의 벽들은 경량의 칸막이벽으로 되어 있다. 이 집의 공간은 고대의 이론, 고대의 건축에서 추구한 비율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적용했다. 그가 그리스의 아테네와 이탈리아의 로마와 다른 도시들, 이스탄불 등을 여행하며 고대의 건축미에 영향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주택을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처럼, 음악을 하는 어머니에게 바친 사랑의 신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가 지대가 높은 이 주택을 오를 때 파르테논의 구불구불한 길을 비슷하게 그려놓은 스케치, 비례에 충실한 파사드와, 피아노가 있는 살롱 공간이 중앙에 자리하고, 성당의 제단 뒤 반원형 후진 압시드(abside)와 유사한 공간도 디자인했기 때문에 그런 해석을 하는 것 같다.


1912년 르 꼬르뷔제가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열고 부모님을 위해 설계한 집으로 그의 고향에 지어진 것 (위키피디아)

      

주택의 중심공간인 중앙살롱(거실)과 윗층의 스튜디오 모습, 이곳에서 르 꼬르뷔지에가 작업을 했을 것 같다. (위키피디아)


방문을 위해서 알아야 할 정보들이 있는 하얀 집의 홈페이지

https://maisonblanche.ch/






르 꼬르뷔지에가 어머니에게 지어준 집, 레만 호수의 작은 집

Route de Lavaux, 21

1802 Corseaux, Suisse


이 집은 레만 호수를 따라 길게 배치되어 있는 집이다. 1923년 르 꼬르뷔지에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지은 집인데, 아버지는 이곳에서 1년가량 사시다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100살이 넘으실 때까지 이곳에서 사셨다. 같은 해에 파리에는 음악가인 그의 형 알베르를 위한 집 라로슈-잔느레도 지어졌다. 이 건물은 현재 르 꼬르뷔지에 재단으로 쓰이는 건물로, 라로슈는 독신의 부유한 은행가이고 미술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사람으로,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할 수 있는 넓은 갤러리가 중심인 주택이고, 잔느레의 빌라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이 두 개의 대조적인 주택이 같은 필지에 지어져서 늘 라로슈-잔느레 빌라로 불린다.

레만 호수의 이 집은 60m2의 규모로 크기가 작아, '레만 호수의 작은 집'으로 불린다. 무엇보다 14미터 길이의 가로로 긴 창이 돋보인다. 레만호의 작은 집은 먼저 설계도를 그리고 나서, 그 집을 올릴 땅을 나중에 찾았다고 한다. 30*12미터의 가로로 길쭉한 필지를 찾아 지금과 같은 모습의 건축이 지어진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도로 쪽(북쪽)의 출입문으로 들어와서 왼쪽으로는 거실, 오른쪽으로는 부엌으로 진입할 수 있다. 호수 쪽(남쪽)의 입면에서는 왼쪽으로 창문이 없는 공간은 다용도실, 창고인데, 부엌과 욕실로 연결이 된다. 창문 쪽으로 세면대가, 그 맞은편에 욕조의 작은 가림막 외에는 옆으로 침실, 그리고 다시 거실과 손님방이 다시 호수 쪽에서 창문이 없는 공간인데, 모두 일렬로 시원하게 연결될 수 있다. 침실과 거실 사이에만 커튼을 칠 수도 있고 열어 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손님방에서 밖으로 나가면, 야외 거실이라 할 수 있는 정원으로 연결된다. 이 공간은 위의 지붕이 캔틸레버처럼 확장되어, 처마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정원의 한쪽에는 벽을 세우고, 그 사이에 창문과 같은 구멍을 뚫고 콘크리트 테이블도 만들어 놓았다.

물론 옥상의 정원도 조성해 놓았고, 후일 르 꼬르뷔지에 부부가 머물 수 있는 이층의 방도 확장해 놓는다. 이방은 확장할 때 과일 저장고라고 신고를 해 놓았지만, 실상은 손님방의 기능을 한다.


  

왼/ 손님방을 지나 밖으로 연결된 야외 거실, 하년에 긴 의자를 놓았다. 오/ 벽에 창문을 뚫고 콘크리트 테이블 만들었다. (위키)


북향의 도로면에서 바라본 레만호의 작은 집 전경, 오른쪽의 2층 박스가 증축한 르 꼬르뷔지에 부부방 (위키피디아)


참고:

더 많은 아름다운 사진과, 실내 사진, 그리고 르 꼬르뷔지에의 부모님과 그의 모습을 보고 싶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사이트. 이곳에서 운영하는 인스타그램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공간들의 모습, 행사 이야기를 잘 담아내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아쉬운 점은 방문을 원할 경우 단체로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


https://www.villalelac.ch/


참고로, 레만호의 작은 집이 있는 라보(Lavaux) 마을은 스위스의 포도밭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동네다.

프랑스 사람들이 스위스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그나마 스위스 여행지 중에서는 이곳이 아름답다고 추천하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하여, 레만호의 르 꼬르뷔지에의 어머니 집을 방문한다면, 스위스의 포도밭을 꼭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곁다리로 덧붙여 놓는다.







클라르테 집합주거 Immeuble Clarté - 제네바

Rue Saint-Laurent 2 - 4, 1207 Genève, Suisse


제네바에 있는 유일한 르 꼬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가 설계한 건축물.

클라르테 Clarté 는 빛, 맑음, 투명함, 광택, 명료함 등을 뜻하는 불어 단어다.

이 건물은 1930년에 지어진 건물인데, 철물 사업자의 의뢰로 지어지게 된다.

당시 건식공법으로 파리의 구세군 건물과 시테 유니베르시테의 스위스관 등 여러 건물을 지었었다.

건식공법, 조립식 공법이 결합되어, 철골 구조물로 지어지고, 르 꼬르뷔지에의 자유로운 평면과 옥상정원, 자유로운 입면과 가로로 긴 창, 브리즈-솔레이유 등이 실현된 작품이다.

자유로운 평면 덕분에, 원룸에서 부터 듀플렉스의 9개의 공간(피에스, 방과는 또 조금 다른 개념)을 가진 주거가 한 건물에 들어가면서, 노동자부터 전문직의 다양한 사회계층이 모여서 살 수 있는 집합주거로 계획된다.

철거의 위험을 뛰어넘어, 2016년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왼/ 출입구가 있는 북쪽의 입면,  오/ 남쪽의 입면. 발코니가 남북측에 모두 있고, 전면이 유리창이며, 남측에 브리즈-솔레이유


왼/ 리노베이션 이전의 모습, 가운데/통로는 빛이 관통할 수 있게 유리로 됨, 오/ 전경에서 옥상 정원을 볼 수 있다. (위키피디아)





르 꼬르뷔지에 센터 - 취리히

Höschgasse 8, 8008 Zürich, Suisse


취리히에 르 꼬르뷔지에의 사후 작품이 건설되어 있다.

헤이디 웨버 Heidi Weber라는 갤러리 운영자이자 예술품 컬렉션을 하는 이가 르 꼬르뷔지에의 가구들, 그림과 판화 작품들도 판매를 하려는 사업계획을 가지고 르 꼬르뷔지에에게 의뢰를 한다.

1960년에 의뢰를 하고 작업이 시작될 때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계획하다, 이후 철골구조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1964년에 공사가 시작는데, 건축가가 1965년에 죽음을 맞으며, 공사가 중단된다.  꼬르뷔지에의 사후 공사가 다시 재개되고, 1967년에 건축이 완공되어 개관한다. 개관 당시의 이름은 헤이디 웨버 Heidi Weber 박물관이었다. 그런데, 건물이 올려진 땅의 소유가 취리히 시여서, 웨버와 시가 공동운영을 하고 있다가, 웨버가 소유하던 공간이 50년이 지나고, 시의 소유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지금의  꼬르뷔지에 센터로 이름이 바뀌고, 취리히 시가 완벽한 소유권을 가지고 운영한다.


이 건물은 두 개의 정사각형(12*12미터) 지붕이 자유롭게 부유하는 형태가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지붕도 미리 만들어져서, 현장에서 용접하며 조립이 되었고, 건물의 공간도 2.26*2.26미터 크기의 모듈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찬가지로 미리 만들어져 현장에서 조립된 건식-조립공법으로 지어졌다.

입면의 에나멜 패널은 2.26*1.13미터의 크기로, 두 개가 하나의 면을 채우고 있다.

건물은 총 2층이고, 단층과 복층의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검은 테두리에 다양한 색상의 에나멜 패널이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과 같은 느낌을 준다. 내부의 콘크리트 계단과 나무로 된 내장재가 조화를 이루고, 모듈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다양한 공간이 만들어져 건축적 체험이 가능한 건물이다.


   

왼/ 르 꼬르뷔제 센터의 전경, 에나멜 판넬이 열린 공간이 많이 보인다. 오/ 측면의 판넬이 닫힌 모습. 건물에서 떠있는 지붕 모습


왼/ 1961년 당시의 건축주와 르 꼬르뷔지에 오/ 건축주 헤이디 웨버 Heidi Weber (위키피디아)



르 꼬르뷔지에 센터는 봄부터 가을까지만 개관을 한다.

더 많은 아름다운 사진과 실내의 다양한 공간을 보려면 아래의 사이트를 참고하시길.

https://www.archdaily.com/918066/le-corbusiers-final-building-reopens-in-zurich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한 르 꼬르뷔제의 17개 작품이 있다. '르 꼬르뷔제의 건축 산책'이라는 타이틀도 붙여놨다. 아래의 사이트에서 17개의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https://fr.wikipedia.org/wiki/L%27%C5%93uvre_architecturale_de_Le_Corbusier



유네스코에서 선별한 17개의 르 꼬르뷔지에 작품과 그의 생에 관련 자료(사진, 도면, 스케치 등)가 풍부한 사이트. 특히 르 꼬르뷔지에의 스케치들은 건축개념을 구상하는 단계를 엿볼 수 있게 해 줘서 흥미롭다.

레만 호수의 작은 집에서는 어머니를 위해, 작은 공간들도 세심하게 구상하여 스케치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고, 그가 직접 디자인한 초기의 가구도 어머니의 집 사진에서 볼 수 있다.


나중에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미스 반 데르 로에, 월터 그로피우스, 르 꼬르뷔지에 등 당대의 쟁쟁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주택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Weißenhofsiedlung 주택단지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르 꼬르뷔지에가 이곳에 설계한 두 개 주택도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https://lecorbusier-worldheritage.org/la-s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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