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후각의 시각화에 성공한 영화
언젠가 냄새도 전달하는 TV가 나온다지만, 정작 그런 TV를 방안에 틀어놓으면 과연 어떨까?
잡다한 온갖 냄새가 방안에 가득 들어차서 추운 한겨울에도 환기를 하느라 창문을 활짝 열어놓야만 하는 건 아닐까?
광고에서도 향수 광고가 냄새나는 TV를 제일 반길 듯하다. 후각을 시각으로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을 테니.
그런데, 후각을 글로 써내는 데 성공한 소설이 있고, 그 후각을 시각화한 영화가 있다.
눈으로 보는 향, 영화 '향수'
이 "향수"라는 영화는 2006에 개봉한 독일 감독 톰 티쿼 (Tom Tykwer 티크버?)의 작품이다. 독일 작가의 소설을 영화한 것인데, 배경은 18세기의 프랑스다.
나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18세기 파리의 시장, 거리, 그리고 주인공 장-밥티스트 그루누이(벤 위쇼 Ben Whishaw)가 태어난 시장의 길, 그리고 한물간 향수 업자(더스틴 호프만)의 수습생으로 들어간 향수 가게이자 향수 업자 발디니의 집이 있는 다리 위의 건물을 다시 보기 위해 다시 찾았다. (불어판은 유튜브에서 Le Parfum으로 찾으면 전편을 그냥 볼 수 있다.)
이 모습이 영화에서는 정교한 모형으로 만들어지고,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재현된다.
참고: 모형을 만들고 촬영하는 과정의 사진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이트 (https://www.behance.net/gallery/11355515/Perfume-the-story-of-a-murderer-residential-bridge)
이렇게 파리에 있던 다리는 모두 씨떼섬을 좌안과 우안으로 연결하는 것이고, 모두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다리였다. 그러다 앙리 4세가 왕세자를 얻은 기념으로 만든 왕세자 광장 (Place Dauphin)과 최초의 건물 없는 돌다리, 퐁 네프(Pont Neuf: 새로운 다리란 뜻)가 만들어진다.
맨 아래쪽의 퐁네프를 제외한 다리들 위에는 모두 빨간 지붕의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가 있다. 왕세자 광장 뒤로는 '씨떼궁'이 보이고, 씨떼섬의 위로는 노트르담 성당이 보인다. 노트르담 성당의 앞에는 지금과 같은 넓은 광장은 없고, 주변을 둘러싼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오스만 남작이 파리 정비하며 넓은 광장을 조성한다.
그 외에 영화 초반에 주인공 그르누이(개구리란 뜻)가 태어날 때, 생선장수였던 그 엄마가 아기를 낳아 생선 찌꺼기 더미에 방치하는데, 당시의 파리 시장 모습과 블록이 깔리지 않은 더러운 길... 등을 잘 볼 수 있다.
향수에 대한 집념이 그르누이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드는데, 어쩌면 천재들이란 앞뒤 재지 않고 앞으로만 무한 질주하는 그르누이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적당한 재능과 그 재능을 팔 수 있는 발디니 같은 사람이 되어야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거겠지? 어쩌면 모차르트가 오래 살지 못한 것도 음악만 만들 줄 알았지, 균형 잡힌 식사와 충분한 휴식, 적당한 취침, 규칙적 운동을 하면서 사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은? 살지 못한?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예전에 보고 기억에 남지 않았던 후반부의 장면은 다시 보면서 저런 '깨는' 장면이 있었구나... 하게 만들었다. 일면, 저런 황당한? 향수는 도. 대. 체. 어떤 향일지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했고...
베르사유궁과 향수
루이 14세의 정부, 마담 몽테스팡이 루이 14세를 향수로 해치려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물론 성공하지 못해서 루이 14세는 77살까지(생일 4일 전에 죽었지만) 당대로써는 대단한 장수를 누렸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궁 오랑주리는 줄 아르두앙 망사르가 설계한 유명한 건물인데, 오랑주리(Orangerie)가 바로 향을 위해 오렌지 나무, 레몬 나무 수백 개를 키우는 건물이다. 당시에는 오렌지와 레몬이 향기 때문에 키우는 관상용 식물이었고, 또 유명한 아프로디지악(최음제, 정력 촉진제, '아프로디테'에서 유래함)이었다.
어찌 되었건 강렬한 이미지가 남는 영화로, 향기를 시각화하는데 많은 성공을 했다고 본다.
뭐랄까 내용 자체보다는 시각적인 부분, 그리고 역사적 측면에서는 흠잡을 데가 없는 영화.
요즘엔 영화를 역사영화 위주로 보게 되는데, 때로 역사적인 부분을 무리하게 엮거나, 고증이 잘못되고 허술한 부분이 보이면 영화 자체에 몰입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근래에 본 영화 중에 Les Jardins du roi(왕의 정원)이 있는데, 영어 원제는 A Little Chaos(작은 카오스) 한국에서는 '블루밍 러브'라는 제목이다. 말 그대로 제목이 나라별로 혼돈. 그 자체로구나! 베르사유궁의 정원 중 가장 화려한 로카이유 보스케 (Bosquet de Rocailles) 혹은 무도장 (Salle de Bal)으로 불리는 정원 부분을 설계하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물론 루이 14세의 정원사 르 노트르가 설계한 곳인데, 영화에서는 게이트 윈슬렛의 작품으로... 역사적 고증 부분도 배경도 여러 가지로 허술해서 대실망! 특히 루이 14세가 아내를 잃는 1683년에, 르 노트르는 70세 할아버지라는!! 그냥 허구의 소설처럼 영화를 보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요즘엔 내가 영화를 사실에 근거한 비평적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기본적 사실조차 무시한 이 영화는 몰입도 제로였다.ㅠㅠ
영화 '향수'의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