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원용 Oct 11. 2015

전성기에 '선한 영향력'으로 살아가기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당시 느꼈거나 받았던 특별한 영향 때문이리라. 이런 일은 불현 듯 스스로 느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전달된다.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끼칠 수도 있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남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면 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나는 이것을 ‘선한 영향력’이라 부른다.     


새벽잠을 설치며 박찬호의 경기를 봤고, 그의 승패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이 달라졌던 때가 있었다. 박세리의 물 속 맨발 샷을 기억하며,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의 어퍼컷 세리머니도 잊을 수 없다. 더 오랜 세월을 거슬러 가면 홍수환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도 있었고, 이미자의 동백꽃 아가씨도 떠오른다. 이 기억들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동 시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인사들 덕분이다.     


자신의 전성기에 다른 이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인생의 전성기는 언제 올까? 10대 때도 자기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사람이 있을까? 김연아와 같은 천재나 아이돌 가수가 그럴 수 있다. 20대 때 전성기를 맞이하는 이는 대부분의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이며, 30대 때는 영업직에 종사하는 이가 전성기를 맞이한다. 인생의 중년이 되는 40대 때가 되어서야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자격사의 활동이 왕성해지며 전성기도 시작된다. 그런데 유독 건축사는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전성기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고 훈련받아야 할 기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그 시기가 되어서야 친구들이 집을 짓기 시작하기에 소위 인맥에 의한 수주라인이  그때 형성되는 것이다.    

 

건축을 전공하던 학부시절부터  세뇌당하듯 들었던 말이 “건축사의 전성기는 50대부터다.”라는 것이었다. 그럴  듯했다. 남들 은퇴하는 시기에 건축사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스스로 그만두기 전에는 은퇴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보통은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렇게 20대 때부터 다음 10년을 준비하며 50대가 되기를 기다려왔다. 30대 때 건축사로 활동하기 위해 20대 때는 건축설계라는 방향을 설정했고, 40대 때 실력 있는 건축사로 인정받기 위해 30대 때는 야근과 철야를 불사하며 치열하게 노력했다. 한편 50대 때의 전성기를 기대하며 40대 때 인맥과 관계 형성에 노력하던 중 깨달은 바가 있어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게 되었다.      


좋은 건축주 만나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모든 건축사의 소원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건축주를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것이고 로또와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그런 건축주가 있다 할지라도 언감생심 내 차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좋은 건축주 만나기’를 소원하는 대신 ‘좋은 건축주 만들기’를 소원하게 되었다.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올해로 만  6년째 <조아저씨의 건축창의체험>으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어린이를 가르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도 많지만, 나름 준비하며 노력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때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목수’라고 적었다가 아버지께서 “우리 원용이가 ‘건축사’라는 단어를 몰라서 그랬겠지.”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건축사가 소원이 되었다. 중학교 때는 맹자의 군자삼락을 배우며 나도 영재를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며 어릴 때 품었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첫 시험에 합격하여 건축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가 1997년 IMF 때였으니 기쁨과 더불어 고난도 함께 왔다.     


중학교 때 품었던 가르치는 소원은 건축사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되었다. 건축사사무소 개업을 했지만, 개점휴업과 다를 바 없었기에 1998년부터 모 건축사수험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첫 시험에서 합격한 새파랗게 젊은 강사와 한참 선배님들이신 노련한 수험생의 미묘한 관계였지만, 최선을 다해 가르쳤고 4년 동안 강사로서의 성과도 비교적 잘 만들었었다. 이후 대학의 겸임교수로 자리를 옮겨 7년 동안 대학생들을 지도했었고, 2010년 이후 이제는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내가 어릴 때 꿈꾸었던 ‘건축사’와 ‘가르치는 사람’ 이 두 가지 소원을 모두 이룬 셈이다.     






건축설계를 하는 입장에서 건축사의 전성기는 50대 중반이 되겠지만, 건축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전성기는 때가 따로 없다. 어쩌면 지금이 내게는 전성기이리라. 그래서 나의 전성기 때 어린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많이 끼치려 한다. 그 어린이들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소양 높은 건축주들이 될 것이고, 그들이 건축주가 될 시기인 30년, 40년 후가 되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건축문화 선진국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나는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외롭게 감나무를 심듯이 홀로 하고 있지만, ‘좋은 건축주 만들기’를 함께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따먹을 감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건축주가 많아지면 좋은 건축은 저절로 시작되며, 그 건축안에서 우리 대중의 행복한 삶은 보장되지 않겠는가?      


이제 새해가 되면 그렇게 기다렸던 50이 된다. 그러나 이제는 내 인생의 전성기에 설계 수주를 위해 뛰기보다는 더 많은 감나무를 심고, 더 많은 꿈나무를 가르치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조원용 건축사는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좋은 건축주 만들기’는 선한 영향력이 되어 계속 살아 있지 않을까?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모두가 알듯이
‘선한 영향력’은 그렇게 영생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전성기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한 번쯤 꿈꾸고 실천해볼 만 하다.




 

조아저씨 건축창의체험 홈페이지

http://archijoe.com/








조아저씨 건축창의체험 사진 보기 










작가의 이전글 인생은 '누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