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졌던 느티나무 고사목 판재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했다
간단한 스케치 한 장으로 시작한 보면대는 어젯밤 오일 작업을 끝으로 드디어 완성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좋은 보면대 하나를 꼭 만들고 싶었는데 어느 날 보호수 느티나무 고사목 판재를 인연처럼 만났다. 이미 세 동강으로 조각나버린 볼품없는 판재였기에 그냥 땔감으로 써도 무방할 정도였지만 내 눈에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였기에 작업을 시작했다.
판재는 길이 방향이 아닌 길이의 직각 방향, 즉 떡국 썰듯 슬라이스 되어 있었기에 무늬는 소위 용목이라 하여 황홀할 듯 예뻤다. 상판에만 나이테가 120개 이상이었으니 그 세월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매우 경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판재가 너무 얇아 기계로 대패질을 했다간 바로 깨질 상황이었기에 에폭시로 이어 붙인 후 일일이 손 사포질을 하며 섬세하게 다듬었다. 보호수 시절 치료받았을 법한 흔적인 우레탄 폼을 제거했고 부식해 힘이 없는 부분도 꽤나 털어냈다.
자세히 보면 크게 세 조각으로 이어 붙인 자국이 보인다. 원래 한쪽으로 삐죽 튀어 나간 부분을 보면대 형태를 고려해 일부 잘라내고 그 조각을 이용해 강물처럼 보이는 레진 작업을 했다. 기계 대패를 사용할 수 없어 완벽한 평활도를 맞출 수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땀 흘려 만든 수작업의 맛은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참고로, 길이의 직각 방향의 샌딩은 무지무지 힘들다. 그걸 손으로 한 달 가까이했으니 사실 고생 좀 했다.
레진은 진한 파란색을 먼저 붓고 파도처럼 보이도록 흰색 안료를 넣어 추가로 작업했다. 그렇게 굳힌 뒤 투명 에폭시로 마무리했는데, 수평이 잘 안 맞는 바람에 이 역시 샌딩 하느라 고생 좀 했다.
샌딩 하며 느꼈던 특이한 점은 이 보호수 느티나무의 독특한 향기였다. 일반적으로 느티나무는 샌딩 할 때 약간 응가 냄새 비슷하게 난다. 보통은 그렇다. 그런데 이 고사목 느티나무는 꽤 괜찮은 향기가 아주 진하게 났고 지금도 맡으면 난다. 게다가 색깔은 보시다시피 매우 진하다. 일반의 느티나무는 약간 연한 노란색에 가깝고 고사목이라 할지라도 조금 더 진한 수준인데 이 보호수 느티나무 고사목은 참죽나무에 가까울 정도로 붉은빛을 띤다. 작업 중 물을 발라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너무 진해서 이게 느티나무가 맞는가 할 정도였다.
건축 설계할 때 초기 개념 스케치는 매우 간단하지만 실제 구현을 하기 위해서는 디테일을 꽤 필요로 하고 그걸 만들 수 있어야 된다. 실제 지어지지 못하면 말 그대로 스케치에 불과하다. 이는 규모만 작을 뿐 목공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동안 미뤄뒀던 작업을 다시 시작할 즈음에는 해결해야 될 디테일을 고민했다. 그중 가장 큰 고민은 보면대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할지 아니면 고정시킬 지에 대한 것이었다. 작업성 면에서는 고정시키는 것이 쉽기는 하지만 사용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을 것 같아 조절 가능한 방식을 택했다. 고민하며 스케치는 했지만, 실제로 만들면서 방식이 달라졌다. 상판의 일부 크랙은 레진을 채우지 않고 일부러 남겼는데, 나비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비는 월넛이다.
상판의 보강재 역할을 하며 구조의 안정성을 구현해 줄 뒷면의 프레임은 다른 부재에 비해 좀 커 보이긴 하지만, 보면대의 기능과 디자인 그리고 안정성을 모두 지원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 무게 중심을 앞쪽으로 쏠리게 한 이유는 비대칭 다리 디자인 때문이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목에 해당하는 수직 부재에 50mm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붉은빛이 나는 목재인 파덕을 핀으로 끼워 고정할 수 있게 했다. 측면에서 보면 수직 부재는 매우 가늘게 보이지만 하중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흑단 계열의 단단한 나무다.
보면대 디자인은 유명한 가구 제작자인 조지 나까시마의 디자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용된 재료는 느티나무 고사목, 흑단, 칼리만탄 에보니, 월넛, 이름 모를 하드우드 등이며 에폭시 레진으로 강물 효과를 냈다.
자연의 솜씨를 최대한 살리고 인위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을 미력하게나마 가미했다. 기계를 다루는 동안 자칫 위험한 상황도 있을 뻔했다. 늘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신경 쓰지만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난다. 문제없이 잘 끝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로써 하고 싶은 일 또 하나를 마무리했다. 이제 잘 쓰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