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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May 15. 2016

여고생과의 진로 멘토링을 마치고

꿈을 꾸는 모든 학생들이 들으면 좋을 이야기

약 한 달 전부터 문자로 멘토링을 요청하는 분이 계셨다. 여고 1학년인 딸과 한 번만이라도 만나서 멘토링을 해달라고 하시는 아빠였다. 그간 여러 차례 자식을 위해 멘토링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여러 이유로 개인 멘토링은 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사양하거나 거절했었다. 그러면 대부분 그 선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이 아빠는 그럼에도 계속 문자로, 전화로, 이메일로 딸을 위해 멘토링을 해주십사 매우 정중하게 반복 요청해왔다. 그동안 대부분 엄마가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자식을 위해 요청하는 것이 좀 특별하게 보여 어렵사리 일요일인 오늘 시간을 내 만나게 되었다. 긴 대화를 모두 텍스트로 남길 수는 없지만, 오늘의 만남을 오래 기억하고자 몇 자 적어본다.



강남에서부터 한달음에 달려온 아빠와 엄마 그리고 여고생인 OO를 만나 차 한잔을 나누며 얘기를 시작하며 질문을 던졌다. 


"OO는 사는 이유가 뭘까? 왜 살지?"

"..."


당연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건축사가 되고 싶어 조언을 구하러 온 학생에게 어쩌면 과격한 질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고, 나조차 그 질문에 순간순간 답변을 하며 살고 있기에 스스로 '자립'을 해야 할 인격체로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맘으로 물었던 것이다.


"지금 대답하지 않아도 돼. 선생님이 질문하는 것은 바로 'WHY'에 대한 것이야. 목표나 방법, 즉 'WHAT'이나 'HOW'가 아닌 삶의 목적에 대한 질문이고,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할 수 있으면 네 인생의 낭비가 없어질 거야. 한 가지 힌트를 준다면 너의 재능에서 그 이유를 찾으면 된단다."


원리를 알면 응용이 쉬워진다. 살면서 하나씩 하나씩, case by case, step by step으로  배우다 보면, 늙어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못 배운다. 그러나 원리를 깨달으면 어린아이도 인생을 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생이 별건가? 사람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도 사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삶의 원리, 즉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하고 사람이 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워야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순간을 빨리 판단하고 그때 자신을 스스로 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어린이와 어른이 음식을 먹는 방법은 다를지라도 먹는 이유는 같다. 살기 위해서다. 그것이 목적이다. 젓가락질을 더 잘하고,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면 더 편리하겠지만, 익숙하지 않더라도 '먹는 것' 즉 먹을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소 어려운 질문으로 시작했으나 OO와 비교적 편안히 얘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2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얘기를 나누는 도중 아이보다도 더 반짝거리는 눈으로 경청하셨던 엄마는 따라오길 잘했다며 고마워하셨고, 시종일관 하나라도 놓칠까 봐 계속 메모를 하셨던 아빠도 의미 있는 만남에 무척 흐뭇해하셨다.  


직업 멘토링을 '목표'로 만났지만, 사실은 인생 잘 사는 법인 '목적'에 대한 깨달음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런 것을 중년이 되어서야 깨닫고 실천하고 있지만, 어린 학생 시절부터 깨달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오늘 OO에게 진짜 '산교육'의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시간이 흘러 OO가 원하던 건축의 길을 걷고 있다면 오늘의 만남이 꽤나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되리라 믿는다. 혹여 건축의 길을 걷지 않는다 하더라도 타고난 재능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오늘 대답하지 못했던 '사는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될 날이 올 것이고, 미래 인생이 더 잘 되고 형통하리라 믿는다.  


OO의 엄마 아빠는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이자 리더셨는데, 현 교육 시스템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길이 아닌 아이에게 맞는 길을 찾아 주고자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자녀에게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틀에 가두려 하기보다는 아이의 입장을 고려해주고, 꿈을 찾도록 매우 구체적인 노력과 실천을 보여주신 점이다. 이런 부모님을 둔 자녀는 복 있는 이들이다. OO의 부모님과 긴 대화는 못했지만, 겸손한 모습과 경청하는 자세 그리고 전문가를 예우해 주시는 마음에 나도 배운 점이 많은 시간이었다. 먼저 내미신 손 잡아드림으로 서로의 인연의 끈이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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