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원용 Nov 13. 2018

건축물의 내진설계에 대한 생각

건축의 본질을 생각하다.

참 내 어이가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자는 건가? 비본질로 본질을 호도하면 안 된다. 건축물의 내진구조 설계를 건축사와 구조기술사 간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 보는 시각이라니. 


건축물이 지진에 버티는 내진구조는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내진구조를 가져야 하는 본질적 관점이 없거나 매우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나 건축사지만, 지금부터는 전문자격사가 아닌 자연인이자 건축 사용자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한다. 내진구조를 해야 하는 본질적 이유가 뭔가? 지진으로부터 ‘건축물’을 보호하자는 건가, 건축물 안의 ‘사람’을 보호하자는 건가? 둘 다라고? 본질을 모르는 대답이다. 중요한 것을 해결하면 덜 중요한 것은 저절로 따라온다. 건축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기본이 안 된 답변이다. 


태고적부터 건축의 존재 목적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 건축 자체의 안위가 아니다. 다만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물도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어야 하는 것이다. 본질을 놓치고 곁가지만 얘기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다. 모르고 그랬다면 제대로 인식하고 개선하면 되겠지만, 알고도 그랬다면 본질을 호도하는 매우 나쁜 짓이다.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와 6.25 이후 경제 성장 과정에서 건축의 본질인 사람을 제외한 채 문자 그대로 자재를 세우고() 쌓는() 행위를 해왔는데, 당시의 인식으로는 별문제가 없는 듯해서 그게 건축의 다 인양 여겨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진이 거의 없었던 것도 나라 전체에 자재를 세우고 쌓는 행위를 가속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런 건축물을 만들어 온지 어언 40~50년이 되었고, 본질인 사람이 빠진 그 건축물들이 이제 한계 수명에 도달하며 사람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대신 위험에 빠뜨리거나 심지어는 그 안의 사람을 죽이고 있다. 불행히도 그런 나쁜 건축들이 본색을 드러낼 일이 앞으로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건축법 제1조(목적)는 이렇게 말한다.  
 “이 법은 건축물의 대지·구조·설비 기준 및 용도 등을 정하여 건축물의 안전·기능·환경 및 미관을 향상시킴으로써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우리의 건축법은 제1조에 쓰인 대로 ‘공공복리의 증진’이 목적이다. 즉 개인이 아닌, 공공이 우선이다. 공공의 선을 추구할 때 개인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진짜 그럴까? 경제성장의 시기에야 그랬다손 치더라도 21세기를 사는 지금도 예전 마인드로 건축을 생각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있다. 기능, 구조, 미에만 집중하고 있는 우리나라 건축법은 아직도 건축의 본질인 ‘사람’ 자체가 아닌 껍데기인 하드웨어에 집중하고 있는 경향이 농후하다. 


만약 건축법이 진짜 본질적으로 사람중심이었다면 건축법에 맞춰지었을 때 제일 잘 지은 집이라는 의미일 텐데,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 건축법에 딱 맞게 지었다는 말은 위법하지 않은 상태 중 제일 나쁜 집이다 라는 의미다. 시험으로 치면 60점 맞고 합격했다는 의미인데 59점 맞았으면 떨어질 시험에 아슬아슬하게 60점  맞아서 합격한 것이라 보면 된다. 60점 보다는 70점, 70점 보다는 80점이 낫고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것이다. 사람을 위한 건축이라면 그래야 한다. 


그런데 우리 건축법 기준으로는 법에 맞췄다는 의미가 60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건축법에 맞게 지었다는 게 일반의 인식상 건축의 최선의 기준인양 착각한다. 그래서 국민들이 건축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주는 대로 공급받아 사용만 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하드웨어 중심의 건축이 맞을 수 있지만, 선진국의 대열에 들기 위해서는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건축법에서 말하는 공공이 행복할 때 그 안의 개인이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한 개인들이 모여서 공공이 행복해질 수 있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의 건축법도 사람 중심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왜 건축의 본질인 사람 대신 껍데기인 하드웨어 중심으로 사고를 하게 되었을까? 나는 의도적으로 안 가르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누가?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영향력 있는 집단들이 그랬으리라 본다. 그래야 자신들의 유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을 테니까. 


국민이 똑똑해지고 많이 알면 분명 그 분야는 발전한다. '의'가 그랬고, '식'이 그랬다. 대신 그 분야 전문가나 종사자들은 머리 아파진다. 그러나 그러면서 발전한다. 그런데 '주'는 어떤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건축에는 대동소이 거의 문외한이다. 내가 9년째 같은 주제인 '생활 건축' 강의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국민 대다수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거의 모르기 때문이다. 매번 강의 후 박수를 받아 기쁘지만, 사실 맘 속으론 정말 슬프다. 살아온 인생의 1/5에 가깝고, 건축사가 된 21년 중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하며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이 건축에 제대로 눈 뜨게 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로 만 9년 동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창의 건축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진정한 이유는 좋은 건축가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국민 각자가 좋은 건축을 향유케 하고 또 본질적으로 건축을 문화로 키우는 시발점인 좋은 건축주를 키우기 위함이다. 여타 건축단체들에서 하는 어린이 건축교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그 일을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라 명하고 생각한 사람이 먼저 시작했으며, 아직 외롭게 가고 있다.(어린이 건축교육 분야는 아직 산업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환경이기에 소명의식이 없으면 할 수 없으며, 나도 전업으로 어린이 교육만을 하지는 않는다.)


내진구조 얘기하다 많이 흘렀다. 다시 돌아와 말하면, 본질적으로 함량 미달인 그 건축들을 알량한 '건축법'의 기준대로 지어졌는가 만을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그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한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건축을 하려면 ‘목적’부터 분명해야 한다. 현상 치료가 아닌 원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똥파리가 많으면 똥파리 잡는 기술자와 장비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똥을 치워야 한다. 좋은 건축을 위해서는 하드웨어의 기준을 단속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 예쁘고 튼튼한 건축이 아니라 사람이 행복한 건축이 필요하다. 그러면 저절로 아름답고 안전하게 짓게 된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려면 건축행위의 실질적 갑이자 최고의 투자자인 국민이 스스로 똑똑해져야 한다. 그래야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는 어쩌면 가르쳐야 할 주체가 가르치지 않았거나 알지 못하도록 국민을 기만해온 것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국민이 건축에 대해 똑똑해지면 기만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2017년 포항 지진 때 한동대학교 건물이 무너졌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정확히는 외벽의 마감재인 벽돌이 무너져 떨어진 것이다. 이 건물이 내진구조가 아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진구조였다. 내진구조는 건축물의 주요 구조부에 해당하는 것이지 마감재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즉 기둥과 보가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기준만을 정의하고 있지 외벽의 마감재나 실내의 가구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다. 그런데 실제 지진상황에서는 어떨까?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서 사람이 위해를 입는 경우가 많을까, 한동대에서처럼 내진구조의 건축물의 구조체는 멀쩡하지만 외벽의 마감 벽돌이 떨어지거나, 간판이 떨어지거나, 담장이 무너지거나, 실내의 진열대나 가구가 넘어지거나, 힘을 받지 않는 비내력벽이 무너지거나, 혹은 내부의 유리창이 깨져서 다치는 경우가 많을까? 당연히 후자다.


소위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사와 구조기술사들이 이 내진구조 설계 문제로 다투고 있는 듯 비치는 상황이 우스울 뿐이다. 국민들이 건축을 잘 모르다 보니 전문가끼리의 밥그릇 싸움 같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본질은 ‘사람’이다. 건축사든 구조기술사든 ‘사람의 삶’을 위하는 관점으로 건축을 인식하고 있는가? 진짜 갑인 건축주 즉, 국민이 건축에 대해 똑똑해지면 쉽게 보이는 답이다.


아파트 얘기 좀 해볼까? 2015년 통계청 통계로 보자면 우리나라 전체 주거 중 무려 50%가 아파트다. 지구 상에 국민의 절반 정도가 아파트에 사는 유일한 나라다. 이들은 거의 같은 형태의 집에 살고 있는 셈이다. 상황과 성품과 가족과 취미와 여건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집에 살면서도 불평불만이 없는 게 신기할 뿐이다. 이런 게 세뇌교육의 위력이라 본다. 최고로 비싼 소비재인 건축에 의문을 아예 갖지 않는 것이다. 


중국도 아파트를 많이 지어 산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점은 골조 상태에서 분양을 하는 것이다. 분양받은 사람들은 동네의 건축사나 인테리어 업자들과 상의하면서 자신의 집을 완성한다. 그래서 외부의 형태는 같을 지라도 내부는 다 다르고, 큰 건축 행위가 일어나면 그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아파트를 공급하는 대기업이 벽지와 장판지까지 다 발라준다. 큰 건축 행위가 있어도 지역 경제의 활성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저 그 건축을 했던 대기업만 배불릴뿐이다. 소비자는 그냥 들어가서 살면 된다. 그게 좋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지만 그게 싫은 사람도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해야 된다 하니까 그런 줄 안다. 


얘기하다 보면 끝도 없을 것 같아 아파트에 대해 한 가지만 더 말하고자 한다. 아파트 사는 사람 치고 결로 때문에 속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파트에서 결로와 곰팡이는 생길 수밖에 없는 자연현상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아파트 대다수는 ‘내단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로와 곰팡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걸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고 심지어는 산업의 한 분야가 생기기도 한다. (결로 이야기는 좀 길어지니 기회가 되면 따로 글을 쓰는 게 낫겠다.) 하지만, 어렵지 않게 원인 치료를 할 수 있는데 그 방법은 ‘외단열’이다. 외단열로 제대로 집을 지으면 결로와 곰팡이는 완전히 없어진다. (외단열로 지었는데도 결로와 곰팡이가 생길 수 있는데, 그건 생활 습관의 문제다. 단열이 잘 된 집 실내에서 물을 너무 많이 쓰게 되면 그 수분이 집 밖으로 못 나가고 집 안에 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파트를 외단열로 짓지 않는 이유가 뭘까?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어준 대로 사는데 불만이 없는데, 요구하지 않는 것을 먼저 고치려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울지 않는 아이에게 젖 주지 않는 것처럼.


내진구조 설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고 글을 마치려 한다. 건축물의 내진설계는 구조 전문가인 구조기술사가 해야 할까? 구조기술사가 실 사용자인 사람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지진 시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는 생활 가구의 배치나 수납에 대해 고민하며, 공간을 나누는 비내력벽의 구획에 관심을 가지며, 외부 마감재인 벽돌과 돌의 성질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며, 건축물 안에 사는 사람의 삶을 사랑으로 고민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할 것이다. 반면 건축사임에도 앞에서 언급한 건축의 본질적 요소인 ‘사람’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사람의 삶을 담는 공간에 대해 내진 설계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내진설계에 대한 자격은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이 소위 ‘법’으로 한정하고 따르도록 하는 게 아니다. 건축의 진짜 갑인 우리 건축주, 즉 우리 국민들이 건축에 대해 제대로 알고 개인의 행복을 위한 최고의 소비재인 건축을 제대로 인식해서 국가에 제대로 ‘요구’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요구가 법으로 만들어지며, 전문가들은 그 법을 지켜갈 때  진짜 갑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건축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국민의 자발적 요구가 없다면 우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건축만 개발도상국 시대를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게 되는 셈이다.


이제 공급자 위주의 정책은 그만(하게) 할 때가 됐다. 소위 표준화, 경제성, 실용성, 효율성 등은 누구를 위한 구호인가? 공급자인가, 소비자인가? 당연히 공급자다. 언제까지 우리 ‘건축’은 공급자 위주의 정책에 머물 것인가. 목 아프다. 그냥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진짜 소원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건축문화 선진국이 되기를... 그런 날이 오려면 좋은 건축주가 많아져야 하기에, 나의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는 더디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우리 국민들이 좋은 건축 안에서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농민신문' 인터뷰에 빠진 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