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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Jul 07. 2019

길고양이의 삶을 보며 인생을 배운다

때를 안다는 것

야생화를 보면 계절을 알 수 있다. 늘 바쁘게 살지만 때를 알면서 시간을 보내면 무심결에 흘려보내는 것보다 의미 있다. 얼마 전 만들어준 화분 덕인지 다육이도 잘 자라고 있다. 큰 화분에 심긴 블루베리는 이제 익어가고 있다. 어제 한 알 먹어 봤는데 맛이 들어간다. 사람보다 짧은 생애 주기를 가진 생명을 보면서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매일 자라는 식물을 보며 생기를 얻게 된다. 최근 다육이 화분을 만들어줬더니 더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은 길냥이를 보면서 더 크게 다가왔다. 밥 주는 길냥이 몇 마리가 있는데, 그중 한 마리는 오드아이 흰고양이다. 똑같이 생긴 자매 고양이가 있는데, 얘는 두 눈이 다 노랗다. 둘은 자매이며 오드아이는 '미미', 노란 눈 고양이는 '나나'라 이름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어미가 출산하는 그때부터 봤다. 새끼를 거두지도 못할 정도로 약했던 어미 고양이(‘나비’라 불렀다.)를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집으로 들여서 산후조리를 해주고 아이들이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 물론 혼자 한 일이 아니라 아내가 더 열심히 돌봤다.     



며칠 후 이사를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어미와 두 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갔다. 그 상태에서 자연에 방사를 한다면 아이들의 생명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미 고양이 나비와 새끼인 미미와 나나는 우리 가족과 인연을 맺어갔다.      


미미와 나나 모두 태어날 때부터 내 손에서 컸지만, 동작이 빨라질 때부터는 손을 타지 않고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매일 밥과 물을 주는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 녀석들이 때론 얄밉기도 했는데, 어려서부터 밥을 얻어먹고 자란 아이들에게 밥을 주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매일 식량을 조달해 줬다. 그러다가 8개월쯤 되던 시기에 오드아이 미미가 드디어 내 손에 가까이 오게 됐고 자신을 쓰다듬을 수 있도록 해줬다. 그 후론 이름을 부르면 달려올 정도가 됐으니 많이 친해진 셈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태어난 지 채 1년도 안된 미미와 나나가 임신과 출산을 했다. 미미는 놀랍게도 첫 출산에서 7마리를 낳았는데, 며칠 되지 않아 5마리를 잃고 두 마리만 남았다. 어느 날 출근을 해서 불행의 현장을 목격한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다른 수컷 고양이가 습격을 한 것 같았다. 망연자실한 미미의 표정도 처음 봤다. 오드아이의 눈이 그렇게 슬프게 느껴질 수 없었다. 살아남은 새끼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뒷다리를 크게 다쳤기에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술을 시켰고, 매일 2~3회씩 소독과 간호를 해준 덕에 완전히 나아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게 됐다.      

오드아이 미미와 살아남은 두 이이들


길고양이의 출산을 경험했을 때 이거 100마리 되는 것은 순식간이겠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연은 개체 조절을 스스로 했다. 어찌 됐든 아이들 젖먹이는 시기가 끝나갈 무렵 시청에 연락해서 TNR(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후 잡은 곳에 다시 방사하는 것)을 신청했다. 약 2주쯤 걸린다 하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한 달이 훨씬 넘었는데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했는데 어제서야 연락이 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미미가 또 임신을 한 것 같기 때문이다. 미미보다 늦게 출산한 나나는 4마리를 낳았는데, 겁이 많은 엄마의 유전자를 닮아서인지 도통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모두 무사하다. 나나도 요즘은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다. TNR을 시키기 적당한 때라 생각하고 있다.      


미미와 나나는 이사를 온 후부터 출산 때까지 내 공장의 창고에서 살았다. 떠나지 않았고 떠날 생각도 없었던 아이들이었다. 때 되면 밥 주는 사람이 있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떠날 이유가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새끼들이 수컷 고양이에게 습격을 당한 경험이 있는 미미가 요새 창고에서 살지 않고 있다.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며칠에 한 번씩 와서 밥을 먹고 가는 정도다. 출산을 앞둔 미미의 기억에 이곳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다. 어느 날에는 나나의 가족 모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또 어느 날 다 와있기도 한다.      


있으면 반갑고 없으면 허전하다. 그래도 적당한 ‘정’의 간격이 나쁘지 않다. 오는 날 반갑게 맞아주고 통조림도 하나씩 터준다. 그럼 남김없이 잘 먹는 아이들이 예쁘다. 사람으로 치면 30년 정도의 생애주기가 단 1년 만에 이뤄진다. 이것을 보며 나는 인생을 성찰하게 된다. 태어나고 자라고 출산하고... 이렇게 또 반복되는 삶. 그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 슬픔과 기쁨, 분노와 좌절이 섞여 있고 희망과 기대가 녹아 있다.  


미미와 나나 이후로 길냥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더 깊은 정을 주지 않기 위한 나의 방어선이랄까? 자식처럼 키웠던 고양이를 사고로 잃었을 때의 고통과 충격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던 기억 때문이리라. 그런데 한 2주 전부터 미미의 새끼 두 마리 중 삼색이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독립심이 강해서인지, 어디 가서 사고는 나지 않았는지 염려도 되지만 그 역시 나의 소관이 아니라 자연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순리를 따라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의 인생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함께하는 반려동물과 키우는 식물을 통해 느끼는 기쁨도 있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깨닫는 통찰도 있다. 나의 삶도 유한하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한은 불과 2~30년 정도겠지. 불과 한 세대 정도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기본과 본질에 집중할 때다. 내가 태어난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는 삶을 산다면 후회가 없으리라. 내일 일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지만, 자연은 이를 예측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때를 알고 때에 맞춰 살아가는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예쁜 새끼 7마리 중  다섯이 없어졌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 누리고 태어난 목적대로 살 수 있다면 언제 떠나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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