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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Aug 10. 2019

배낭여행 그리고 박동수 화백과의 만남

파리의 추억

1992년 8월 22일 또는 23일이었을 것이다. 장소는 프랑스 파리 인근의 '아르파종(?)' 유스호스텔로 기억한다. 벌써 27년 전이니 당시 배낭여행이 활발하지 않은 때였는데도 적지 않은 인원이 각자 여행을 다니다가 우연히 저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지금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시절이었으니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이 무척 반갑고 기쁠 때였다.     


1992년 프랑스 파리 인근 아르파종 유스호스텔에 함께 묵었던 한국인 여행객들. 맨 뒷줄 하늘색 티셔츠가 필자다. 초점이 흐려서 매우 아쉽다. 혹시 아 사진에 계신 분께서 보신다면 꼭 연락해 주시면 좋겠다.




아마 이날은 아침에 각자 여행을 떠나기 전 기념사진을 찍은 것 같다. 이 사진을 내가 가지고 있는 이유는 당시 내 자동카메라로 타이머를 맞추고 찍은 이유 때문이리라 추측한다. 지금처럼 디지털이 아닌 시대였다. 그래서 초점도 안 맞았다. 저 맨 뒤의 하늘색 티셔츠가 나다. 셔터 누르고 뛰어갔겠지. 사진의 멤버들은 어쩌면 이 사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오랜만이긴 하지만 사진을 들여다봐도 몇몇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저분들 중에 딱 두 사람만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배고픈 여행객들에게 정말 맛있는 요리 솜씨를 발휘해 깊은 감동을 주셨던 박미영 님, 두 번째 줄 왼쪽에서 2번째 빨간 셔츠를 입으신 분이다. 요리 솜씨가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백종원 님 급이었다. 그리고 또 한 분은 김정선 님, 첫 줄 오른쪽 3번째 흰 티셔츠를 입은 분인데 저 유스호스텔에 마련된 탁구대에서 함께 탁구를 쳤던 기억이 남아서다.     


다른 분들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아름다웠던 인생의 한 페이지를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혹시 언젠가 우연히라도 이 포스팅을 보고 저분들 중 누구라도 다시 연락이 된다면 그때는 얻어먹었던 식사를 감사의 마음으로 대접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또 이곳에서 잊지 못할 인연 한 분을 만났는데, Dongsoo Park 박동수 화백이다. 그는 당시 파리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 이날이었는지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파리의 한인교회를 찾았다가 거기서 만난 것이다. 예배 후 행사로 나사렛 예수라는 영화도 교인들과 함께 보고 그의 작업실도 구경했다. 그렇게 늦게까지 함께 있다가 저녁이 돼서야 숙소로 돌아갔는데, 밤중에 그 길을 당시 내비게이션도 없이 헤매며 자가용으로 어렵게 어렵게 데려다주신 것이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렇게 우연히 만난 배낭여행객을 진심으로 배려했으며, 그해 겨울 잊지 않고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직접 그림을 그려서 한국으로 보내주기까지 하셨으니 참으로 대단한 성품의 소유자이지 않는가!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런 배려와 진심 어린 도움을 받은 입장에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나의 환경 변화로 인해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으나,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의 안부가 궁금해서 이리저리 찾기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았기에 매번 실패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불현듯 다시 그가 생각나 구글에서 찾아보았는데 그에 대한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고, 그 안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했지만, 27년 전 생기 넘치던 청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그를 찾은 후 즉시 연락해서 통화를 했는데, 그때 일을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고 계셔서 얼마나 기뻤던지 모른다. 그리고 일주일 후 시간을 내서 현재 거주지인 충남 해미를 아들과 함께 찾아갔다. 무려 27년 만의 만남이었다. 시간은 순간 압축되며 27년 전 파리와 그 인근 아르파종에 가 있었고, 그때 일을 추억하며 이야기꽃이 피었다. 형은 파리에서도 유명한 화가로 자리 잡았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왔고, 딸만 파리에 남아서 미술경영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활동은 활발하게 하고 있으며, 얼마 전 끝난 tvN의 ‘60일 지정 생존자’에서도 그의 작품이 몇 점 찬조 출연하기도 했다고 하니 그 또한 반가웠다.      

tvN 60일 지정 생존자 중 캡처. 배경의 동그란 그림이 박동수 화백의 작품이다.





박동수 형이나 나나 27년 전과 달라진 것은 백발이다. 이 사진에서도 하늘색 셔츠를 입고 있는 우연이라니!




사람과의 만남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그런 기적이 오래전 우연처럼 시작된 인연이 되었고, 앞으로 시간이 흘러도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면 좋겠다. 한창 더웠던 1992년 8월의 파리가 생각나는 이 무더운 날에 옛 추억을 소환해 박동수 형과의 다시 만남을 감사하고 그의 인생길 여정에 축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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