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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Mar 17. 2020

소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치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란 속담을 스스로 말 한다면 후회 섞인 자조의 말이고, 남에게 얘기한다면 일을 그르친 사람에게 책망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이 속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외양간은 집 울타리 안쪽에 있으며, 소가 외양간 문을 열고 나왔어도 반드시 대문을 통과해야 길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즉 외양간의 출입구는 직접 길 밖을 향한 게 아니라 울타리 안쪽을 향하고 있으며 주인이 문을 열어준 후에야 외양간 밖으로 나와 대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소는 농민에겐 최고의 재산이다. 사람보다 훨씬 힘이 세고 성품도 온순하여 농사에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소로 인해 일의 능률이 오르고 그에 비례해 소출도 증가할 수 있다. 이렇게 귀한 소가 머무는 외양간을 소가 스스로 도망가 버릴 정도로 허술하게 해 놓을 사람이 있었을까? 아니 그런 상황에서 대문까지 열어 놓았을까?      

외양간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니 화려하진 않았다. 하지만 소도 잘 쉬어야 힘을 얻고 일을 할 수 있으니 그에 적당한 정도로는 만들었다. 감성 충만하고 배려심 많은 농부는 요즘 사람들이 반려동물 키우듯 애정으로 소를 대했을 것이다. 자신을 대신해 힘든 노동을 하는 소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쉴 곳도 돌봐줬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소를 잃어버렸으니 주인의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어쩌면 소 잃은 주인은 재산도 잃고 마음도 상해 더 이상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거기서 멈췄다면 그의 인생도 불행해졌을 테지만, 마음을 다잡아 외양간을 고치고 이후 다른 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으니 속담 속 상황의 주인공은 심신을 다시 회복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쳤다면 그제야 부속건물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의미다. 주 용도가 당연히 중요하지만, 하찮아 보였던 부속건물도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일을 당한 후에야 깨달았다는 의미도 된다. 사람으로 보자면 가장 중요한 뇌와 심장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다쳐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위, 예를 들어 손톱 밑의 작은 상처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방치하거나 허술하게 치료한다면 자칫 감염 등 다른 이유로 생명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중요도에서 순서가 정해질 뿐이지 몸은 각 부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소중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몸의 모든 기관이 심장과 뇌가 될 수 없고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면 되는 것이고, 그게 자신은 물론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오지랖 넓게 생각해 본다면, 남의 외양간에서 소를 훔쳐간 이는 한 순간 돈을 벌었을지 몰라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그의 인생 어딘가는 균열과 구멍이 났을 것이다.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했다면, 그 사람의 눈에선 피눈물 흘리게 될 테니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은 지금도 일어난다. 당한 사람의 입장에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리라. 그런데 건강이 좋지 않아 심각한 판정을 받은 사람이 식단조절을 하며 열심히 운동하면,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더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봤다. 어쩌면 부속용도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로 인해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까지도 잘 점검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가꿔나갈 수 있으리라.     

미리미리 채비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쳇바퀴 돌 듯 사는 삶을 잠시 멈추고, 후순위로 생각했던 일까지 가끔씩 돌아보며 삶의 여유를 가지는 건 어떨까. 중요한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미뤄뒀던 그 일을 오늘 하면 행복이 가득한 내일이 온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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