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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파스 Y Dec 15. 2020

독일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로에

최소한의 틀로 무한한 자유를 열어준 공간 창조자

노자는 ‘흙으로 꽃병을 빚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병이 아니라 병 속의 빈 공간이다’라 했다. 우리의 눈이 봐야 할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 먼저 바라보라라는 뜻이다.

밥그릇에 꽃을 담을 수 없듯, 꽃병의 빈 공간은 꽃을 놓기에 적당한 형태를 가져야 한다. 꽃병을 빚지만 꽃병의 형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 담길 빈 공간을 생각하며 병을 빚는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물을 짓지만 우리는 그 안에 담길 삶의 형태를 생각하며 설계한다. 건물의 모양을 그리고 있지만, 우리의 머리는 언제나 건물 안에서 생활을 할 사람들의 삶에 집중한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빈 공간을 응시하며 공간이라는 형체 없는 형상에 집중한다.


실체가 없는 허상에 집중해서 일까? 건물들의 표정이 심심해진다. 어떤 사람이든 웃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아름답다고 쉽게 느낀다. 무표정의 얼굴을 보고 아름답다 할 때에는 그 이목구비의 비례가 여간 잘 잡혀있지 않고는 그렇게 느끼기 힘들다.

루드비히 반 미스 데어로에 / 건물과 그의 표정이 참 닮은 듯하다 (출처: https://www.retroeurope.com/)


여기 그 궁극의 아름다운 비례를 추구했던 건축가가 있다. 독일의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로에다. 보통 '미스 반 데어로에'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하여 잘 모르는 사람은 앞의 미스만 보고 여자인 줄 아는 경우도 있다.


석공업을 운영하는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던 미스는 지역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한 후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인테리어 디자이너 브루노 파울의 사무실에 입사했다. 1908년에서 1912년까지 피터 베렌스의 스튜디오에서 수습생으로 건축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은 재빨리 인식되어 학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곧 독립적인 업무를 시작하였다.

1929년 경제 대공황으로 설계 의뢰가 줄어들었을 때 발터 그로피우스의 요청으로 바우하우스에서 잠시 동한 마지막 교장을 지냈다. 후에 나치의 독재정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경제 대공황 이후 급변하는 혼란의 시대를 보낸 미스가 택한 공간의 성격은 '표정 없는', '단순한'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모더니스트들이 그러하듯 그의 건물은 언제나 극단적이다. 그렇게 얻게 된 명쾌함이 있지만 너무나 명쾌하여 차가운 건물의 표정은 언제나 단순하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맞아 새로운 재료의 발견, 네덜란드 데스틸의 영향을 받은 미스의 공간은 기능들의 겹침과 각 부분들의 명확성을 통해 단순한 형태의 구성이지만 풍부한 표정을 갖게 되는 점이 다르다.


Neue National Gallery in Berlin / Ludwig Mies van der Rohe (출처: https://www.archdaily.com/)


절대성이 주는 아름다움은 굳이 여러 가지 표정을 지어가며 모두를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

바라보는 대상이 스스로 깨닫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기에 보이는 건 한 가지뿐이지만 바라보는 대상에 따라 그의 표정은 풍부해지는 것이다. 어쩜 그가 추구한 유니버셜한 공간은 물리적 공간의 크기가 아닌 관념적 공간의 크기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느다란 철기둥으로 세워진 뼈대에 투명한 유리로 살을 입힌다. 육중한 지붕을 얇은 기둥으로 들어 올리려면 그 구조적 치밀함이 어마 무시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했다.

그가 추구하는 공간은 마치 수조 속의 물 같다. 정해진 틀 안에서 형체 없는 물처럼 철과 유리로 이루어진 그의 공간은 무한하며 자유롭다. 억압과 독재를 떠나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 그에게 정말 어울리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적을수록 더 많다"는 그의 말은 정해진 공간에 따라 사는 억제된 삶이 아니라 최소한의 건축재료로 공간을 열어 개인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도록 한 그의 자유를 향한 열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건축의 기능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영속하는 것은 오직 융통성과 가변성이다."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로에-


그는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의 형태가 아닌 공간을 추구했다. 건물의 형태가 공간을 구성한다는 점에선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실로 그렇다. 그 공간은 보편적인 공간(Universal Space)이 되어 오늘도 표정 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덤덤히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무한한 자유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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