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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파스 Y Dec 21. 2020

넷플릭스 종이의 집

약자들의 안식처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에 나오는 교수의 아이디어는 창의적이다 못해 황당하다. 사람을 죽이지 않을 뿐더러 돈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만들러 조폐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조폐국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시간을 들여 돈을 만들고 시간을 버는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계획 실행에 있어 시간만큼 중요한 요소가 또 있을까? 시간을 묶어두는 것이 계획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아마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중 하나인 '기억의 지속'이 교수의 계획에 영감을 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구성원들과 인질들에게 같은 가면을 씌우고 서로 가면을 바라보며 계획의 단계를 정확한 타이밍과 시간에 맞춰 진행할 것과 인질극의 시간을 지속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늘 상기시키도록 하였다.

교수가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고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가면-(좌),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우)



내용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 인트로다. 말 그대로 종이로 만든 집을 보여준다. 건축가 입장에선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모형을 내세우는 드라마라니..! 한데 잘 보면 이 모형의 디테일이 꽤 수준급이다. 창틀과 계단, 난간 등 작은 스케일이지만 꽤 훌륭한 디테일로 묘사하였다. 마치 실제로 공간을 봤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다른 공간과 혼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인트로를 처음부터 쭉 보면 나오는 외부에서 내부 공간을 보여주며 다시 외부로 보여주는 카메라 무빙이 있다. 이것은 1. 조폐국 침입, 2. 계획 달성을 위한 내부 주요 거점 점령 및 농성, 3. 다시 외부로의 탈출로 실제 침투조의 동선을 간접적으로 의미한다. 또한 내부의 벽면에 비추는 인물의 정보, 무기에 관한 정보를 보여주며 조폐국에 들어가기 위한 사전 준비의 모습 또한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 이 모형은 조폐국에 침입하기 위해 사전에 모든 것을 준비한 교수가 직접 만든 모형일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상대팀의 두뇌 캐릭터를 상대할 때 늘 종이접기를 하고 있다. 종이를 만지며 평온함과 냉정함을 찾는 그의 습관 또한 인트로에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는 것. 주요 인물과 극을 이끌어 가는 계획을 짠 교수의 성격, 실행해야 할 계획까지  모든 것을 단 하나의 재료 종이에 담아낸 인트로는 가히 천재적이라 생각한다.

인트로 중 모형에 새겨진 계획-(좌), 극 중 실제로 이행하는 모습-(우)


여기에 추가로 건축가의 눈으로 알아낸 모형의 비밀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교수는 건물 모형을 만들 때 손으로 자르지 않고 캐드 도면을 구해 레이저 커팅을 했다는 것이다. 인트로 맨 처음 정확하게 잘린 같은 크기의 두께로 일정하게 창문이 뚫려 있는 벽체들, 나무들과 살짝 타들어간 겉면은 레이저로 자를 시 종이가 타들어간 흔적이 그 증거다. 칼하나 들고 손으로 한 땀 한 땀 다 잘라가며 만들기엔 그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허비했을 테니 말이다.

 레이져 컷팅을 활용한 모형만들기는 먼저 각 건물의 조각들을 제단한 후에 한번에 붙혀 건물을 세우는 방식이다



종이 위에 계획을 그리면 계획도가 되고 건물을 그리면 설계도가 되듯, 돈 또한 결국 종이 위에 각국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진 화폐다. 종이 자체는 흔한 재료이나 그 위에 무엇을 입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또한 물리적으로 종이는 모이면 건물을 지을 수 있을 만큼 힘이 강해진다. 실제로 종이로 건물을 짓는 시게루 반이라는 일본 건축가는 종이를 사용하여 이재민을 위한 임시주택을 지었다. 이재민들은 비록 종이지만 무엇보다 튼튼한 집에서 쉼과 평강을 누렸다.

드라마가 진행되며 각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그들이 어떻게 교수의 계획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이들 모두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약자들이며 이들 또한 종이의 집(조폐국)에 모여 자신의 우울한 과거를 날려버릴 만큼의 돈을 찍어내며 욕망을 충족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경찰을 응원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점점 회차가 진행될수록 저도 모르게 교수와 그의 일당을 응원하고 있게 된다. 종이에 잉크가 스며들듯 그들의 계획과 감정이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으로 스며든다. 그들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를 떠나서.

같은 재질인 종이로 둘러싸인 공간이지만 어떤 종이냐에 따라 욕망을 담은 공간이 되고 이웃을 향한 사랑을 담은 공간이 된다.



사람 또한 종이와 같다. 타고나면 재만 남는 점도 같고 무엇보다 종이 위에 무엇을 그리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듯 사람도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가 바뀔 수 있다는 점도 그러하다.

건축가의 눈으로 인트로에 나오는 모형 자체 점수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묘한 배경음과 모형 내부 공간에 담기는 계획, 사람들을 보여주며 조폐국이라는 공적공간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사적 공간으로 흑화 되어 가는 과정을 볼 때 건축가로서 밀려오는 공간에 대한 씁쓸함이 늘 남아있다. 어쩜 극이 진행되고 10분 후쯤 보여주는 종이로 만든 건물 모형 인트로는 그들을 응원하고 있던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몰아치는 계획과 인물 간의 숨 막히는 갈등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냉정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장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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