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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파스 Y Dec 31. 2020

넷플릭스 위쳐

Des yeux qui ne voient pas (보지 못하는 눈)

우리는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의 감상 차이는 꽤 크다. 게임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1회 차 플레이나 정주행 끝에 2회 차로 접어드는 이유는 1회 차가 큰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힘을 쏟았다면 2회 차는 큰 줄거리를 이루는 요소들이나 떡밥들에 집중하며 큰 줄기를 이루는 작은 가지들을 더 디테일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엇이든 곱씹어 볼수록 그 깊이와 뜻을 알아가게 되어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세계관에 빠지게 된다.


깊이의 세계에서 생각해보자면 피카소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의 불친절함은 잊을 수 없다. 특히 뒤죽박죽인 얼굴과 일그러진 형태는 불쾌감마저 자극한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먼저 그림은 2차원의 영역이다. 한 번에 한 장면 한 시점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사람의 얼굴을 보더라도 얼굴의 한 면 만을 담을 수 있다. 평면에는 한 시점, 한 순간만을 담을 수 있다.

그러나 피카소는 이 평면의 한계를 뒤집는다. 사람의 옆면 앞면을 한 번에 그려 넣어 옆면을 보는 시간, 앞면을 보는 시간, 즉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담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것도 2차원 평면 위에! 하나의 캔버스 위에 두 개의 시간을 담은 정말 뛰어난 수작이다.

피카소는 여인의 앞모습 옆모습을 동시에 담아 2차원의 평면에 시공간을 담아냈다.

2차원의 평면과 달리 우리가 사는 세계는 조금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상대방과 약속을 잡을 때 시간만 잡거나 장소만 잡아서는 약속이 성립되지 않는다. 시간과 장소를 동시에 정해야만 만나는 약속을 잡을 수 있다. 즉 우리는 시공간에 살고 있으며 일정한 시간의 흐름과 사건에 익숙해져 있어 한 공간에서 알게 되는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일에만 익숙해져 있는 상태다. 그래서 어쩜 하나의 캔버스에 동시에 두 가지 시간이 담겨있는 피카소의 그림이 처음에 나에게 거북해 보였을 수 있다.



위쳐는 초반에 서로 다른 시간(사진 순: 시리, 위쳐, 예니퍼)을 한 화에 따로 또 같이 담는다. 포스터 속 세 인물의 서로 다른 눈동자 색이 다른 시간을 암시하는 걸지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위쳐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가 사는 시공간을 벗어났을 때 느끼는 불편함을 충분히 드러냈다. 한 화에 인물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는 시간의 순서가 일정치 않아 뒤죽박죽의 혼란을 야기하는 드라마라는 혹평도 자자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다시 우리에게 익숙한 한 회차 속 하나의 시간의 흐름을 되찾게 된다.


영상은 여러 장의 시퀀스가 겹쳐지며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어 진행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에 본 위쳐는 마치 하나의 흐름으로 극이 진행되는 척하지만 교묘하게 세 가지의 시간을 하나의 흐름인 것처럼 담아낸다. 게임이나 소설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떠나 이러한 시도 자체가 새롭게 느껴졌다. 그 새로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처음 볼 때 우리에겐 아직 없었을 뿐이다. 다만 2회 차 정주행을 할 때면 우리는 충분히 위쳐를 즐기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을 것이다.


건축가 르 꼬르뷔제는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그동안 평이하게 추구했던 공간에 대한 아름다움의 기준을 바꾸어야 함을 그의 저서를 통해 설파하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일컬어 '보지 못하는 눈'(Des yeux qui ne voient pas)이라 했다. 처음에는 냉대를 받았으나 후에 그의 공간 철학이 인정을 받게 되며 그를 공부한 수많은 건축학도들과 건축가들은 그의 공간 세계관에 빠져 더 깊이 있게 탐구하게 되었다.


늘 우리는 새로움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피카소의 그림과 르 꼬르뷔제의 공간 철학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불편하고 어렵던 넷플릭스의 위쳐는 여러 번 볼 수록 그 스토리가 가지고 있는 깊이와 인물 설정과 묘사에 대한 세심한 디테일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면 알게 될수록 위쳐의 세계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세 가지 시간이 모여  만드는 대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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