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파스 Y Jan 19. 2021

넷플릭스 오리지널 굿 플레이스

삶을 닮은 공간, 공간에 담긴 삶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여기 한 여인이 눈을 뜬다. 여자의 이름은 엘리너 셸스트롭. 주위를 둘러보니 웬 사무실에 앉아있고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백발의 인자한 웃음을 띈 노신사 한분이 당신은 굿 플레이스에 있다고 한다.

어리둥절해하는 엘리너에게 자신을 건축가라고 소개하는 신사의 이름은 마이클. 엘리너에게 굿 플레이스를 소개하며 보여주는 그는 동네 곳곳과 각각의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


건물을 비롯한 자신이 창조한 모든 물건에는 각각의 이유와 쓰임이 있고 이를 추억하며 소개하는 마이클의 얼굴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가득 차 있다. 그만큼 그가 굿 플레이스를 설계하며 쏟은 열정과 사랑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름 아닌 자신이 의도한 대로 그대로 지어진 창조물들이 마이클을 기쁘게 한 것이다.

첫날 엘리너에게 굿 플레이스에 관해 설명하는 건축가 마이클


영어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정관사를 붙여 The Architect라 표현했다. 온세계를 창조하고 설계하실 때 하나님도 기뻐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하셨는데 자신의 말씀대로 지어진 창조물들이 그가 보기에 좋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과 하나님의 차이라면 마이클은 제도판 앞에서 그려가며 설계를 했고, 하나님은 말씀 하나로 창조한 부분이 작지만 큰 차이다. 나 또한 대학생 시절 교회를 다니며 성경구절을 보며 건축학과 학생으로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마냥 느꼈었다.


그렇다. 창조주의 가장 큰 기쁨은 자신의 의도대로 창조물이 잘 나왔을 때이다. 작곡가가 의도한 대로 곡이 나오고, 화가가 의도한 대로 그림이 나오고, 건축가가 의도한 대로 건물이 나올 때의 기쁨은 창조적인 성격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느꼈을 보람이고 기쁨이다.





늘 행복한 일상,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곳. 그런 장소를 보며 만족하던 엘리너가 막상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거주할 공간을 봤을 때다.


굿 플레이스에 속한 사람들이 머무는 집은 살아생전의 취향을 적극 반영하고 인물의 성격과 성향 그리고 본성에 따라 그 사람에게 완벽한 집을 준다. 건물의 형태, 건축 양식 또한 인물의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하는 쪽으로 설계되었다. 엘리너의 같은 경우는 외관은 고대 북유럽 디자인의 형태에 내부는 아이슬란드식 인테리어 그리고 광대 그림 코너가 딸린 공간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에게 있어 엘리너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단차가 꽤 심한데 처음부터 침대로 가는 계단이 없어 침대로 갈 때마다 늘 불편하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이용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가 본래 집주인인 진짜 엘리너가 집에 오자 알게 되는 숨은 공간의 디테일이다.

계단을 못 찾아 힘겹게 침대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너
한번에 계단을 찾은 진짜 엘리너 (정체는 악마 비키 센굽타). 이처럼 나만의 디테일을 가진 공간이 진짜 내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공간은 사람의 성격과 지금까지 살아오며 갖게 된 저마다의 세계관과 삶 그리고 인생을 반영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집도 최대한 내 마음에 들게 꾸미며 산다. 다만 현실의 집은 돈이 충분치 않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봤다면 굿 플레이스와 같은 곳의 집은 돈 걱정 없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순수한 공간을 그대로 구축할 수 있다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자신의 삶이 반영되지 않은 집에서 지내는 엘리너는 그녀의 공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며 지냈을까?


나를 닮은 공간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리가 되어있든 말든, 크든 작든 어떤 형태든 나를 반영하고 있는 곳이다.

지금 살고 있는 나의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이런 곳에서 살 사람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사람은 혹시 굿 플레이스에 있는 배드 피플이 아닐까?


극이 진행되며 본인이 굿 플레이스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임을 인지한 엘리너는 굿 플레이스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변하고자 그녀의 소울메이트 치디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후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과 친해진 엘리너는 나중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굿 플레이스라 알고 있던 여기가 배드 플레이스였음을...

왜냐하면 굿 플레이스라 하지만 그들은 매일 서로에게 고통받고 주고의 삶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삶과 공간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주인공들이 자신의 공간을 인지하자 마이클의 완벽에 가까운 설계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엘리너와 치디, 타하니 그리고 제이슨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기게 된다.





마이클의 800번에 걸친 거짓 공간 리부트에도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속한 곳이 배드 플레이스임을 알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그들의 본성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의 본성을 바꾸려 노력하며 짧은 시간에 완벽하게 고쳐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완벽에 가까운 사후세계의 시스템을 바꾼다. 시스템을 바꿀 수 있던 열쇠는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자유의지에 기반한 노력이었다.


처음 시작은 굿 플레이스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사람을 바꿨다면

나중 마지막에는 변해가는 그들의 모습에 따라 그들이 사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갔다.

굿 플레이스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자신을 바꾸고 바뀐 자신을 통해 사후세계를 바꾸어 나가는 엘리너


현재 나는 이런 모습이기에 지금 이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능력에 맞춰 자신의 공간을 갖춘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부족하다 하여 좌절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 말했다.

"우리가 공간을 만들지만 후에 공간이 우리는 만든다."


비록 지금 나의 삶이 초라하여 그에 맞는 공간에 살고 있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조금씩 나의 삶을 바꾸어 나간다면 내가 살고 있는 공간도 삶의 속도에 맞춰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는 굿 플레이스 혹은 배드 플레이스로 고정된 세계가 아니라 언제든 변화를 꿈꿀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후에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신의 삶에 맞는 굿 플레이스를 지을 때 건축가 유무종을 찾아주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넷플릭스 위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