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파스 Y Feb 09. 2021

넷플릭스 오리지널 그레이스 앤 프랭키

한 그릇에 담긴 물과 기름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분위기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익숙한 듯 도착한 여사님. 도도한 걸음에 맵시 있는 옷차림. 딱 봐도 깐깐해 보인다. 예약을 확인 후 자리로 이동하며 테이블에 미리 와 앉아 있는 함께 예약이 되어있는 상대를 본 후 그다지 탐탁지 않은 얼굴로 자리에 들어서며 표정관리 후 비쥬(가볍게 볼에 뽀뽀)를 나눈다. 자리에 앉으며 웨이터에게 빵을 치워달라고 부탁하자 맞은편에 앉은 치렁치렁한 옷을 흩날리는 또 다른 여사님이 소스는 뭐로 찍어먹냐며 만류하지만 이내 치워지고 내려보듯 쳐다보며 '난 소스 안 먹어'라고 도도하게 말한다. 이어서 아주 드라이한 보드카 마티니 스트레이트와 올리브 2개를 종업원에게 주문한다. 도저히 공통분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둘이 앉아 있으니 마땅히 얘기할 주제도 없거니와 둘 사이의 교류도 잦지 않아 겨우 찾아낸 이야기는 오늘 저녁에 남편들이 할 얘기가 뭐인가 맞춰보는 중이다. 두 여사님들의 결론은 은퇴 선언.


긴가민가 하는 여사님들을 사이로 뒤이어 들어오는 남편들. 둘 사이는 상당히 좋아 보인다. 식사자리가 무르익으며 할 말이 뭐냐 묻자 주저하는 솔을 대신하여 로버트가 말한다. '난 당신을 떠날 거야' 그리고 바로 '솔도 당신을 떠날 거예요'하며 폭탄선언을 한다.

당황스러움을 억지로 참으며 어떤 여자 때문인지 묻자 자신은 솔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말문이 막힌 도도한 여사님을 대신하여 빵에 소스를 찍어먹길 좋아하는 여사님이 직격탄을 날린다. '당신이 게이라고?' '로버트는 당신 게이 애인이고?' 그렇다 남편들끼리는 이미 20년이나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던 관계였다. 이제는 결혼을 하겠다며 연이은 폭탄 투척.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성향의 사람이든 미치고 팔짝 뛸 상황. 이내 레스토랑은 아수라 장이 된다. 드라이한 마티니를 좋아하는 여사님의 이름은 그레이스. 빵에 소스를 찍어먹기를 좋아하는 여사님은 프랭키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꽤 장황한 내용이지만 이는 첫 화에서 단 5분 만에 이루어진 상황이다. 오프닝을 제외하면 4분. 이 4분 만에 인물의 성격, 성향 극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전부 다 다뤘다.




후에 연출은 그레이스와 프랭키의 성격과 성향이 정 반대임을 공간과 관계를 통해 나타낸다.


먼저 레스토랑에서 돌아온 그레이스의 공간을 보여준다. 가지런히 정돈된 화장대, 화려하지만 누구도 튀지 않고 통일성을 갖춘 집안의 색상. 그녀의 공간은 엄격한 규칙과 차갑지만 잘 정돈된 공간 연출을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공간은 전시된 듯 물품들이 정리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성격임을 엿볼 수 있다. 후반부에 나오는 그녀의 탁월한 사업 기질은 바로 이러한 그녀의 성격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지켜온 품위가 깨지는 순간. 그녀는 주저앉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알고 보면 누구보다 여린 마음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외강내유 타입일까?

전시된 듯 깔끔하게 정리된 그녀의 집안 물품들. 공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는 수단.



반면 레스토랑에서 돌아온 이후 보이는 프랭키의 집은 자유분방함과 따듯함이 보이는 공간 연출이 되어있다. 난잡해 보이는 집안 물품들, 통일성 없는 색상.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각 집안의 물품들의 개성을 존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프랭키가 걸치고 있는 옷과 프랭키라는 인물과 함께 공간적 조화를 이룬다. 따듯하며 솔직한 그녀의 성격은 남편의 어이없는 외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그녀가 상당히 강한 여성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 안의 문제로써 감당해야 할 부분에 당당히 맞서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전형적 외유내강.

집안 물품들은 주워온 듯 보이지만 각자의 개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공간은 나 보기에 좋으면 좋은 것.



자식과의 관계도 정 반대다. 그레이스는 딸만 둘이고 프랭키는 아들만 둘이다. 또한 그레이스는 직접 낳았고 프랭키는 모두 입양했다. 둘 다 모두 자식을 훌륭하게 키운 공통점은 있지만 가지게 된 과정은 달랐다.

가운데 그레이스의 딸들. 양끝 남성들이 프랭키의 아들들. 실은 제일 혼란스러운 건 이들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이들의 삶은 물과 기름처럼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아픔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공간도.

그레이스와 프랭키가 도피처로 삼은 공간은 두 남편이 공동명의로 산 여름 별장이다. 별장의 공간적 특징은 일정 시간 잠시 머물다 가는 것에 있다. 따라서 편의를 갖추었지만 그 안에 삶이 담기진 않아 공간의 특색은 없다. 이 공간에 극과 극의 캐릭터가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더구나 기한 없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싫어하던 이들이 아픔을 극복하는 첫걸음을 함께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함께 지내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 말이 있다. 외형이 닮는다기 보다는 한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삶을 살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패턴이 같아졌다는 의미다.

건축가로서 참 멋진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누구든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 그 공간에 길들여져 비슷한 삶을 살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레이스와 프랭키의 생활패턴은 절대 같아지지 않았다. 그 부분이 참 재밌다. 건축가로서 공간의 힘을 과시한 나의 교만함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단지 한 공간에서 그들이 겪은 같은 상처를 나누고 함께 극복해 나간다. 그레이스는 프랭키의 부족함을, 프랭키는 그레이스의 부족함을 서로 보완하며 채워준다. 억지로 한 사람의 삶의 패턴에 맞추려 하지 않는다.  

한 그릇에 담긴 물과 기름은 절대 섞일 수 없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의 조화가 있다. 모두가 함께 사는 이 도시에서 때론 우리는 다름이 틀림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한 공간(범위를 넓히면 도시가, 나라가 되기도 하고 지구도 되겠지)에 산다고 모두가 같은 모습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으며 돕고 사는 것이지. 각자가 자신만의 개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레이스와 프랭키 같은 사이가 되어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넷플릭스 오리지널 굿 플레이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