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밖으로, 과거를 벗어나 미래로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 말을 믿고 15년 동안 지하에서 열심히 살던 종말론 사교집단 여성 4명이 바깥세상으로 구출됐다. 환한 빛이 내리는 천정 문을 통해 세상으로 나온 '인디애나 두더지 여인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살던 이들은 이전에 자신들이 살던 지하벙커에서 나와 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진행자의 말에 키미는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주인공 키미는 자신의 제2의 인생을 살기로 했다. 그것도 제대로.
우선 자신이 피해자였음을 떨쳐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의미로 뉴욕에 머물기로 했다. 세상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난다. 적응한다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는 삶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긍정의 힘을 주변 사람에게도 전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문명 자체를 모르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시즌이 진행되며 점점 완벽하게 적응해가는 키미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보면서 한 가지 든 생각이 있다. 과연 키미만 다른 세계에서 온 사회 부적응자일까?
단지 TV에 15년간 감금되었던 그녀의 삶이 드러나서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뿐 키미가 뉴욕살이를 하며 만난 등장인물들 저마다 현재 시점이라는 세계에서 살기 전 과거의 자신에 얽매여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었다.
예전의 그들은...
키미는 15년간 지하 벙커에서 감금당했던 과거,
타이투스는 로날드 월커슨이라는 이름의 결혼까지 했던 과거,
릴리안은 한때 정치인의 거짓말에 속아 40년간 정지된 2번가 지하철 개발을 기다리던 과거,
재클린은 과거 인디언의 가정에서 성공한 백인을 동경하며 자랐던 과거가 있다.
이러한 과거는 그들의 세계였으며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자신을 바꾸고 변화해 나간다.
때로는 그들의 과거가 현재를 살며 미래로 나아가려는 자신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키미가 함께 한다. 불행했던 과거를 벗어나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만나 자신의 현실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들의 현재는...
키미는 보모로 살고 있고
타이투스는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을 겪으며 오디션을 보며 살고 있고
릴리안은 변해가는 동네를 저주하며 살고 있고
재클린은 남편과 이혼 후 또 다른 부자 남자를 만나려 애를 쓰고 살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과거로부터 도망치고 벗어나려 할수록 그들은 뭔가 현실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등장인물은 과거 자신들의 모습을 늘 못나고 부족하게 여기고 그 결과 과거의 모습에 갇혀 앞으로 나아갈 순간에 망설이게 된다. 왜냐면 그들이 외면했던 건 그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이었기 때문이다.
어쩜 과거를 벗어난다는 것은 과거에 얽매이게 바라보게 하는 자신만의 선입견에서의 탈출이 아닐까?
이처럼 그들은 점점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본인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오히려 과거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고 약점으로 여겼던 부분을 강점으로 바꾼다. 그리고 인생마저 바꾸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키미는 소설 작가로 성공하여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자신의 이름을 딴 놀이동산을 만들고
타이투스는 뮤지컬 배우로 성공하고 마이크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입양했고
릴리안은 올해의 뉴요커로 선정되어 뉴욕시 지하철 안내방송 목소리의 주인공이 되고
재클린은 연예 기획 사업가로 성장하게 되며 루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들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들이 깼던 단단한 알은 과거의 모습에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단단해졌다.
깨지지 않던 과거의 모습을 깬 키미 슈미트는 완벽하진 않지만 주변 사람과 서로 도와가며 자신의 자아를 찾는 여정 속에서 깨지지 않는(unbreakable) 키미 슈미트의 자존감을 완성했다.
처음에 나왔던 데미안의 내용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과거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한다.
과거는 세계다.
꿈을 이루려 하는 자는
자신의 과거를 깨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