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과 유리의 변주, 웅진씽크빅

한 페이지씩 보는 나의 건축노트

by 김민현




들어가며


파주출판도시는 구역마다 건축유형이 정해져 있고 사용재료의 범위까지 규제하는 마스터플랜 방식으로 설계된 도시입니다.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 여러 유명건축가들이 참여한 개성있는 출판사옥들이 자리잡고 있죠.


그 중 이번에 제가 가보고자 한 곳은 웅진씽크빅의 사옥이었습니다.

회사 건물이라서 내부까지 구경하지 못하리라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관리자 분이 나오셔서 무료로 진행되는 웅진역사관 관람을 예약하면 내부까지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덕분에 아주 알차게 보고 올 수 있었습니다.




웅진씽크빅


위치: 파주출판도시

건축가: 김인철


루버디테일을 표현한 스케치


시작할 때 파주출판도시가 구역마다 건축유형과 사용재료의 범위까지 규제한다는 말씀을 드렸죠.

웅진씽크빅이 위치한 구역의 건축유형은 '암석-바위' 였습니다. 대지는 주위로 샛강이 굽이돌고 갈대가 자라는 습지에 면해 있죠. 건물은 이런 대지의 자연스러운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마치 조약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땅 위에 놓인 가벼운 조약돌 말이죠.


바깥은 모두 유리로 마감되어 있고, 그 안은 목재 루버들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이 루버들은 건물 안에서 손으로 직접 돌릴 수 있게 되어 있는데요, 이는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에서 채광을 필요에 따라 조절하는 한편 풍경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손으로 직접 돌리는게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로우테크의 느리고 건강한 방식이 오히려 출판사옥에 어울리지 않을까 했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한테 맞게 근처에 있는 루버들을 조절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물의 안에서 보면 목재 루버들 너머로 우거진 숲의 풍경이 어우러져 마디마디가 끊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또한 이는 낮에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이 줄지은 그림자들로 내부에 드리우게 하고, 밤에는 안에서 밝히는 빛이 외부에서 다채롭게 빛나는 풍경을 만듭니다.

건물의 외관에서 또 눈여겨 보여지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곳곳이 크게 뚫려 열려 있다는 것 인데요.


" 연속성을 이루는 투명한 건축이 가능한가를 따지려면 과연 건축이 가리고 가두는 기능만을 위한 것인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비바람을 막고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안전한 둥지로서의 역할에 치중하면 막아서 안전을 얻는 순간 공간은 소통을 잃게 된다. 막는 것은 단절을 의미한다. 막기에 익숙해질수록 점차 외부의 기억을 잊어버리게 된다. 빛과 바람이 웅성거리는 조화는 막아놓은 벽을 뚫어야 구경할 수 있다... 막은 뒤 열어야 할 곳을 애써 찾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열어두기로 했다. " -김인철-



이렇듯 웅진씽크빅은 건물의 곳곳이 사각형 모양으로 뚫려있는 한편 입구는 그대로 가운데의 중정까지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바깥과 중정은 모두 외부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이곳을 통해 빛과 바람이 웅성거리는 조화는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옵니다.


중정 스케치


중정에 들어가면 유리와 목재루버로 따뜻한 느낌을 가졌던 외관과 달리 조금은 차가운 느낌이 났습니다.

하늘로 열린 거대한 건물 내부의 외부공간인 이곳은 철과 유리로 이루어진 세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원재료들이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조합되어 공간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원초적인 건축에 항상 마음이 끌립니다.

그런면에서 이곳은 단숨에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철과 유리가 아무런 장식적 요소 없이 강렬한 원재료의 본성을 가지고 구조적으로 조합되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불투명한 유리 매스들이 솟아 있고, 브릿지들이 사이사이를 오갑니다. 긴 계단은 브릿지들을 지나 옥상까지 이어집니다.


비어있는 마당은 통해서 건물 곳곳을 이동하는 무수한 동선들이 만들어지고 활동들이 이루어지겠죠,


사람들은 브릿지들로 마당을 지나 건너가고 서로의 시선은 교차하며 다양한 풍경이 만들어집니다.

특히나 철과 유리의 세상 속에 자라난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를 통과하는 사선의 브릿지를 보며 저기를 지날 때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참 궁금했습니다.


곳곳에 솟아 있는 불투명한 유리탑은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을 담고 있는 매스입니다. 내부의 공간을 열어두기 위해 시설을 모두 마당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옥상에 이르면 지붕은 인공의 대지입니다. 나무판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언덕을 이루는 모습은 참 인상적입니다. 어떤 건물에서 이렇게 옥상을 만들까요.

직원들은 옥상에 올라와 하늘을 바로 위에 두고 언덕을 따라 산책할 수 있습니다.



외관 스케치



역사관을 설명해 주시는 직원분이 한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요.

회장님은 이 건물을 항상 바로 앞에 있는 건물과 비교하셨다고 합니다. 같은 구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 건물 또한 유리로 된 바위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눈여겨 보이는 것은 유리가 모두 관리가 안 된 듯 더럽고 낡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얼룩 하나없이 광나는 웅진씽크빅과 정반대로요. 처음 웅진씽크빅을 보고 "여기는 유리청소를 얼마나 자주하길래 이렇게 깨끗하지?" 했는데 의문이 이 이야기에서 풀렸습니다. 좋은 유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굳이 관리를 자주 해주지 않아도 깨끗하다고 하시더라구요.


알고 보니 웅진씽크빅 사옥은 지을 적에 회장님이 모든 재료를 최고급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하셔서 건물을 이루는 유리부터 시작해 목재루버, 로비 바닥나무판, 조명 등을 어렵게 구해 지었다고 합니다.

직원분도 그런 점에 대해 프라이드를 갖고 계신 듯 했고, 어디서 재료를 구해온 것인지, 당시 얼마나 구하기 어려웠던 것인지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로비 바닥에 깔려 있는 장미 나무판이 당시 이건희 회장만이 구할 수 있었던 재료였다는 썰이 특히나 기억에 남습니다.


어쨌든 웅진씽크빅 답사는 보고 싶던 건물을 알차게 보는 한편 웅진그룹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참 의미있는 시간 이었습니다.



-24.01.27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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