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씩 보는 나의 건축노트
들어가며
도쿄와 서울의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항구도시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도쿄여행을 하면 긴자, 시부야 등에서 시간을 보내기 마련인데요. 그래서 이번 도시여행에는 바다 근처도 둘러보고 싶은 바램이 있었습니다.
도쿄 고토구(江東区) 아래로 내려가면, 신기한 도시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도로로 나뉘는 블럭처럼, 바닷길이 블럭을 나누고 있는 것인데요. 하나하나의 블럭들은 토요쓰, 시노노메, 아리아케 등으로 불립니다.
오늘 소개할 건물이름을 볼까요.
Shinonome canal court codan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 듯 마치 운하가 도시 곳곳으로 흐르는 듯한 특이한 풍경입니다.
저는 이 고토구 곳곳의 블럭을 넘나들며 이상하게도 "걷기 참 좋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 이유는
1. 초고층, 고층, 중층을 적절히 배합하여 도시의 밀도는 낮추면서 활력을 돋운다.
2. 캐널(운하)라는 말처럼 블럭 사이사이로 운하가 흐르기 때문에 어디서나 물을 볼 수 있다.
3. 블럭 과 블럭을 이동할 때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모든 다리는 완만하고 길게 뻗어 있어 부드럽게 산책하듯 올라갈 수 있다. 따라서 건너다니는 불편함이 오히려 낭만적이게 다가온다.
특히나 이곳은 말그대로 초고층 주거단지가 많은 점이 신기했어요. 때문에 전체적으로 도시가 시원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일 좋았던 점은 무엇보다 다리를 건너가는 경험이예요.
육교, 다리등이 계단 없이 완-만한 경사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계속 걷다가 어느새 바다위를 걷고 있달까요. 덕분에 굉장히 긴 구조물이 곳곳에 있게 되는데, 이것마저도 도시 특유의 "시원시원한" 느낌과 어울리는 듯 했습니다.
위치: 1 Chome-9-18 Shinonome, Koto City
건축가: Yamamoto Riken (Block 1)
시노노메,, 캐널,, 의 뜻은 알겠고, 나머지는 뭘 뜻할까요?
우선 코단 (Codan) 은 일본 주택공단 (현 UR의 전신) 에서 만든 주거단지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트 (Court) 는 쉽게 유추되시죠? 단지 안에 중정이 있는 듯 합니다.
정리해보자면 운하도시에 있는 중정 주택단지가 되겠네요.
이름부터 재밌는 이곳, 자세히 보실까요.
이 단지는 원래 공장부지였던 땅에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도쿄역과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단순히 거주만 하는 장소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도심형 주거단지" 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였는데요, 따라서 내부에는 커뮤니티, 상업, 업무 공간등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시작은 단지 전체를 관통하는 S자의 메인로드를 내며, 외부까지 연결해 줍니다.
코트 (Court) 라는 이름처럼 해당 도로는 단지보다 낮은 레벨로 지나가 거주민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이후, 메인로드를 따라 6개의 블럭으로 나눈 후 각 블럭을 일본 유수의 건축가들에게 하나씩 맡겨주었는데요,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야마모토 리켄, 이토토요, 쿠마겐고 등이 참여했습니다.
이로 인해 전체 단지는 알지 못하면 그저 도시의 한 부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채롭습니다.
한 건축가가 모두 설계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느낌은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외부로 열린 메인로드 덕분에 이러한 도시성은 더욱 극대화됩니다.
답사했을 떄도 저도 모르게 안으로 들어온 후 몇번이나 지도를 확인했던 기억이,,
각 단지 모두 한나절을 봐도 모자랄 정도로 훌륭한 건축이지만, 시간관계상 저는 블럭 1 을 답사했습니다.
야마모토 리켄이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곳인데요, 이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여러분은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국회의사당, 정부청사, 대기업 사옥 등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저는 "주택" 이라고 생각합니다.
주택은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자, 없어서는 안될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디서 사는가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문화를 만든다고까지 생각됩니다.
따라서 건축가로써 무엇보다도 관심가져야 할 분야는 주택인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영역에서 항상 새로움을 제시하는 분이 야마모토 리켄이라는 건축가 입니다.
저는 겪어보지 못했지만,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항상 집 앞 골목길에서 놀던 이야기를 하시곤 합니다. 그 시대에는 모두가 주택이나 빌라에 살았고, 옆집에 누가사는지 ,오늘 뭘 먹는지 알고 사셨다구요.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이런 감각은 사라져 버린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이웃에게 관심가지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철문을 굳게 잠근 채 살아가게 되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건축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야마모토 리켄은 "지역사회권" 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는 말그대로 주거단지를 통해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인데요. 단순히 집이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산다는 감각을 위해서는 공간을 "공유"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유함으로써 관계맺고, 이러한 공간이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죠.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그의 저서 "탈주택" 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탈주택이라니,,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지금의 도시에 더이상 1가구 1주택은 유지될 수 없다고 봅니다.
가족이 분화되고, 개인은 고립되는 상황에서 더이상 하나의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죠. 이제는 서로가 돕고, 연대하는 삶을 위해 주거의 경계를 흐리고, 외부로 여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요.
어쩌면 조금 급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그의 홈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작품은 꼭 답사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전에 메인로드가 단지보다 낮은 레벨로 지나간다 말씀드렸죠. 이곳 1층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S자 도로가 꺾이는 부분에 위치하며 왼쪽으로 야마모토 리켄의 BLOCK1, 오른쪽으로 토요 이토의 BLOCK2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위해 둘을 함께 그려냈습니다.
1층에는 외부인과 공유하는 상업, 커뮤니티, 주차장 등이 있습니다.
메인로드를 따라 상가가 있는 덕분에 누구나 편한 마음으로 여길 걸으며 구경할 수 있는데요, 밤에도 환하게 거리를 밝혀주는 건 덤입니다. 특히나 이 단지에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YMCA 즉, 유치원이 있는데요.
어느정도 외부인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단지 안쪽으로 자리 하고 있고, 둘러싸며 뛰어놀 수 있는 중정이 마련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외부계단으로 올라가며 그 안을 볼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답사 다닐 때 가장 흐뭇해질때가 아이들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는 곳이예요.
제가 저녁시간대에 방문했는데도 그 소리가 가득했던 걸 보니, 야간반으로 운영되어서 단지내 부모님들이 늦게 퇴근하시더라도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2층부터는 옥상 데크가 덮이며 메인로드 위로 다리를 건너 블럭을 오갈 수 있습니다.
데크로 덮여있지만 곳곳에는 중정이 뚫려 있어 1층과도 연결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방금 전 사진에서 본 유치원 중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데크 위로는 본격적으로 주거동이 올라갑니다.
도로를 따라 상가를 구경하고 구석구석 탐험하는 듯한 1층과 달리,
2층은 전체가 데크로 이어져 있어 시원한 느낌이 들었어요.
주거동이라고는 했지만 외부인과 공유하는 곳이 없을 뿐, 이곳에도 거주민들의 커뮤니티를 위한 여러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확인해보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하죠.
새로운 형태의 도시주거를 제안한다 하는 시노노메 캐널코트 코단은, 단순히 상업, 여가 시설 뿐만 아니라 업무도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합니다. 집 내부에 작은 공간을 두어 재택근무를 하거나 오피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SOHO (Small Office Home Office) 라고 불리는 개념입니다.
야마모토리켄의 블럭에도 이러한 세대들이 들어가 있으며, 이를 이용해 그는 새로운 타입을 제안합니다.
단면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주거동의 모습은 곳곳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이 특징인데요, 이곳은 커뮤니티 보이드 (Community Void) 로써, 입주민들이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이는 건물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어 각 부분마다 근처의 세대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이러한 공유공간 옆으로 SOHO 세대가 배치됩니다.
SOHO, 작은 오피스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집의 일부를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공유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의아할 수 있는데요, 야마모토 리켄은 중세 유럽의 주택을 예시로 듭니다.
당시에는 수공업이 발달 했고, 1층에서 물건을 팔고 2층은 집으로 사용하는 주택이 많았죠.
이러한 1층은 집의 일부를 외부와 공유함으로써 관계맺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공간을 시키이(閾,문턱) 이라고 정의하며, 이러한 중성적인 공간을 통해 1가구 1주택에서 벗어나 이웃과 관계맺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죠.
따라서 SOHO세대는 그 공간을 외부와 공유하는 즉, 시키이를 갖고 있는 세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SOHO공간은 복도를 향해 있고, 문이 유리로 되어있어 지나가는 누구나 들여다 볼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 주거평면은 주방과 화장실을 창가쪽으로 배치하는 말도 안되는(?) 구성을 하고 있는데요, (물론 보이진 않게 되어있습니다,,) 이는 벽이 없는 공간을 복도 쪽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였다고 합니다.
왜인고 하니, 집 내부에는 옮길 수 있는 파티션이 있습니다. 이는 앞뒤로 움직이며 공간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움직이면 SOHO 공간이 좁아지고, 뒤로 움직이면 넓어지는 것이죠.
다시말해, 외부인과 공유하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예를들어, 가장 앞으로 밀 경우에는 오피스라기보다는 자신의 취미생활이나 미술작품등, 이웃에게 공유하고 싶은 것들을 전시할 수도 있겠죠. 뒤로 더 민다면 하나의 방이 될테니, 작은 재택근무 공간이 나오겠습니다.
완전히 뒤로 밀면, 옆의 방까지 연결되어 여러 사람이 일하는 오피스가 되겠네요!
SOHO세대 뿐 아니라, 일반세대들 또한 복층형 등 다양한 주거평면을 제시해 자신의 니즈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답사 시에는 일부 세대를 아예 코워킹 룸으로 마련하여 유동적으로 사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항상 아쉬운 부분이지만, 주거건물은 아무래도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만큼 출입이 안돼 제대로 답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부를 둘러보는 것으로도, 이곳에서의 왁자지껄하고 활발한 분위기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시노노메 캐널 코트 코단, 야마모토 리켄의 BLOCK 1 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어떠신가요? 조금은 급진적일지 모르지만 배울점이 참 많은 주거 단지이죠?
단지의 블럭을 나눠 모두 다른 건축가에게 맡기는 것부터, 주거 단지내로 길을 내어 외부와 연결하는 한편 그곳에 상업 공간을 배치하는 것, 주거동 내부에도 서로 공유하는 외부공간이 있어 함께 가꾸는 것 등.
솔직히 우리나라의 주거단지에서는 아직 쉬이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아갸야 할 길이 먼 것이겠죠.
답사하며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솔직히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 살아온 저로써는
부모님이 말씀하신 이야기라던가, 옛날의 삶의 방식이 어떠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만의 즐거운 추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는 것이겠죠.
어쩌면 그런 감각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곳이 내가 사는 곳이구나, 이곳에서만큼은 지나가는 사람과 인사를 건네고 싶다는 본능이요.
그래서 건축이 이런 공간을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것은 저로썬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
언젠가 저도 이 두루뭉실한 감각을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어 좋은 주거공간을 설계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2026.02.23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