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림과 닫힘의 지평선

집학사전-문

by 이재준
"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다. 문은 선택이다.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그 선택 속에 우리의 관계와 철학이 담긴다."

-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화장실 문을 밀어서 들어간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대부분 화장실 문을 당겨서 들어간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문이 안으로 열리는 이유는 좁은 복도 공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문을 밖으로 열면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힐 수 있다. 그래서 안으로 밀어 넣는다. 공간의 효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한국적 사고방식이다.


반면, 서양의 화장실 문이 밖으로 열리는 이유는 안전이다. 만약 안에서 누군가 쓰러지면 문을 밖에서 열어야 구조할 수 있다. 안으로 열리는 문은 쓰러진 사람이 막아서 열기 어렵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서양적 사고방식이다. 어느 것이 맞다가 아니라, 무엇을 우선시하느냐의 차이다.


프랑스 친구 집에 초대받았을 때의 일이다. 그 집은 가족이 함께사는 오래된 저택이었다. 거실 문이 두 짝으로 되어 있었고, 높이가 3미터는 되어 보였다. 문을 열자 양쪽으로 활짝 열리며 거실 전체가 드러났다. 극장 무대의 막이 열리는 것 같았다. "이 문은 1920년대 것이에요.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설치하신 거죠." 문 하나가 100년을 버텼다. 문도 유산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어릴 적 우리 집 부엌에는 원래 여닫이 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떼어냈다. "음식 냄새가 집 안에 다 퍼진다"라고 엄마가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고집을 부렸다. "당신 혼자 갇혀 있는 것 같아서 싫어." 결국 문은 사라졌고, 엄마는 거실에서도 우리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문이 없어지니까 엄마가 부엌에서 "오늘 학교에서 뭐 했어?" 물으면 우리는 거실에서 대답했다.


코로나 때 재택근무를 하면서 문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문을 닫으면 일하는 공간, 열면 가족 공간. 문 하나가 모드를 전환시켰다.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알았다. "아빠 방문 닫혀 있으면 일하는 거니까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말해." 문은 그렇게 경계를 만들고, 경계는 존중을 만든다.


문은 단순한 건축 요소가 아니다. 문은 관계를 조절하는 장치이고, 경계를 설정하는 도구이며,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문을 여는 방향 하나에도 그 사회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화장실 문의 방향 차이가 보여주듯, 작은 디테일에도 큰 철학이 숨어있다. 문은 그렇게 열림과 닫힘의 철학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게 한다.


tempImagerOn2Jn.heic 아이가 성장하여 떠난 뒤, 방문을 열어두어야 할지 닫아두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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