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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Feb 07. 2016

육지것의 제주인문이야기 III 제주의 비경 와가

셋. 제주의 와가,  화북 김석륜가옥과 더불어 몇 채 남지 않은 제주의

제주도에는 예로부터 한식 기와집이 매우 적었다.

도시화 과정에서 대부분이 훼철되어 현존하는 유구를 보더라도 품관인(品官人)들이 모여 살았던 제주시의 삼도동(三徒洞), 그리고 육지와 제주의 연결 포구였던 화북동(禾北洞)과 조천리(朝天里)에 밀집되어 있다.

3가구 6동이 제주도 민속자료 제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제주도의 와가에 대해 조선 전기의 문신 金淨김정은 <濟州風土錄제주풍토록>에서

…瓦屋絶少 如兩縣官舍 亦茅蓋也 와옥절소 여양현관사 적모개야…

; 기와집은 매우 드물고 양 縣현의 관사도 역시 띠로 덮고 있다

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金尙憲김상헌도 <남사록>에

인가는 모두 띠로 덮고 기와집은 매우 적다

라고 기록하여 제주도에서 와가는 매우 드문 가옥 형식임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몇 채의 와가는 이 지역에 내려졌던 출륙령이 해지되고 정조 연간 이후 상업장려정책이 시행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게 되었던 19세기 중반에 집중적으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와가가 적은 것은 기와의 재료와 제조기술상의 어려움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비바람을 막는 것이 제주민가의 첫 조건인 점을 고려한다면 근본적으로 와가는 비바람에 약하다는 취약성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지붕 위의 기와는 강한 바람에 날리지 않고 또한 기와 틈으로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기와와 기와의 틈막이를 흰색 회(灰)몰탈로 단단하게 접착시켰는데, 육지의 와가 지붕보다는 흰색이 강하게 나타나 제주도 와가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배치형태는 초가와 마찬가지로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거리와 밖거리가 대칭을 이루는 형태가 기본적이며, 안거리의 상방(床房:마루)에서 이루어졌던 선조의 제사나 가족간의 모임, 손님접대, 식사 등의 사회적 기능이 밖거리 일부 혹은 전부에 이전되면서 별동(別棟) 공간이 발생하고 이어서 대향배치에서 병열배치로 바뀌는 등 외부공간체계의 분화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또한 성별 영역성은 유교규범에 의하여 가례(家禮)는 남성이, 무속(巫俗)적인 전래관행(傳來慣行)은 여성이 전담하면서도 상충(相衝)되지 않으며 또한 이를 위한 어떠한 물리적 공간을 두지 않고 생략되어 있어서 내부공간은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화북 김석윤 가옥 외에

조천리 김희복 소유 와가는 축조된 지 거의 100년 정도 되었으며 안거리는 4칸 25평, 밖거리는 3칸 20평, 목거리는 10평으로 ㄷ자집 형태로 배치되었다. 안거리의 주재목은 밤나무이고 지붕, 석축, 마루, 내벽의 보존상태가 좋지만 밖거리의 지붕과 석축은 개수를 잘못하여 옛 모습을 상실하였다.

조천리 김순환 소유 와가는 축조된 지 120년 정도 된 고가로 안거리 4칸 24평, 밖거리 3칸 10평이며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주재목은 밤나무이고 마당이 비교적 넓은데, 잇돌을 시멘트화하여 원래의 모습을 다소 잃었다.


제주에서 색다른 주거형태를 여행중 한번쯤 돌아 보는것도 좋을것 같다.

김희복 가옥: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 2473-1

김국배 가옥: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 2523

황인관 가옥: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 2733

조규창 가옥: 북제주군 조천읍 신촌리 2462

조규희 가옥: 북제주군 조천읍 신촌리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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