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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Mar 11. 2016

건축가의 역사 읽기 I 상고사

하나. 환단고기의 진실은…03

1979년에 펴낸 환단고기 중에는 정오표가 달린 책이 있다. 

정오표란 책에서 틀린 글자나 잘못된 내용을 고쳐서 추가한 것이다. 

이 정오표의 글씨는 이유립의 글씨가 분명했다. 

이것은 이유립이 환단고기의 내용을 어느 정도 수정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1979년, 이유립이 세상에 공개한 환단고기는 당시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환단고기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1982년에 일본에서 일본어 번역본이 나오면서 부터였다. 

일본어 번역본은 신국민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鹿島昇가지마 노보루가 펴낸 것이다. 

이것이 국내에 역수입되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평소 한국과 중국에서 고서적을 수집해온 그는 1979년, 한국에서 환단고기 영인본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영인본을 입수한 경위나 그것을 번역한 이유에 대해서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다가 잠깐 이런 대답을 했다. 

그러나 가지마 노보루가 이해한 진실은 환단고기가 일본 천황가의 뿌리를 밝히는 책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환단고기를 통해서 동양 역사의 근원을 파악했는데, 일본의 신도가 본류이고 단군은 지류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책이 국내에 들어와서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그 후 한국에서는 가지마 노보루의 해석과는 다른 독자적인 번역본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숙데에 보관중인 1979년 영인본

1911년 계연수가 처음 필사한 원본이 사라진 점, 

그 후 70년이 지나서야 이유립에 의해서 세상에 공개되는 점, 

그리고 1979년 이유립이 펴낼 당시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일본인 가지마 노보루가 일본어로 출판하면서 국내에서 주목받게 된 점 등.


이런 미스테리한 부분 때문에 환단고기를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이 모호하기 때문에 책의 가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지만, 환단고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것은 이 책에 사료로서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죠. 환단고기에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실려있다.

단군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실려있는 책은 삼국유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단군에 대한 기록은 아주 짧고 압축적이다. 

단군이 고조선을 통치한 기간이 1500년이며 수명은 1908세라고 나온다. 

그런데 환단고기에는 2천 년이 넘게 지속된 고조선을 한 사람이 통치한 것이 아니라 47명의 단군이 통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47대 단군의 이름과 재위기간, 치적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구체적인 것까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단군을 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왕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바라본 점, 그리고 고조선을 수십 명의 단군들이 통치했다고 본 점은 눈여겨볼 만한 주장인것이다.

이렇게 환단고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근거가 발견된다.


환단고기의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에는 다양한 천문현상이 나타난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오성취루 현상이다. 

오성취루란 목성과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 나란히 늘어선 것을 말한다. 

환단고기에는 이러한 장관이 단군조선 때 나타났다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다. 

최초로 이 기록에 주목한 사람은 서울대 천문학과의 박창범 교수. 

그는 단군조선 시대의 천문현상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논문을 발표했었다. 

천문현상을 추적해가면 그 현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물론 관측자의 위치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연대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오성취루 현상은 서기전 1733년에 나타난다. 

천문관측 프로그램에 입력해본 결과, 일 년 전인 서기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에 다섯 개의 별이 모이는 것을 볼 수 있다. 

1년의 오차가 나지만 천문학계에서는 거의 정확한 것으로 간주한다.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고조선의 영역. 

환단고기의 기록을 토대로 고조선의 영역을 추정해보면, 지금의 북경에서부터 만주의 전지역과 한반도 전체를 포함한다. 

한 시대의 영토를 추정하는 방법 중에는 문헌에 나타나는 기록과 함께 그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을 참고로 추정하는 방법이 있다.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무기로, 비파형동검이 출토된 지역을 살펴보면 고조선의 영역도 좀 더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다. 

현재까지 이 비파형동검은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됐다.

비파형 동검의 출토지역과 환단고기의 고조선 기록을 비교해보면, 지금의 북경에서부터 만주, 한반도 전체를 포함하고 있어 상당부분이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환단고기의 사료적인 가치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근거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단서는 바로 수서령다. 

수서령이란 조선시대 세조와 예종, 성종 때 8도 관찰사에게 명령해서 옛부터 전해져온 희귀서적을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일이다. 

지금 이 서적들은 전하지 않지만, 우리 역사의 자부심을 담고있는 책들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수서령이 내려진 책들 중에서 환단고기에 실려있는 책과 제목이 일치하는 것이 발견된다. 

삼성기가 바로 그것. 

수서령의 대상이었던 책들 중에서 환단고기에 실려있는 책 제목이 나타나는 것은 1911년,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펴낼 당시, 옛부터 전해지는 책들을 있었고 그것을 참고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환단고기는 그냥 무시하거나 버려둘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대부분 환단고기를 사료로서 가치가 없다고 평가한다.

왜 그럴까. 

그 결정적인 이유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책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 

먼저 환단고기를 이루는 다섯 권의 책의 저자들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인데, 다른 사료에서 이름이나 행적이 발견되는 저자들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환단고기 말고는 그 책을 썼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1911년에 다섯 권의 책을 묶어서 환단고기라는 단행본으로 펴냈다는 계연수에 대해서도 그가 펴낸 원본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는것이다. 

마지막으로 70년 후에 계연수의 제자인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공개한 것도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책의 출처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사료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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