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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Mar 22. 2016

일반인문 XLIX 禮예에 대하여 01 祭祀제사(?)

虛禮虛飾 허례허식 만이 남은 禮예

祭祀제사, 禮예의 중심에서 말하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이야기 한다.

과연 그럴까...

군독재시절 70년대 말 가정의례준칙이라는 재밌는 대국민 관리 사항을 시행했다.

설을 舊正구정이라 바꾸고(당연히 시작은 일제때) 양력설을 설이라는 자리로 옮겼고 제사시간을 9시 이전으로 돌리고 축소하라는...

돌이켜보면 웃긴 이야기로 넘친다.

분명 우리는 구한말을 지나고 일제침략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치르는 반세기이상을 역사와 인문에서 단절된 시간을 보냈다.

그래 2세대가 지나는 시간을 모든것에서 떨어져 있었고 겨구겨우 그 맥만을 이어왔다.

그러다 80년대에 성장한 경제를 바탕으로 보여주기 위한 예(?)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4대를 제사지내는 집안은 이제 쉽게 보여졌고 그것은 나를 보여주기 위한 우리 집안의 모습이 된다.

진정 알고는 있는지...

심지어 키워드 검색어로도 올라오지 않는 禮예를 이야기 해 본다


조선시대 허례허식을 막고자,

4대 봉사는 왕족만이 가능했다.

3대를 제를 지내는것도 당상관이상의 관리에게만 허용되었고

조부모는 양반이 아니면 제를 지내지 못했고

서민들은 부모에게만 허용되었다.

물론 천민에게는 제사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다.

더욱이 일제 치하에서는 머을것조차 없어서 제를 지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한국전쟁시에는 피난에 바빠 그럴 정신적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니 제사가 줄어든다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禮예로서 서라(立於禮 입어례)고 하였다.

그는 아들 伯魚백어에게 예가 아니면 설 수 없다며 學禮학례를 일러 준다.

또한 이 당부로 논어는 끝을 맺는다


不知禮 無以立也 부지례 무이립야

예를 모르면 사회에 나설 수 없다


立於禮입어례의 예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녀야 하는 사회성이랄 수 있다.

사회성을 지닌 공자식의 군자나 成人성인은 높은 도덕성이 필요하다.

또한 예는 통치 수단이었으므로 이데올로기로서의 구실을 훌륭히 수행한다.

때로는 억압적인 통치 방법이었다.


上好禮 則民易使也

道之以德 齊之以禮

통치자들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을 부리기 쉽다

백성들을 덕으로 이끌고 예로서 다스리라

 

25세의 청년이 친구의 부친상에 대해 물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상을 치르기에는 이르긴 하다.


요즘은 상조에서 나오거나 종교가 있는경우 그 단체에서 나와 진행하는게 일반적이다.

오랜 시간을 주자가례에의해 형식에 맞춰온 상을 치뤘고 핵가족이 되면서 그 명맥도 단절되어 아는이도 흔치않다.

종교의 그것은 전통의 상례와 믹스가 되면서 혼란스럽기짝이 없다.


자로가 조상(귀신)을 섬기는 일을 스승께 묻자, 공자는 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고 핀잔을 준다.

아둔한 자로가 자신의 우문을 만회하려고 이번엔 죽음에 대하여 묻는다.

스승의 카운터펀치.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

공자의 유학적 생각은 확고하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상례는 가신분에 대한 예이며 마지막 인사다.

그것이 어떤 형식이 되었건 상관이 없다.

부모님과 빙부상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건 남아 있는사람이나 주변의 사람이 중요하다는걸 생각지 못한다는거다.


未能事人 焉能事鬼 미능사인 언능사귀

未知生 焉知死         미지생 언지사

- 論語先進 논어선진편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


禮예란, 사회적 규범이면서, 정치적 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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