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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Apr 15.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 강원 죽서루

여덟. 三陟삼척 竹西樓죽서루

三陟삼척


三 석 삼 陟 오를 척, 세번오른다.

순서적 개념이라기보다 나란히 배열된 결합의 뜻이다.

원래 고을 이름은 모두 곧다는 의미의 悉直실직.

실의 옛 발음이 siet이다.

여기에 오르고 내리는 陟降척강의 환경이므로, 셋과 척을 합쳐진것.

불을 이용해 세 번의 융성기를 맞는 동네다.

그 첫 번째는 1500년 전 이사부장군이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영토에 편입시켜 융성했고.

두 번째는 1960년대에 탄광 덕에 전국 5대 공업도시로 융성했다.

이제 삼척은 세 번째 융성기를 꿈꾸고 있다.


삼척시의 서편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앉아 있는 竹西樓죽서루.


하천의 곡류가 심해 이 하천의 하류에서 상류까지 가려면 물을 오십 번 건너야 되니 천 이름이 오십천이다.

그만큼 절경이라는 것이고.

삼척시 서쪽 천리 절벽이 맑은 강을 위압하듯 다가섰는데, 그 위에 자리 잡은 누각이 죽서루이다.

죽서루에 올라가 난간에 의지하면 사람은 공중에 떠 있고 강물은 아래에 있어 파란 물빛에 사람의 그림자가 거꾸로 잠긴다.

물 속 고기떼는 백으로 천으로 무리무리 오르락내리락 돌아가고 돌아오는 발랄한 재롱을 부린다.

가까이는 듬성듬성 마을 집이 있어 나분히 뜬 연기가 처마 밖에 감돌며, 멀리는 뭇 산이 오라는 듯 가뭇가뭇 어렴풋이 보이니 누대의 풍경이 실로 관동의 으뜸이다

- 박종, 동경 기행


누각 이름은 죽서루 동쪽 울창한 대나무 숲에 있던 竹藏寺죽장사라는 절의 서쪽에 있어 죽서루가 되었다고 하기도 죽장사 또는 竹竹仙죽죽선이라는 이름 난 기생이 살던 집이 있어, 이름을 ‘죽서루’(서쪽에 지은 누대)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1년(1275) 이승휴가 벼슬을 버리고 두타산에 숨어 지낼 때 죽서루에 올랐다고 하니 창건 시기는 적어도 그때, 또는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403년 삼척부사 김효손이 중건.

죽서루의 기둥 17개는 높이가 각기 다르다.

생긴 대로의 암반에 맞게 기둥을 다듬어 앉혀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는 누각.

울퉁불퉁하고 들쭉날쭉한 자연암반을 고르지 않고 그대로 주춧돌로 사용한 기초를 덤벙주초라고 한다.

초석을 그냥 덤벙덤벙 놓은 기초.

풍류가 있는 우리 건축방식이다.

누대 안에는 수많은 현판이 걸려 있는데, 第一溪亭제일계정은 1662년 허목의 글씨이며,

關東第一樓 관동제일루와 죽서루는 숙종 때 부사 이성조의 글씨이다.

숙종의 御製詩어제시(임금이 지은 시가)와 율곡의 시도 걸려 있다.

강원도 관찰사로 죽서루를 찾은 송강 정철은 관동팔경을 노래한다.


내가 관원만 아니었다면

그윽한 회포와 나그네 시름을 죽서루에서 풀고

신선의 뗏목을 띄워 북두칠성 견우성으로 가고 싶구나.


마천령의 동쪽 영동지방은 관동, 서쪽 평안도는 관서지방.

관동팔경은 삼척의 죽서루, 간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고성의 삼일포, 양양의 낙산사, 울진의 망양정, 통천의 총석정, 울진의 월송정.

중국에서는 하늘이 칠, 땅이 팔이라 명승지는 항상 팔경을 노래한다. 허목 왈.


큰 하천이 동쪽으로 흘러 죽서루 아래에 이르면 푸른 층암절벽이 매우 높이 솟아 있는데

맑고 깊은 소의 물이 여울을 이루어 그 절벽 아래를 감돌아 흐르니

서쪽으로 지는 햇빛에 푸른 물결이 돌에 부딪혀 반짝반짝 빛난다.

이처럼 암벽으로 된 색다른 이곳의 훌륭한 경치는 큰 바다를 구경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주소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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