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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May 14.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I 경기 관감당

아홉. 悟里오리 李元翼이원익 宗宅종택 및 觀感堂관감당

내가 죽거든 절대 후하게 장사지내지 말고

단지 수의와 연금으로 시체를 싸고,

외관이 있거든 석회를 쓰지 말고 석회가 있거든 외관을 쓰지 말라.

시제와 속절의 묘제 제물은 단지 정결히 할 뿐 풍성과 사치하지 말도록 하고

십여접시에 그치도록 하라.


청백리로 이름 높던 오리 이원익 선생의 종가.

李元翼이원익

본관 전주.

자는 公勵공려, 호는 悟里오리(오동나무 가득한 곳에서 학문을 하겠다).

태종의 아들 익녕군의 5세손.

왕족은 4대까지 과거시험 응시를 금지한다.

120년만에야 이원익은 과거급제.

선조, 인조때 영의정을 지냈다.

이원익은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살았는데, 1630년에 2칸 초가인 이원익의 집에서 비가 새자 왕이 새 집을 하사하였으나 네 차례에 걸쳐 받기를 사양했다는 5칸짜리 집이다.

觀感堂관감당.

백성이 그 삶을 보고(觀) 느끼라(感)는...

관감당은 1637년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서거 60주년인 1694년)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다시 어느 시기인가에 허물어졌다가 1916년 10대손 李淵哲이연철에 의해 다시 중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감당 앞에는 이원익 생전에도 있었던 약 400년 수령의 측백나무와 彈琴岩탄금암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측백나무 밑자락에 놓인 평평한 생김새의 탄금암은 이원익이 살아 있을 때 그곳에서 거문고를 타던 곳이라 하여 이름을 그리 지었다.

관감당 뒤쪽으로는 1658년(효종 9)에는 집터에 사당을 짓고 영정을 모시고 忠賢書院충현서원으로 사액되었으나, 뒤에 서원은 훼철되었다. 효종 때 지은 충현서원의 터가 남아있다.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게 잘 드는지, 이름마저 바람으로 목욕을 한다는 風浴坮풍욕대를 지나서는 오리대감의 부모와 형제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종택 안채는 1917년에, 문간채는 1940년경에 건립되었다.

안채 들보에 씌여진 글로 건립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龍觀感堂建翌年丁巳閏二月六日未時立柱上樑龜 용관감당건익년정사윤이월육일미시입주상량귀.

관감당을 세운 이듬해 정사년(1917) 윤2월 6일 미시(오후 1~3시)에 기둥을 세우고 동량을 올렸다

1990년에 안채의 지붕 가구재가 심하게 부식되고 붕괴되어 서까래와 기와를 교체하였는데, 이때 문간채가 증축되었다.

건물은 모두 남향으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문간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튼 ‘ㅁ’자 형태의 종택을 중심으로 문간채와 나란히 서쪽에서 떨어져 ‘ㅡ’자형의 관감당이 있고, 관감당 북쪽에 영당과 삼문이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13칸 반 규모의 소로수장집인데, 2칸의 건넌방, 3칸의 대청, 2칸의 안방이 일렬로 배열되었고, 안방 안쪽에서 꺾이어 1칸 반의 부엌과 1칸 반의 온돌방이 있다.

오리 선생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으며 인조반정 후에는 민심을 수습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퇴임 후 초가에서 조석거리가 없을 정도로 청빈한 생활을 해 황희 정승에 비견되는 청백리였다.

- 3대손인 이승규


1996년 12월 24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90호로 지정

13대 종부는 문화재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보전관리부문 대통령 수상자로 선정.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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