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작을 쌓아올리는 것처럼 나중 들어온 자가 윗자리로...
오늘은 이뻐라하는 청년 한명의 졸업식 소식이 들려 왔다.
그래 그의 미래를 응원하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coffee 향에 녹인다.
며칠전 첫 직장 팀 실장님이셨던 분께 연락이 왔다.
20대 중반 약 16개월동안 몸 담았던 규모로보면 국내 최대의 건축사무소에서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사원의 뒤를 받쳐주시던 분이다.
지금이야 모 건설사에 소속된 지긋한 연륜의 건축사.
오랜만에 전화하신 이유는 찾고계신 자료에 관한 질문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라 안부도 묻고 당시 OB들과 연락 내용도 나눴다.
그분들이야 4~5년간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내게는 1년 반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다.
그리고 20년이 넘고 30년을 바라보는 긴 시간이 흘렀는데 그 분들의 나에대한 생각은 그 당시 막내로 뇌 속 깊숙히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지난 시간들과 지금의 일에 관해 이야기 할때 사뭇 놀라며 오히려 긴 통화로 이어지는 질문들을 쏟아 놓으셨다.
그리고 이내 이번주에 당장 만나자고 하신다.
물론 schedule을 확인하고 연락드리겠다고 말씀드린 후 인사를 나누고 전화 통화를 마쳤다.
IMF 이전이었던 당시, 그 건축사무소 50명이 넘는 우리 부서에는 소위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실장님이 두분 계셨다.
모두 5개 팀이었던 부서의 특별하거나 중요한 디자인에 그 두분들이 빠르게 디자인하는것이었다.
신입사원이었던 내게는 방향을 잡고 싶은 만큼 멋있어 보였다.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5년전 쯤엔가 그 두분중 한분께 지명설계경기 제안서를 받았다.
나는 Owner, Client 입장이고 당시 실장님이셨던 건축사님은 제안에 당선이되어 일을 해야 하는 건축가의 입장이었다.
물론 직접 해도 되는 일이지만 하고 있던 신규 디자인이 많아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분 역시 그 오래전 신입사원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듯 했다.
우리는 살아가며 뒤에서 달려오고, 어쩌면 추월당하는 상황을 살피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많은 청년들에게 나를 보고 내 뒤를 밟지 말라 이야기 한다.
내가 바라보는 그 먼 앞을 바라보라고.
그래 더 앞질러 갈것을 이야기 한다.
後生可畏후생가외
공자는 말씀하셨다.
후학이 두려울 만하니 앞으로 오는 자들이 나의 지금보다 못한다고 감히 누가 말하는가?
40∼50세가 되어도 알려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족히 두려울 것이 없는 자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고사, 後生可畏후생가외라는 말이다
이를 인용하신 학자 중 너무 잘 알고 있는 분이 퇴계선생이다.
35년을 뛰어넘은 忘年之友망년지우인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서원으로 찾아온 이이가 돌아간 뒤 이황은 제자 조목에게 편지를 보냈다.
율곡이 찾아왔다네.
사람됨이 명랑하고 시원스러울 뿐 아니라 견문도 넓고 우리 쪽 학문에 뜻이 있으니 후배가 두렵다고 한 공자의 말씀이 참으로 옳지 않은가.
율곡의 학문보다 퇴계의 그릇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後來居上 후래거상
史記사기의 汲鄭列傳급정열전에 나오는 後來居上 후래거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한때의 汲黯급암은 武帝무제가 태자였을 때 가르친 유능한 선비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황제 앞에서도 바른말을 서슴지 않았으므로 모두 꺼렸다.
결국 무제의 미움을 사서 동해태수로 좌천됐다.
하지만 급암이 그곳에서도 잘 다스려 명망을 얻었기 때문에 다시 측근으로 복귀하게 됐다.
급암이 조정에 와서 보니 황제에게 아부하는 자들이나 이전에 수하에 있던 사람까지 모두 자신보다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다.
바른말 하는 성격은 변하지 않아 어느 날 황제에게 나아가 인사정책을 비판했다.
폐하께서 신하를 등용하는 방법은 장작을 쌓아 올리는 방식과 같으니 뒤의 것이 위에 놓이나이다
陛下用群臣如積薪耳 後來者居上 폐하용군신여적신이 후래자거상
무제는 이런 급암을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참지 못한다고 괘씸하게 여겼지만 사후에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아들과 동생들까지 벼슬을 내렸다.
급암이 지적한 것과 같이 처음엔 인사가 잘못된 것을 불평하던 말에서 나중엔 뒤떨어졌던 것이 앞서거나 후진들이 낡은 세대를 추월하는 것에 비유하게 됐다.
사람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래서 뒤따라오는 후진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앞으로 올 사람이 오늘의 선배들보다 더 훌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도 능히 나올 수 있다.
어찌보면 세상은 크고 작은 위치 다툼이다.
스스로에 취하면 걸음이 느려진다.
겸손한 자는 한발 두발 앞으로 내딛으며 쉬지 않고 걸으면 하루 백 리도 간다.
아무리 걸음이 빨라도 걷지 않으면 느릿느릿 걷는 자에게마저 뒤지는 게 세상 이치다.
스스로 후배, 제자들의 靑出於藍청출어람의 모습을 묵묵히 지원하고 박수쳐주고 응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