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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Nov 03. 2019

일반인문 CXIX 明日又作 명일우작

; 酒道有段 주도유단으로 열어보는 술의 시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시인으로 알려진 조지훈은 식도락가로도 유명합니다.

까탈스럽게 먹지는 않았으며 음식의 맛과 멋을 아는 사람이었죠.

고기보다는 생선을 생선보다는 나물을 더 즐겼습니다.


그래 식도락과 강산 구경을 겸하여 이름난 지방의 향토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그 중에도 각 지방에서 나는 술도 꼭 찾아다니며 맛을 보곤 했는데, 개성 소주, 철원 약주, 김포 특주 같은 것은 술로서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지만 다음에 열거한 술들은 아주 맛이 좋았다고 평하였습니다.


제 이름 값을 한다고 평한 술, 그 첫 번째는 김천의 過夏酒 과하주. 

경북 김천의 과하주는 옛날 임금에게 진상되었던 약주 가운데에서도 상품에 속하는 것으로 투명한 황갈색에 부드러운 맛과 향으로 알려져 있는데 만화가 허영만님의 식객으로 익숙한 술입니다.


두 번째는 善山藥酒 선산약주. 

솔잎냄새가 밴 은은한 향취와 감칠맛으로 입에 찰싹 달라붙는 감미가 인상적인 술로 한번 입에 대기만 하면 아무리 점잖은 선비일지라도 누구든 그 맛에 반하여 끝장을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방랑시인 김삿갓조차도 경북 선산에 들러 이 약주를 먹고 술주정까지 하고 갔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손꼽은 좋은 술 세 번째는 문경의 湖山春 호산춘. 

품격이 있는 고급술에만 春춘자를 붙였다고 하는데,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전통주 중 유일하게 춘자를 이름에 지니고 있는 명주로  청백리 가문으로 소문난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500여년 간 빚어오고 있습니다.

향이 그윽하고 부드러워 주량도 잊고 마시게 되어 한양에서 내려온 관리들이 이 술맛에 취해 임무도 잊고 돌아갔다 하여 忘酒 망주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그 풍미가 뛰어난 술이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술이라 평한 술은 安東 燒酎 안동 소주입니다. 

이것은 설명이 필요 없죠.


글을 쓰게된 조지훈님의 酒道有段 주도유단이란 술을 마시는18단계에 관한 내용입니다.

서울대 교수 김완배님의 글 중에서

부주, 외주, 민주, 은주는 술의 진경, 진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요, 상주, 색주, 수주, 반주는 목적을 위하여 마시는 술이니 술의 진체(眞諦)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학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 초급을 주고, 주졸(酒卒)이란 칭호를 줄 수 있다. 

반주는 2급이요, 차례로 내려가서 부주가 9급이니 그이하는 척주(斥酒) 반(反) 주당들이다. 

애주, 기주, 탐주, 폭주는 술의 진미, 진경을 오달한 사람이요, 장주, 석주, 낙주, 관주는 술의 진미를 체득하고 다시 한번 넘어서 임운목적(任運目適)하는 사람들이다. 

애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의 초단을 주고, 주도(酒道)란 칭호를 줄 수 있다. 

기주가 2단이요, 차례로 올라가서 열반주가 9단으로 명인급이다. 

그 이상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니 단을 매길 수 없다. 

그러나 주도의 단은 때와 곳에 따라, 그 질량의 조건에 따라 비약이 심하고 강등이 심하다. 

다만 이 대강령만은 확고한 것이니 유단의 실력을 얻자면 수업료가 기백만 금이 들것이요, 수행년한이 또한 기십년이 필요할 것이다(단 천재는 차한에 부재이다)


조지훈님으로 글은 열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현존하는 시만 1,100편에 이르는 李白이백입니다.

字자가 太白태백이라 이태백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두보가 노력형 천재라고 한다면 이백은 타고난 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이백을 일컫는 말은 詩聖시성이 아닌 詩仙시선이라고 부릅니다.

두보의 시가 유가 사상을 담고 있고 국가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어서 두보는 성인이라는 평을 받은 것이고, 이백의 시는 도가적이고 내용이 환상적이고 시풍이 자유로워서 신선이라고 평가됩니다.

한 잔, 한 잔, 또 한 잔(一杯一杯復一杯일배일배부일배) 이라는 이백의 시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이 창조적인 작업에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詩聖시성이라고하는 두보는 가장 정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飮中八仙歌음중팔선가에서 

술한말이면 백편의 시를 쓴다( 一斗詩百篇 일두시백편)말과 함께 이백을 '황제가 불러도 가지 않고, 스스로 주중선이라 한다'(天子呼來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천자호래불상선 자칭신시주중선)고 읊었습니다.


가히 동양에서 최고의 술꾼이라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죠.

이백은 사흘에 두 번은 주루에서 술을 마셨지만 혼자 밤낮을 이어 마신 날이 많았다고 합니다.

시선은 요즘 유행하는 혼술을 즐기며 달빛에 취하고 있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이지만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하늘나라로 갔다고 할 정도로 그에게 자연 속 달빛은 다른 의미로 다가 왔을것입니다.


달 아래서 홀로 술잔을 기울인 이백에게 술은 사유와 상상의 세계를 시청각적으로 구체화시키는 shaman과도 같이  밝은 달과 어둑하게 물든 그림자, 그리고 가객이 박자를 맞추어 벌이는 술판에서 이백이 노래하면 달이 이리저리 서성이고, 춤을 추면 달그림자가 어지러이 움직였을것입니다.


友人會宿 우인회숙 : 벗과 함께 잠자며


천고의 시름을 씻으려고 연이어 백 병의 술을 마셨네

청담을 나누기에 좋은 밤이요 밝은 달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네

취하여 텅빈 산에 누우면 천지가 곧 금침이노라.

滌蕩千古愁 留連百壺飮 척탕천고수 유련백호음

良宵宜淸談 皓月未能寢 양소의청담 호월미능침 

醉來臥空山 天地卽衾枕 취래와공산 천지즉금침 


좋아하는 月下獨酌 월하독작을 보면 

그 누가 봄날 수심을 떨칠 수가 있으랴, 이럴 땐 곧 모름지기 술마실 뿐이라고 하여 앞의 우인회숙에서 천고의 근심을 풀어내려면 연달아 백병의 술을 마셔야지라고 했던 논조로 술로써 근심을 잊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우리에게도 못지 않은 술꾼들이 많죠.

글머리의 조지훈, 김삿갓, 이규보...


홍익대학교에서 불어를 가르치는 불어불문과 교수 Benjamin Joinau 벵자맹 주아노님은 한국의 먹고 마시는 100가지 모습이라는 주제로 2016년 '먹는 방법'을 펴낸 데 이어, 2년 만에 '마시는 방법'을 출간했습니다.


Croquis de Corée 2016 (크로키 드 꼬레 ; 한국스케치)

Les Cahiers de Corée 2018 (레스 카제 드 꼬레 ; 한국노트)


한국 文人들의 글에서 발췌한 술과 차 즐기는 법 佛語로 펴내 불어권인 벨기에, 스위스, 캐나다에서도 책이 판매되고 있죠.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고려 문신 李奎報 이규보의 明日又作 명일우작(내일 또 술을 마시자)이란 시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규보 선생은 시, 거문고, 술이 어우러진 풍류를 제대로 즐긴 분이죠. '몸이 아픈 와중에도 술을 사양 못하니 죽는 날에 가서야 술잔을 놓으리라'라는 글귀가 멋지지 않나요.


明日又作 명일우작


병중에도 오히려 술을 사양 못하니, 죽는 날 까지 가서야 술잔을 놓으리라.

깨어서 살아간들 무슨 재미있으랴, 취해서 죽는 것이 진실로 좋을시고.

病時猶味剛辭酒 死日方知始放觴 병시유미강사유 사일방지시방상

醒在人間何有味 醉歸天上信爲良 성재인간하유미 취귀천상신위량


책을 출간하고 나서 뿌듯한 나머지 강화도에 있는 이규보의 묘지를 찾아가 막걸리를 무덤에 뿌리고 인사했다고 했다고 합니다.


시인 고두현님은 옛시 읽는 CEO, 순간에서 영원을 보다라는 책에서 이백의 月下獨酌 월하독작 첫 수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다보려면 이백처럼 홀로 술 마실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의 바퀴자국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여유, 작은 일로 아웅다웅하는 지상의 하루에서 광대무변한 우주의 일상으로 확장되는 의식의 비상, 이 놀라운 초월의 세계가 그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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